일제 총동원체제하‘가사사용인’ 억제 정책과‘식모난(食母難)’
The Suppression of Domestic Workers and the ‘Housemaid Shortage’ under Japan’s Total Mobilization System
0
조회
0
다운로드
0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이 연구는 일제 말기 전시체제하에서 가사서비스노동을 억제하려는 조선총독부의 정책과 그로 인해 심화된 민간의 ‘식모난’이 당대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고찰하였다. 1930년대 말 이후 총동원체제가 본격화되자, 일제 당국은 가사서비스노동을 ‘불요불급’한 노동이자 노동력 유입을 차단해야 할 업종으로 인식하였다. 본격적인 억제 정책은 1940년 직업소개소 국영화로 시작되어, 1943년 공설 직업소개소의 ‘식모 알선’ 폐지, 가사노동자 고용에 대한 특별세 부과, 농촌 여성의 퇴거 증명 거부를 통한 노동력 이동의 억제 등의 조처로 이어졌다. 그 결과 가사노동자의 고용은 공식적인 영역에서는 그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가사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이후에도 줄어들지 않았으므로, 도시 지역 조선인 가정을 중심으로 민간의 ‘식모난’이 가중되었다. 이것은 구직을 원하는 조선인 여성들의 입장에서도 유리한 일만은 아니었다. 농촌을 떠난 가난한 여성들이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영역에서 고용될 수 있는 여지를 더 줄여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전시의 동원 정책 속에서 원거리 취직도 마다하지 않았던 절박한 여성들의 처지는 더욱 악화되었다. 이는 또한 가사노동자를 비공식화하고 공급의 경로를 막아선 일시적인 강제가 사라지면 머지않아 다시금 가사노동자들이 팽창하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the policies of the Government-General of Korea aimed at suppressing domestic service labor under the wartime regime of late colonial Korea and the implications of the resulting “maid shortage” for women of that time. With the intensification of the total mobilization system in the late 1930s, the Japanese colonial authorities classified domestic service labor as “non-essential and non-urgent” work, viewing it as a sector that required restrictions on labor force entry. The formal suppression of domestic service labor began with the nationalization of employment agencies in 1940 and escalated with measures such as the cessation of "household worker placement" services at public employment agencies in 1943, the imposition of special taxes on employing domestic workers, and the denial of rural women's residence permits to curb labor migration. These measures drove the employment of domestic workers out of the formal sector. However, the demand for domestic workers persisted, intensifying the “maid shortage,” particularly among Korean households in urban areas. This situation was not advantageous for Korean women seeking employment either. Poor women who had left rural areas found their opportunities for legal and formal employment significantly diminished. As a result, the conditions of women—desperate enough to accept distant employment opportunities amidst wartime mobilization policies—deteriorated further. This also foreshadowed that the temporary coercion, which had suppressed domestic service labor and blocked their supply routes, would inevitably lead to a resurgence in the number of domestic workers once these constraints were lifted.
참고문헌 (37)
- "朝鮮總督府 官報", ~
- "日本 官報", ~
- "동아일보", ~
- "시대일보", ~
- "조선일보", ~
- "『朝日新聞』 外地版", ~
- "경향신문", ~
- "高等外事月報", ~
- "별건곤", ~
- "조광", ~
- "朝鮮及滿洲", ~
- "朝鮮社會事業", ~
- 朝鮮國勢調査報告, "朝鮮總督府", ~ (1940)
- 朝鮮總督府, "『朝鮮總督府調査月報』 각 연도판", ~
- 朝鮮總督府, "『朝鮮總督府統計年報』 각 연도판", ~
- 京城職業紹介所, "朝鮮職業紹介令實施に就て" (1940)
- 年 京城職業紹介所々報:特輯號, , 1941
- 近現代資料刊行会, "(戰前ㆍ戰中期アジア硏究資料 1) 植民地社會事業關係資料集 朝鮮編 20, 21" (2005)
- 서울역사편찬원, "(서울 근현대사 자료집2) 경성부 법령 자료집" (2017)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증언집』 Ⅱ" (1997), 한울
- 고태우, "기후, 날씨와도 싸워야했던 일본제국주의, 그리고 식민지민-길었던 한 해, 1939년 조선 대가뭄의양상과 그 여파", 역사와 현실, 118 (2020)
- 곽건홍, "일제의 노동정책과 조선노동자" (2002), 신서원
- 김미정, "전시체제기 조선총독부의 여성노동력 동원정책과 실태", 박사, 한국사학과, pp.2015
- 김 원, "근대화시기 주변부 여성노동에 대한 담론-‘식모’(食母)를 중심으로", 아시아여성연구, 43(1) (2004)
- 김정화, "1960년대 여성노동-식모와 버스안내양을 중심으로", 역사연구, 11 (2002)
- 박정애, "총동원체제기(總動員體制期)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의 유흥업(遊興業)억제 정책과 조선의 접객업변동", 한일민족문제연구 (2009)
- 박정희, "일제강점기 소설에 나타난 또 하나의 식모, ‘오마니(おまに)’", 어문학, 153 (2021)
- 유진오, "滄浪亭記" (1963), 정음사
- 이상의, "일제하 조선의 노동정책 연구" (2006), 혜안
- 이송순, "일제하 전시 농업정책과 농촌 경제" (2008), 선인
- 이송순, "일제말 전시 총동원과 물자 통제" (2021), 동북아역사재단
- 이아리, "일제하 직업소개사업의 이원적 구조와 영리 소개업 통제의 한계", 민족문화연구, (97) (2022)
- 이아리, "일제하 ‘식모폐지론(食母廢止論)’의 등장과 가사 담론의 한계", 여성과 역사, 39 (2023)
- 이아리, "1920~1930년대 남의집살이 여성들의 처우와 인권 문제-‘어멈’과 ‘오모니’에서 ‘식모’로-", 한국근현대사연구, 108 (2024)
- 이임하, "여성, 전쟁을 넘어 일어서다" (2004), 서해문집
- 한승훈, "한국 근대사 연구의 쟁점" (2023),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 호리 가즈오 저, "한국 근대의 공업화 : 일본 자본주의와의 관계" (2003), 전통과 현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