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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한일 교류에서 雨森芳洲의 역할에 대한 일고찰

The Role of Amenori Hoshu(雨森芳洲) in Tongshinsa Ex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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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초록

본고에서는 호슈가 실제 통신사를 배행하면서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이것이 조선에 대한 인식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검토하였다. 조선과 거짓 없이 교제할 것을 주장한 성신외교론은 근대 일본의 조선침략과는 대비되는 평화의 사상으로 조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호슈의 타자 인식은 성신외교론이나 평등외교론으로 규정할 수 없는 다층적인 면모를 띠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신외교론에서 호슈가 주장했던 바, 신뢰를 바탕으로 교류해야 한다는 추상적인 명제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면모가 외교 현장의 갈등이나 필담을 통한 첨예한 논쟁에서 드러난다. 또한 그리고 한일 문사 교류의 구심점이 되고 새로운 학문의 전파자가 되었던 호슈의 역할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을 조일 외교의 현장에서 수행한 호슈의 역할을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첫 번째로, 호슈는 오랜 논쟁 거리였던 금강산-후지산 우열 논쟁을 합리적인 판단으로 매듭 짓는 균형자 역할을 수행하였다. 후지산과 금강산의 우열 논쟁은 통신사 교류의 연례 행사와 같은 것이 되었다. 조선과 일본의 문사는 서로 자국 산의 우월함을 주장했는데, 호슈는 후지산의 우월함을 주장하는 일본인이나 여기에 대해 금강산을 들어 반박하는 조선인이나 모두 ‘好勝心’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나라의 성쇠와 산은 아무 관계가 없는데 이것을 가지고 논쟁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와각지쟁’일 뿐이라 하며 통신사와 일본 문사 양쪽 모두 실익이 없는 논쟁을 하고 있음을 균형 잡힌 시각에서 비판하였다. 두 번째로, 호슈는 외교 현장에서 돌발적으로 벌어지는 갈등을 중재하는 조정자이기도 했다. 쓰시마 도주와의 의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나 大佛寺의 연회가 통신사를 조공사절로 연출하기 위한 것임을 알아챈 통신사가 항의하는 과정에서 호슈는 쓰시마와 막부의 이익을 대변하는 중재자로서 통신사를 위협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성신외교론과 어긋나는 이러한 태도는 외교현장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갈등을 조정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세 번째로, 호슈는 일본의 재능있는 문사나 가치 있는 서적을 조선에 소개하고 전달하거나 일본 내에 알리는데 힘썼다. 호슈는 鳥山芝軒, 唐金梅所 등 일본 문사의 저술이 조선에 알려지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고, 일본의 학술 성과를 조선에 전하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또한 山縣周南과 같은 徂徠學派의 문사가 일본에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도록 소통하는 역할도 맡기도 했다. 1711년 통신사를 통해 신생학파였던 徂徠學派의 명성이 일거에 전국으로 퍼져나갔으며 이후 약 반세기에 걸쳐 일본 학계를 풍미하게 된다. 그 바람이 불기 시작한 시점에 바로 아메노모리 호슈의 존재가 있었다.

Abstract

In this article, we focused on what "role" Hoshu performed while performing actual envoys, and examined relation with recognition of Korea. First, Hoshu served as an equilibriumist to end the long-standing dispute between Mt. Geumgang and Mt. Fuji with rational judgment. The dispute over the merits and demerits of Mt. Fuji and Mt. Geumgang has become an annual event for Tongshinsa exchanges. Both Korean and Japanese literature claimed the superiority of Mt. He also said it was foolish to argue without any connection between the prosperity of the country. And the decline of the mountain, and criticized both news agencies and Japanese literature for arguing in a balanced manner that there was no practical benefit. Both Korean and Japanese literature claimed the superiority of Mt. He also said it was foolish to argue without any connection between the prosperity of the country. He criticized the dispute from a balanced point of view, both the Tongshinsa and the Japanese literature, which had no practical advantage. Second, Hosh was also a coordinator who mediated the sudden conflict at the diplomatic scene. In the process of settling the issue of rituals with Tsushima and in the process of Tongshinsa protesting against the Daibutsu shrine's receptions, Hoshu did not hesitate to speak for the interests of Tsushima and the Shogunate. This attitude, which is different from those of his faith diplomacy(誠信外交論), seems to be a desperate measure to coordinate the inevitable conflicts that arise in the diplomatic arena. Thirdly, Hoshu tried to introduce Japan's talented literati and valuable books. Hoshu tried to introduce Japan's academic achievements to Choson by helping Japanese writers such as Toriyama Shiken and Karakane Baisho to be known to Tonshinsa. He also played a role in making Sorai School’s literati Ymagata Shunan to gain national prestige in Japan. In 1711, the reputation of Sorai School has spread all over the country. When the wind began to blow, there was the presence of Amenomori Hos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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