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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비어천가約本』에 대한 연구

A Study on the Summary Text of Yongbieocheon-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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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초록

그동안 『용비어천가』에 대한 연구는 대개 校書館에서 간행된 궁중 판본만을 위주로 진행되었던 탓에, 작품이 실제 향유 · 수용되는 양상에 대해서는 뚜렷한 검증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위와 같은 견지에서 『龍飛御天歌豊沛館改撰約本』(『約本』)은 매우 독특한 위상을 지니는 판본이다. 광해군대 함경감사였던 韓浚謙(1557∼1627)에 의해 제작된 『약본』에는 총125개장의 원작 가운데 단26개장만이 선별되어 수록되었을 뿐 아니라 방대한 양의 주석과 할주 역시 각章당 한두 문장 정도로만 간략히 초략 · 언해되었다. 『약본』이 간행된 배경으로는, ①한준겸이 왕조의 발상지인 함흥에 머물면서 국조들의 자취와 지역적 분위기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던 점과 ②그가 관내의 풍속을 개량하기 위한 방법으로써 함경도 지역의 사적이 개재된 『용비어천가』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점, ③광해군 연간에 『용비어천가』의 重刊이 추진됨으로써 『약본』을 제작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한편, 『약본』의 초략양상과 내용을 검토하면, 크게 두 가지 두드러진 특성이 나타난다. 인물의 배정에 있어서 四祖의 사적을 중심으로 초략이 이루어졌다는 점과 내용상의 특성에 있어서 후대 임금을 향한 規戒之義의 비중이 대폭 확대되었다는 점이 그것이다. 첫 번째 특성과 관련해서는, 『약본』이 왕조 창업의 경과 자체보다는 함경도가 왕조의 발상지라는 주제쪽에 강조점을 두어 제작되었으므로, 이 지역에서 주로 활동했던 사조의 행적이 전면에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당시 북방에서는 여진이 급속하게 세력을 확대해 가던 시점이었던 만큼, 함경감사의 소임을 맡은 한준겸으로서는 관내의 민심이 이반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해야 했으며, 그 같은 필요성에서 관민들에게 사조와 함경도의 위상을 강조했던 것이라 추정된다. 두 번째 특성 역시 시대적 정황과 연관지어 해석할 필요가 있다. 즉, 한준겸에게 있어서 왜란의 치욕은, 선왕대의 간난신고를 잊지 말라고 당부했던 『용비어천가』 毋忘章들의 권고사항이 후대 임금들 사이에서 올바로 지켜지지 않아 발생했던 것으로 인식되었을 여지가 있다. 더구나 여진이 발흥함에 따라 또 다른 전란의 위협을 느껴야 했던 당시로서는 이 같은 권고가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왔을 개연성이 크다. 따라서 후대 임금들은 선왕들의 고난을 잊지 말고 끊임없이 근신해야 한다는 무망장의 뜻에 한준겸이 깊이 공감하여 위와 같이 규계지의가 대폭 확대된 형태로 『약본』을 제작했으리라 여겨진다. 결국 『약본』은, 『용비어천가』가 특정한 지역적 기반과 시대적 목적에 따라 변개되어 유포 · 향유되기도 하였다는 양상을 실증하는 문건이면서 원작에 대한 사대부 관료적 해석의 단면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특히 이러한 향유양상은 궁중에서 이루어진 <鳳來儀> 정재의 형태와 뚜렷이 대비된다는 점에서 『약본』의 자료적 가치는 더욱 중요하게 부각된다.

Abstract

The Summary Text of Yongbieocheon-ga revised in Pungpaegwan(龍飛御天歌豊沛館改撰約本, 約本) was published by Han Jun-gyeom(韓浚謙), Governor in Hamgyeong Province in the era when the 15th King Gwanghaegun(光海君) reigned. The Summary Text was published because of the following three reasons: ①Because, Han Jun-gyeom could experience how the founders of the country lived their lives, during he stayed in Hamheung(咸興) ②Because, he was interested in Yongbieocheon-ga including stories of Hamgyeong Province, as part of a bid to improve practices in his area. and ③Because, the republication of Yongbieocheon-ga was made in the royal palace during King Gwanghaegun reigned. The Summary Text takes on the two characteristics. This text was firstly published based on historical recordings about the four late kings(四祖), and in a even broader sense, this text came to be published to the effect of ringing an alarm and wake-up call to the subsequent kings. Firstly, allowing that the Summary Text was published in order to highlight Hamgyeong Province, the birthplace of the Joseon Dynasty, it can be cited that all the traces that the late kings went through in the province were recorded in the text. Also, given that Jurchens(女眞) began to expand their territory in northen part of Joseon, at that time, Han Jun-gyeom might probably have to be very careful so that public sentiments could be undisturbed, and in this regard, he was expected to assert local officials and ordinary people on how important the recording of late kings and the status of Hamgyeong Province are. Another characteristic of the Summary Text is also correlated to the historical background at that time. Han Jun-gyeom might perceive that the humiliation from Japanese Invasion(壬辰倭亂), resulted from the fact that succeeding kings failed to abide by advice from Chapters of "Mu-mang(毋忘)" meaning "Don't forget" in Yongbieocheon-ga that "Succeeding kings must nor forget about a series of ordeals that late kings underwent." At that time when Jurchens were on the eve of intrusion, the possibility is great that such advice might impress Han, too much. Thus, it is deemed that Han would be impressed by the contents in Chapters of "Mu-mang" so as to add a majority of meanings of "ringing an alarm and wake-up call", in the Summary 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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