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夢見諸葛亮>의 작자 劉元杓의 동아시아 정세 인식과 그 추이

Yu, Wonpyo(劉元杓)’s Judgement of East Asian Situation in the Early 20th Century and His Work MonggyeonJegalryang(夢見諸葛亮)

0

조회

0

다운로드

1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초록

본고는 유원표의 행적과 그가 남긴 시문, 그리고 <몽견제갈량>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 그의 동아시아 정세 인식의 추이를 고찰한 것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러일전쟁 이전 조선에서는 人種論에 기반한 삼국제휴론이 널리 퍼지고 있었는데, 이는 만주를 점령한 러시아의 위협 때문이었다. 이에 반해 당시 유원표는 러시아를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하긴 했지만, 그것이 인종론에 기반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까닭에 그는 일본을 제휴의 대상보다는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둘째, 러일전쟁은 유원표가 인종론을 전면적으로 수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원표는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힘에 찬탄을 금치 못하는데, 이러한 찬탄은 당시 조선의 상황과 대비되어 조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유원표는 일본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장차 한·청·일 삼국이 鼎峙하여 동양 평화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셋째,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의 식민지화를 노골적으로 진행하였고, 결국 을사늑약으로 이어졌다. 이런 점에서 <몽견제갈량>은 ‘러일전쟁 승리의 환희와 을사늑약의 충격’ 사이에서 유원표가 나름의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앞날을 모색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각 시대마다 主點과 客點이 있다는 전제 하에 러일전쟁 이후를 인종경쟁의 시대로 규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당시의 정세를 설명하였다. 넷째, 을사늑약 이후 활발한 계몽활동을 벌이던 유원표는 망국을 전후로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러한 변모에는 일본시찰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방문했던 경험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결국 ‘문명의 기준’ 일본에 대한 절대적인 숭배와 현실적인 이익만이 동기이자 목적이라는 극단적인 주장으로 이어졌다.

Abstract

This paper aims to research the trends of Yu, Wonpyo’s judgement of East Asian situation with his works and newspaper articles. The results are as follows. Before the Russo-Japanese War, the argument went down very well with many people in Joseon(朝鮮) that the alliance of Korea, China and Japan was needed to hold back the invasion of Russia. Especially this argument was based on the theory of human race. However, Yu did not accept the theory of human race, so he regarded Japan not as the partner of alliance, but as the vigilance. The Russo-Japanese War ended in Japan’s win, this led Yu to the embrace of the theory of human race and to the negative perception of Joseon. And he expected that the alliance of Korea, China and Japan would bring about the peace in the Asia. But Japan’s win caused the Protectorate Treaty between Korea and Japan concluded in 1905. MonggyeonJegalryang was the results of Yu’s worries about the situation of Joseon and East Asia. In this work, Yu insisted that major and minor problems exist on every era, and the competition between yellow and white begin after the Russo-Japanese War. After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Yu began to follow the Japanese colonial policy aggressively, his defection came from the tour for Japan in 1909. He regarded Japan as the absolute standard and model of Civilization and Enlightenment, and insisted extremely that the practical gain should be the motive and the object.

참고문헌 (27)

  1. 劉元杓, "<夢見諸葛亮>, 廣學書舖",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 (1908)
  2. 이성혜, "제갈량과 20세기 동양적 혁명을 논하다 -역주 몽견제갈량-" (2015), 산지니
  3.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URL]
  4. 윤현숙, "조선책략·대청흠사필담" (2019), 보고사
  5. "新文界",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
  6. "別乾坤"[URL]
  7. "국역 윤치호 영문일기"[URL]
  8. "海鶴遺書"[URL]
  9.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URL]
  10. "朝鮮總督府官報"[URL]
  11. "承政院日記"[URL]
  12. 김도형, "대한제국기 계몽주의 계열 지식층의 ‘삼국제휴론’-‘인종적 제휴론’을 중심으로-", 한국근현대사연구, 13, pp.7~33 (2000)
  13. 배삼주, "劉元杓의 夢見諸葛亮에 대한 연구", 석사, pp.2000
  14. 백동현, "대한제국기 언론에 나타난 동양주의 논리와 그 극복", 한국사상사학, 17, pp.513~551 (2001)
  15. 신재홍, "한국몽유소설연구", pp.199~206 (1994), 계명문화사
  16. 심재숙, "<夢見諸葛亮>의 창작의도와 주제의식", 우리어문연구, (18), pp.173~205 (2002), 우리어문학회
  17. 윤명구, "개화기소설의 이해", pp.174~192 (1986), 인하대 출판부
  18. 이성혜, "蜜啞子 劉元杓에 대한 傳記的 고찰", 동북아 문화연구, 1(33), pp.169~184 (2012), 동북아시아문화학회[DOI]
  19. 이성혜, "밀아자 유원표의 계몽활동과 대외인식", 일본문화연구, (46), pp.431~455 (2013), 동아시아일본학회[DOI]
  20. 이성혜, "유가사상의 변혁을 통한 20세기 동양적 혁명에 대한 몽상적 사유 ― 『몽견제갈량夢見諸葛亮』 분석", 국학연구, (24), pp.35~62 (2014), 한국국학진흥원[DOI]
  21. 조재곤, "1904~5년 러일전쟁과 국내 정치동향", 國史館論叢, 107, pp.1~26 (2005), 국사편찬위원회
  22. 정환국, "애국계몽기 한문소설(漢文小說)에 나타난 대외인식의 단상 『夢見諸葛亮』의 경우", 민족문학사연구, 23, pp.201~224 (2003), 민족문학사연구소
  23. 조상우, "애국계몽기 한문산문의 연구", pp.186~214 (2002), 다운샘
  24. 조성운, "매일신보를 통해 본 1910년대 일본시찰단", 韓日民族問題硏究, (6), pp.3~36 (2004), 한일민족문제학회
  25. 조성운, "1920년대 일제의 동화정책과 일본시찰단", 한국독립운동사연구, (28), pp.203~260 (2007),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DOI]
  26. 현광호, "대한제국기 삼국제휴방안과 그 성격", 한국근현대사연구, 14, pp.5~36 (2000)
  27. 황재문, "애국계몽기 몽유록과 힘의 윤리", 규장각, (35), pp.219~242 (2009), 규장각한국학연구원[DOI]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8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