蜜啞子 劉元杓의 1910년부터 1929년까지의 행적에 대한 고찰
A Study of Yu Wonpyo(劉元杓)’s life from 1910 to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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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개화지식인이자 <몽견제갈량>의 작자로 널리 알려진 유원표의 1910년부터 1929년까지의 행적을 고찰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유원표는 망국 직전인 1910년 4월에 제2회 일본관광단에 참여하여 일본을 방문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일본을 문명개화의 기준이자 모범으로 간주하고 식민지 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게 되었다. 귀국 후 유원표는 일본 방문 경험을 바탕으로 開城의 실업가들과 함께 경성관광단을 조직하였는데, 이는 일제 식민지 정책의 성과를 직접 확인하고 선전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었다. 둘째, 일본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중국과 북태평양에서 요충지를 점령할 즈음 유원표는 <夢坐富士山最上頭 望見東西地球>라는 작품을 신문에 게재하였다. 이 작품에는 일본의 승전에 기인한 낙관적인 정세 인식, 우승열패와 약육강식을 자연의 법칙으로 간주하는 사회진화론, 성리학적 가치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 大同時代의 도래에 대한 기대 등이 나타나 있는데, 특히 康有爲의 『大同書』와 유사한 사고의 틀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셋째,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세계평화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출되었는데, 유원표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맞추어 이른바 榷兵論을 주창하였다. 각병론은 세계평화를 위해 각국이 常備軍을 폐지하고, 모든 군사시설을 제주도에 모아두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각병론은 그다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는데, 이는 그의 주장이 斷想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으로 보인다. 넷째, 개화지식인으로서 知者·學者·志者로 일컬어지던 유원표에 대한 평가는 만년이 되면 전혀 달라진다. 金振九는 시대적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편협한 인물로 평가하였는데, 이는 그가 일본을 문명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고서 일본 방문의 경험에서 더이상 진전된 시각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젊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원표의 존재감은 급격히 옅어지게 되었다.
Abstract
This paper aims to research Yu Wonpyo(劉元杓)’s life from 1910 to 1929 when he died. The results are as follows. In April 1910, Yu visited Japan as a tourist of 2nd Japan tour group which was organized by KyungsungIlbo(京城日報), and this experience of visiting Japan influenced him to regard Japan as the absolute standard of civilization and enlightenment. After his return from Japan, Yu began to follow the colonial policy of Japan actively, the key example was organizing of Seoul tour group. The aim of Seoul tour group was the propaganda of the colonial policy. When Japan participated in World War I and occupied the strategic points in China and the North Pacific, Yu published his poet(夢坐富士山最上頭 望見東西地球) in MaeilSinbo(每日申報). This poet reflected the optimistic mood of World War I caused by Japan’s win, the theory of social evolution, the total denial of Neo-Confucianism and the expectation of Datong(大同) era. Especially it was watched that there was a similar logic of Datong(大同) era between this poet and Kang Youwei(康有爲)’s Datong Shu(大同書). Many opinions of world peace were suggested after the end of World War I, Yu stated his view of world peace, which was called Gakbyeongron(榷兵論). It was an argument that the standing armies in all countries should be abolished and all of military facilities should be placed only in Jeju(濟州) Island. However, his argument was just a fragmentary thought, so it did not receive much acclaim. In later years, the evaluation of Yu had completely changed. Kim Jingu(金振九) regarded him as an outdated and narrow-minded person, because Yu clung to his old opinion of regarding Japan as the absolute standard of civilization and enlightenment. He was no longer meaningful presence especially for the young intellectu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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