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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예배의 변천, 역사적 고찰

An Historical Study on the Worship Transition of the Korean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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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독교신학

초록

한국교회는 지금 질적 양적으로 심각할 정도로 쇠퇴기를 맞고 있다. 이 같은한국교회 쇠퇴는 예배의 변천과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다. 일반적으로 교회성장의 정체 혹은 쇠퇴는 예배의 역동성을 잃게 만들어 교회가 예배 생명력을잃게 만들고, 다시 예배의 역동성 상실과 예배 침체는 교회의 교세 침체로 이어진다. 한국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본 연구는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한국교회 선교초기부터 현재까지 예배가 어떻게 변천을 해왔는지를 1차 문헌과 2차문헌을 통해 추적하였다. 특별히 초기 한국교회 예배 형식과 성격을 이해할수 있는 각 교회가 발행한 주보는 이 연구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한국교회의 예배 형식과 성격은 처음 이 땅에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들에 의해 토대가 구축되었다. 특별히 한국교회 개척선교사인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것은 이들이 드렸던 예배의 형태와 성격이 자연스럽게 한국교회 예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선교 초기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은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오후 2시에 주일대예배를 드렸다. 그러다 1890년대 접어들어 오전 11시, 오후 2시, 저녁 7시 세 차례 예배를 드렸고, 이와 같은 주일 세 번 드리는 예배형식은 평양대부흥운동을 전후해서도그대로 진행되었다. 그러다 1920년대 말에 접어들어 주일에 오전과 저녁에 두번 예배를 드리는 주일예배 형식으로 변천을 맞았다. 주일예배는 교회의 상황에 따라 약간씩 달랐지만 오전의 경우 11시에 저녁의 경우 보통 7-8시에 드렸다. 이 시대 예배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목사가 모든 것을 다 주관하지 않고평신도들이 사회, 기도, 심지어 설교도 맡은 경우가 매우 흔했다. 평신도들이참여하는 예배를 진행한 것이다. 1930년대 말부터 신사참배 강요가 강하게 요구되면서 한국교회는 주일에 천황숭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예 교회적인차원에서 주일에 이를 실시했다. 해방 후 한국교회 예배는 놀라운 변천을 맞았다. 첫째, 목회자 중심의 예배로 모든 예배가 바뀌었다. 목회가 사회를 보고 목회자만 설교를 하는 교회들이 대부분이다. 둘째, 산업화로 교회에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1970년 이후 눈에띠게 다부제예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편의한 시간에 맞출 수 있도록 예배시간을 조정한 것이다. 셋째, 1980년대부터 주보에서 교회 통계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넷째, 신도시 등장으로 주일저녁예배가 폐지되고 주일오후 예배로 시간이 조정되었다. 다섯째, 1990년대 이후 열린예배가 교회에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찬양이 강화되고 예배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반면 말씀이눈에 띠게 약화되기 시작했다. 말씀 중심의 예배가 감성중심의 예배로 전환한것이다. 이와 같은 한국교회사를 통해 살펴본 한국교회예배의 변천은 심각한침체기를 맞고 있는 한국교회에 나갈 방향이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Abstract

Korean church is now facing a serious challenge from qualitative and quantitative decline. The decline of the Korean church has a deep connection with the worship transition. Historically, the stagnation or decline of Church growth leads to the loss of vitality at worship, causing further decline of Church growth. Korean Church is no exception. The present study traced, from the beginning of the mission in Korea, how the protestant worship has experienced transitions. For this study, weekly church bulletins provided the important information necessary to understand the early Korean church worship format and characteristics. The protestant worship in Korea was introduced by the early missionaries, and it was changed in some ways. Underwood and Appenzeller had an important role in the shaping of the protestant worship; the nature and form of worship they practiced decisively influenced Sunday services in Korea. In the beginning stage of Korea mission, Sunday services were held only once at 2 pm, and then from the 1890s through the Great Revival period, 1900-1910, they were held three times at 11 am, 2 pm, and 7 pm. However, from the late 1920s,they were held only two times in the morning and evening. From the late 1930s, the shintoism, being strongly and forcefully required by Japanese government, was practiced at Sunday service in Korea. After the Liberation, the Korean church worship has experienced a remarkable transition. First, whereas laity actively participated in Sunday worship service,sometimes even as a preacher, before Liberation, Sunday worship was changed to pastor oriented service . Second, because of emergence of industrialization and capitalization in the 1970s, urban churches held Sunday services multiple times; Christians could come at their convenience. Third, starting in the 1980s,statistical reports began to disappear from the weekly church bulletins. Fourth, with the people moving into newly developed cities, evening Sunday service 7 pm was either abolished or changed to 2 or 3 pm. Fifth, seeker’s services,introduced in the 1990s, destroyed the balance of the Word and human sensibility by diminishing the former and increasing the latter. Today’s Korean church, in a transition age, should learn from Korean church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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