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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자강회 남양지회의 애국계몽운동

Patriotic Enlightenment Movement of Daehan Jaganghoi’s Namyang Bra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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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독교신학

초록

대한자강회는 애국계몽단체로 자강정신과 애국정신을 심어주면서 교육활동, 산업활동, 그리고 정치개혁을 통해 대한제국의 독립자강을 이루고자 활동하 였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고자 본부 회원들도 확장시키면서 지방에 지회 를 설립하여 33개를 조직하였다. 남양지회는 남양감리교회의 목회자였던 이창회전도사가 먼저 본부회원으 로 가담한 후에 1906년 8월에 지회를 신청하여 승인을 받았고, 1907년 4월까 지 회원이 3차에 걸쳐 64명이 되었다. 이 회원들은 기독교인들이 일부 있었 고, 대부분은 유학자들인 지역의 유지신사들이었다. 남양지회는 정시현, 홍대필, 정태현, 김교찬 등의 학교설립과 김효원의 신 설학교 교육의 담당과 같이 이 지역사회의 근대교육을 실시할 새로운 학교 설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이창회는 그 이전부터 설립되어 있던 보흥소학교를 남양의 가장 중요한 중등교육기관으로 발전시켰다. 이 과정에 서 지회원들의 많은 지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향교의 토지 절반을 보흥학 교로 이전받고 관청건물 사용의 허가 과정에서는 본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 았다. 보흥학교는 야학을 설치하여 낮에 교육받을 수 없는 어린이들을 교육 하였다. 보흥학교는 공립소학교와 상동소학교, 양정의숙같은 주변학교들과 연합운동회를 개최하였고, 김교찬은 서여제면에서 연합운동회를 개최하여 학 생들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에게도 애국심과 근대의식을 고취하고자 하였다. 남양지회는 경제발전을 위해 남양지역의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하였고, 일 부회원들을 염상회사를 만들어 재정자립을 꾀하기도 하였다. 남양지회는 토 지이전을 둘러싸고 향교와 충돌하기도 하였으나, 기독교인들이 개화유학자 들과 협력하여 본부의 조직목적을 충실하여 추진하였으나 일본의 세력에 철 저하게 저항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Abstract

Daehan Jaganghoi was a Patriotic Enlightenment Organization. It tried to achieve the Independence-Self Reliance through education, industry, and political reform with the infusion of the patriotic spirit. In order to fulfill this goal, it increased the number of the members in the central committee and founded the 33 branches in the important local cities. Lee Chang Hoi who was the evangelist of Namyang Methodist Church joined the Daehan Jaganghoi as the member of the central committee. Afterwards he requested the foundation of its branch at Namyang in August 1906 and it was approved. The membership increased from 37 to 64. The membership consisted of some christians and most enlightened confucian scholars. Namyang branch played the important roles in the foundations of the private schools such as those of Jung Si Hyeon, Jung Tae Hyeon, and Kim Kyo Chan, and the teaching of Kim Hyo Weon in new built school for modern education. Lee Chang Hoi developed BoHeong school into the most important middle school at Namyang. In the process of it’s development, he received the supports of the branch’s members and particularly the strong support of the central committee in the process of the transfer of the land of the confucian temple. Lee Chang Hoi and Kim Kyo Chan held the joint sport meeting in which the near schools participated. They tried to spread the Patriotic Enlightenment Movement in the students and the residents who attended the sport meeting. Namyang Brand took the lead of the National Debt Repayment Movement in 1907. For the economic development, some members founded the salt company at Seojeujemeon in 1907. It push forward with the purposes of Daehan Jajanghol in the cooperation of the christians and the enlightened confucian scholars, struggling with the confucian temple. But it had a obvious limit that it did not strongly resist the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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