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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소수서원 《중용》강회의 특징과 퇴계학의 분화 -‘호학(湖學)’의 계승과 분화를 중심으로-

Assemblies for lecturing Doctrine of the Mean at Sosu Academy in the 19 century and the division of Toegye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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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철학

초록

이 연구는 조선후기 대산 이상정에게 계승된 영남 퇴계학의 한 학맥이 19세기 소수서원 강학을 통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계승, 분화되고 있었는지를 밝히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2장에서는 먼저 19세기소수서원 강학의 변화와 추이를 개괄적으로 검토하였다. 다음 3장에서는19세기 소수서원에 등장한 이상정 문인들의 강학 활동을 구체적으로 검토한 뒤, 본래 안동과 예안 출신으로 고산서당과 호계서원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던 이들이 19세기 이래 소수서원에 대거 등장하게 된 배경과계기는 무엇이었는지 검토하였다. 4장에서는 19세기 강학 중 기록이 상세히 남아 있는 1827년 《중용》강회의 특징과 의미를 분석하여 19세기 소수서원 강학이 ‘호학(湖學)’의학풍 계승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고찰하였다. 이때의 《중용》강회는거기서 그치지 않고 사후에도 대산 문하들 사이에 회자되며 강회에서의토론 내용에 대한 후속 논쟁이 이어지고 있었다. 유휘문과 강운에 의해이어진 후속 논쟁은 표면적으로는 《중용》수장의 ‘계신공구’에 대한 해석의 차이를 두고 벌어졌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대산 공부론에 대한 해석이 어떻게 달라지느냐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었다. 이에 유휘문은 글자 한 자에 대한 미묘한 해석의 차이에 따라 대산 학맥의 공부론에 대한이해가 어떻게 갈라질 수 있는지에 초점을 두고 치열한 반론과 비판을제기하였다. 결국, 《중용》강회에서의 문답 및 유휘문과 강운의 후속 논쟁은 모두‘심학(心學)의 공부법을 어떻게 하면 일상에서 지속하고 실천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궁극적으로 탐구하고 있었다. 또한 ‘실천적 공부론’을 강조한 학문 경향은 19세기 소수서원 강학에서 활용된 주요 교재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주자서절요》, 「옥산강의」, <연평답문>, 《중용》등은 모두‘위기지학의 공부론’, ‘마음공부를 통한 일상에서의 실천’에 초점을 둔 것으로, 19세기 소수서원 강학이 ‘실천적 공부론’을 일관되게 지향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곧 영남 퇴계학의 일파를 이룬 이상정의 학문, 즉 ‘호학’의 심학적 경향과 실천적 학풍을 동시에 반영한 것이었다.

Abstract

This paper aims to examine that how ‘Hohak(湖學)’, Toegye Studies(嶺南退溪學) in Yeongnam province, is inherited and divided by education at Sosu Academy in the 19th century. First, I examined educational changes at Sosu Academy in the 19th century. Its’ educational materials had been changed from textbooks for Civil Service Examination to for moral ‘self-cultivation’. Second, I checked educational activities by Hohak(湖學) school and it’s origin at Sosu Academy in that period. Third, I examined the meaning of assemblies for lecturing Doctrine of the Mean(中庸 講會) at Sosu Academy in 1827 and the process of inheriting academic traditions of ‘Hohak(湖學)’. In this assemblies, they were trying to figure out the original purpose of ‘self-cultivation theory(工夫論)’ established by their teacher Lee Sang Jeong(李象靖). In the end, they were pursuing self-cultivation theory for ‘practice’, and it was the very academic traditions of ‘Hohak(湖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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