毅堂 朴世和 선생의 儒學思想
Park-Sewha teacher's spirit of Confuc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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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毅堂 선생님은 23일 동안 絶食하시고 끝내 순국한 선비 중의 선비로서, 죽음으로써 庚戌國恥에 항거한 인물이었다. 나라가 속절없이 무너진 상황 하에, 참된 지식인의 고뇌가 함축된 절박한 몸부림이었다. 지식인 노릇하기가 이토록 힘들고 어려웠다는 말인가? 의당 선생의 절명시는 비슷한 시기에 자결로 충정을 받쳤던 ‘매천 황현’의 절명시와도 다를 바가 없다. 의당 박세화 선생(1834~1910)의 생몰연대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국내・외적으로 격동기를 거치며 망국으로 치닫는 모든 과정을 지켜본, 역사의 살아있는 증인과도 같았다. 그는 어렵고 고달픈 청춘으로부터 험난한 개항, 그리고 근대화를 거치기까지, 그는 오직 나라와 민족을 한시도 잊지 못하였던, ‘타고난 선비’였다. 그의 마음속엔 늘 비장함이 숨어 있었고, 그의 언행과 遺跡은 당시 그 어떤 高官들보다도 우리에게 큰 울림을 전해주고 있다. 또한 당신은 ‘참된 지식’이 무엇이고, ‘지식인의 떳떳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몸소 보여주시고 生을 마감하신 인물이다. 그렇다면, 그의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을 가능케 할 수 있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의당 선생님은 도대체 어떠한 시대적 소명을 가졌기에 그토록 숭고한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용기의 足跡을 남기실 수 있었을까? ‘철학’이 당시의 삶과 현실을 토대로 만들어진 자신만의 가치관이자 세계관이라 한다면, 의당 선생님의 우국충정의 발로를 끝내 순국으로 이르게 하였던 저점은 어디에서부터 기인하는가?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가 毅堂 선생님을 기억해야만 하는 당위성은 무엇이고, 그를 왜 萬世師表의 귀감으로 여겨야만 하는지에 대하여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본고는 그의 언행과과 지행관이 남다른 성리학적 세계관으로부터 가능했으리라는 전제로부터 출발하며, 그의 反主知主義의 실천철학에 무게를 싣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Abstract
Park-Sewha teacher(1834-1910) is a living witness of history who has watched the entire process of going to ruin through turbulent times both at home and abroad, as evidenced by his secret ties. From the difficult and arduous youth to the harsh opening of the port and modernization, he was a born Confucius spirit, who had not forgotten only the country and its people for a moment. There was always a solemnity hidden in his heart, and his words and deeds convey a greater impression to us than any other high-ranking government official at the time. He also told us what 'true knowledge' is. And he personally practiced what "the honorable life of an intellectual" is like and ended his life. So, what made this series of actions possible? What kind of calling did he have to give up the courage to throw away such a noble life? If 'philosophy' is one of your own values and worldviews based on the life and reality of the time, where is the root that led to the death of your patriotic martyrdom? What is the justification that we still have to remember him 100 years later? Why should we regard him as a model for the eternal spirit of Confucius? This was the question of this paper. This paper argues that his knowledge and practice would have been possible from different people and different philosophies. And the reason was that his knowledge was based on the philosophy that practice was import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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