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병합’에 대한 재한일본 언론의 동향 - 잡지 『朝鮮』을 중심으로 -
A Tendency of Japanese Public Opinion ‘Magazine Joseon’ in contrast to Korean Annex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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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은 1876년 조일수호조규체결 이후 한국에 건너오기 시작하여 러일전쟁과 을사늑약을 거치면서 급속히 그 수가 증가했다. 한국으로 건너 온 일본인 가운데에는 관리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상당수에 달했는데 이들은 이민자인 동시에 한국인에게 있어서 ‘식민자’, ‘종주국민’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는 존재였고, 통감부에 대해서도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는 세력으로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러일전쟁 종결로부터 시작된 통감부 정치는 명목상 한국을 ‘병합’한 것이 아니고 ‘보호’한다는 입장이었다. 통감부의 이러한 점진적 병합책 내지 보호국 정책과 심한 마찰을 빚었다. 재한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생계는 물론, 종주국민으로서의 확실한 지위 확보를 위해 통치기관인 통감부에 자기 의견을 표현할 필요성이 생겼고, 통감부에 대한 이권요구 수단으로서 신문, 잡지 등 언론활동을 활발히 벌였다. 그 가장 대표적인 재한일본인들의 종합잡지가 《朝鮮》이다. 대다수가 본국에서 사회적 저변에 위치해 있던 재한일본인은 ‘식민지’에서 ‘종주국민’으로서 자신들의 우월성을 유지하겠다는 의식과 한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朝鮮》을 통해 여과 없이 드러냈다. 《朝鮮》은 1908년 3월 日韓書房 사주 森山美夫(모리야마 요시우)에 의해 월간, 日文으로 경성에서 창간되었고, 잡지의 편집 등 실제 운영은 主幹 菊池謙讓(기쿠치 겐조)와 편집장 샤쿠오가 담당했다. 창간 1년 후인 1909년 3월부터 모리야마는 잡지사의 경영을 전적으로 샤쿠오에게 위임하였다. 이에 동 지의 발행처는 제 3권 제 2호(1909년 4월)부터 日韓書房에서 朝鮮雜誌社로 변경되었다. 초기 주간이었던 기쿠치는 잡지를 창간한 그 해 말부터 이미 글쓰기를 그만두고 있었으므로, 동 지의 실질적 편집과 운영은 새 주간 샤쿠오에 의해 이루어졌다. 『朝鮮』은 1912년 1월(통권 47호)부터 『朝鮮及滿洲』로 改題하여 1941년 1월(통권 398호)까지 발간되었다. 《朝鮮》의 1908년 9월 「제 2권 제 1호에 題하다」라는 기사에 의하면 “本誌는 한인에게는 우리 일본 제국 보호권의 진실한 의의를 논설한다. 또 세계에 대해서는 대한 정책의 변호 및 통감부 변호를 하겠다. 우리 일본 정부와 통감부에게 극력 苦言과 비평의 지위를 취하는 것이다.”고 했다. 대외적으로는 당국의 선전적 역할에 복무하면서도 대내적으로는 당국에 대립하는 자세를 밝히고 있다. 즉, 《朝鮮》은 일본 정부와 통감부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일본의 한국 지배를 한층 강화할 목적으로 창간되었다고 할 것이다. 《朝鮮》에서는 즉각적 병합을 추진하지 않고, ‘한인본위주의’정책을 추진하는 통감부의 점진적 병합론을 비판하였고, 아울러 재한일본인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항일의병을 ‘폭도’로 규정하여 이를 강력하게 진압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또한 《朝鮮》은 한국병합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한국의 역사가 고대에는 원래 일본과 조상이 같았었다는 同文同種의 논리를 펴면서 병합은 본래의 역사로의 회귀라고 불법적 강점을 합리화시켰다. 또 한국인에 대한 멸시관을 상세하게 게재하여 한국이 망할 수밖에 없는 나라였고, 뒤떨어지고 낙후된 낙오자국가를 근대화되고, 문명화된 일본이 끌어않아 천황의 은혜를 입게 되었으므로, 병합은 차라리 한국에게 행복이라는 논리로 그들의 침략행위를 정당화시켰다. 병합 이후에는 통치의 편리를 도모하기 위하여 한국인을 일본인으로 ‘동화’시키되 절대로 동등한 권리를 줄 수 없는 근본적인 ‘차별’의식을 전제로 하여 ‘동화’와 ‘차별’이라는 전혀 상반된 논리를 교묘하게 합쳐 운영하는 통치 방법론도 소개하고 있다. 결국 《朝鮮》은 병합 이전부터 한국에서 이미 식민자로 군림했던 재한일본인들의 즉각적 병합에 대한 절실한 바램과 그들의 종주국민으로서의 권리주장, 한국에서 통치자로 군림하기 위한 한국인 멸시관, 통치의 편리를 위한 ‘동화와 차별’의 논리를 고스란히 여과 없이 담아낸 당대 일본인들의 여론이었다. 그들 재한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은 식민지 시기를 통해 확대되고, 고착화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병합을 정당하고, 합법적이었다고 생각하는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에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불법적이고, 정당하지 못한 행위에 대한 합리화와 정당화의 논리였고, 침략자의 역사적 과오의 조작이론이었다. 문제는 이 범법행위에 대한 가해자의 자기합리화론이 제국주의 정서가 팽배하고, 그 침략이 이루어졌던 당대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재까지도 주장은 ‘합법적이기는 하나 도의적으로 부당했다’고 하는 논리, 즉 ‘부당하나 합법이었다’는 주장과 함께 ‘합법․유효․정당론’도 일본의 역사교과서에 버젓이 채택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불법적 침략행위에 대한 정당화론이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불편했던 기존의 한일관계 해소와 미래지향적이고 바람직한 양국관계의 수립에 크나 큰 걸림돌이 아닐 수 없다. 이 불법․부당한 강점 행위에 대한 합리론은 20세기 초 일본의 한국 강점당시 형성되어 현재 일본 및 한국의 일부 학계의 ‘식민지 근대화론’에서 뿐만 아니라, 일반 일본인들의 역사의식 속에 구조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더 크다고 할 것이다. 한일 간 큰 인식의 차이를 보이는 이 문제는 내셔널리즘을 고취시키는 중요 테마로서 그 합일점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북한과 일본 간의 과거사 해결문제에서도 역시 제일의 숙제로 남아 있다. 또한 연구자의 국적이나 처지에 따른 한국병합에 대한 논의는 현실적으로 한일 외교관계와 당사국의 정치적 입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더욱더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것이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study the recognition about Korean Annex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demonstrated in the Magazine Joseon . Magazine Joseon was published in 1908 by Japanese with a view to assimilating the Koreans into the Japanese culture so that the Japanese could advance into Korea. After the Protectorate Treaty of November 1905, Japanese residents in korea regarded protectorate korea as nearly colony. And they placed themselvese on the position of the people of the governing country and apparently revealed the consciousness of superiority to Koreans. This consciousness of Japanese residents, Magazine Joseon in Korea led to the criticism of the policy of Resident-General. They criticized that the policy of Residency-General is centered on Korea. Magazine Joseon asked more powerful control to korean resistsnces against Japan & Japanese. And Magazine Joseon insists immediate Korean Annex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Also, Magazine Joseon claimed that the ‘legitimacy’, ‘Justification’, even though Korean Annex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by force is ‘Inevitabile’. It was based on contempt for Korea & Koreans. And Magazine Joseon distorted Korean History, especially the ancient history, and asserted that the Korea & Korean have no experience of Independence in history. So, Magazine Joseon asserted ‘Assimilation’ & ‘Discrimination’ which were also ruling theory by Japanese Imperialism. Japanese Imperialism assimilated Korean to Japanese but it was not equality between Korean and Japan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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