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패전과 천황의 전쟁 책임- ‘성단’과 평화주의의 허구 -
The Defeat of Japan in World War II and the War Responsibility of the Emperor of Japan
0
조회
0
다운로드
8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패전을 전후하여 일본에서는 쇼와 천황에 관한 두 가지 신화가 창출되었다. 하나는 천황은 원래 평화를 사랑하는 평화주의자였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천황의 성스러운 결단, 즉 성단으로 비극적인 전쟁을 종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신화는 전후 7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되풀이해서 재생산되어오고 있다. 특히 최근에 와서는 일본의 우익교과서, 천황의 실록 공개, 옥음방송의 원반 공개 등을 통하여 쇼와 천황을 미화하는 움직임이 더욱 두드러지게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천황의 성단 신화와 평화주의자 이미지는 패전 당시 천황제 존폐가가로놓인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천황제를 존속시키고 천황의 전쟁 책임을회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창출된 신화에 다름 아니었다. 이 글에서 검토한 내용의 요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패전을 앞두고 천황과 일본 지배층이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집착한것은 ‘국체호지’, 즉 천황제를 유지하는 일이었다. ‘성단’은 ‘국체호지’를 위한 최후의 결단이었던 것이다. 둘째, ‘성단’의 결과 일본의 전쟁을 자존과 자위를 위한 전쟁으로 정당화하고 나아가 국체를 지키려는 의도에서 작성된 ‘종전의 조서’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왜곡된 역사인식의 뿌리가 되었다. 셋째, 1946년 1월 1일 천황의 ‘인간선언’은 평화주의자 천황의 이미지를 고도로 미화한 결정판이었다. 그것은 또한 천황이 입헌군주로서의 원칙에 충실했다는 논의와 함께 자애로운 천황의 이미지와 결부되어 전후 일본의 역사인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쇼와 천황의 전쟁 책임에 관해서는 특히 천황이 사망한 1989년 이래 새로운 사료의 발굴, 공개 등을 배경으로 1990년대부터 연구가 심화되어 왔다. 필자는 이러한 선행연구의 성과를 바탕으로 패전 직후 천황제가 전쟁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고 면책되었던 배경에 천황, 천황제를 일본의 점령정책으로 이용하려는 미국, 특히 맥아더 사령관의 역할과 패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천황에대한 존숭심을 버리지 않았던 일본 민중의 동향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논한 바 있다. 또한 이제까지 선행연구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던 전후일본 사회에서 천황의 전쟁 책임 문제가 어떻게 인식되어 왔는지를 일본 정부와 궁내청, 언론의 역할, 그리고 여론조사 등을 통해서 분석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패전 직후 천황과 일본 지배층이 천황제 존속을 꾀하고 천황의 전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성단’ 신화와 평화주의자 천황의 이미지가 창출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추적한 이 글은 앞선 연구의 공백을 메우는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Abstract
During the post-war period in Japan, there were two myths fabricated regarding the Showa Emperor. One myth posits that the Japanese Emperor was a peace-loving pacifist; the other myth relates that the termination of war was made possible with the Emperor’s sacred imperial decision. These two myths have persisted and been reproduced to date. It is notable that the glorification of the Emperor’s achievements has been revived at this time through the publication of information about the Emperor during the post-war period. This study aims to reveal that these widely held myths were introduced so to maintain the Emperor system and save the Emperor himself from being accountable for his actions during the war. The following points will be addressed in this study. First, the Emperor and the elites prioritized the safeguarding of the Emperor system toward the end of the war. The propaganda of the “imperial decision” served as a last resort in order for them to save their ruling system. Second, this paper argues that the decision made by the Imperial leader offered the basis of the self-satisfying justification of the war as well as the root cause of the distorted view of history that continues to endure. Third, the Emperor’s Humanity Declaration on January 1, 1946, was the most crystallized form of the propaganda of the Showa leadership by claiming him to be a noble pacifist. As the Emperor’s fallible role as a constitutional monarch was associated with the image of the benevolent Emperor, such a belief is found to have had great influence on the historical view of the post-war Japan.
참고문헌 (30)
- 박진우, "천황의 전쟁책임" (2013), 제이앤씨
- 小森陽一, "天皇の玉音放送" (2003), 五月書房
- 纐纈厚, "「聖断」虚構と昭和天皇" (2006), 新日本出版社
- 高橋紘, "天皇家の密使たち" (1981), 現代史出版会
- 高橋紘, "象徴天皇" (1987), 岩波新書
- 丸山照雄ほか, "戦後史の天皇" (1986), 自由国民社
- 増田都子, "昭和天皇は戦争を選んだ!" (2015), 社会批判社
- 下村海南, "終戦秘史" (1985), 朝日文庫
- 山田朗, "大元帥·昭和天皇" (1994), 新日本出版社
- 小熊英二, "民主と愛国" (2002), 新曜社
- 読売新聞社, "昭和史の天皇4 玉音放送まで" (2012), 中公文庫
- 吉田裕, "昭和天皇の終戦史" (1992), 岩波新書
- 吉田裕, "日本人の戦争観" (1995), 岩波書店
- 色川大吉, "ある昭和史" (1978), 中央文庫
- ジョン, "敗北を抱きしめて" (2001), 岩波書店
- 千本秀樹, "天皇制の侵略責任と戦後責任" (1990), 青木書店
- 東野真, "昭和天皇 二つの独白録" (1998), NHK出版
- ハーバート, "昭和天皇" (2002), 講談社
- 保阪正康, "敗戦前後の日本人" (1989), 朝日文庫
- 藤原彰, "昭和天皇の15年戦争" (1991), 青木書店
- 박진우, "패전 직후의 천황제 존속과 민중", 대구사학, 75, pp.225~264 (2004), 대구사학회
- 박진우, "敗戰 直後 天皇制 存續과 在日朝鮮人", 韓日民族問題硏究, (8), pp.37~80 (2005), 한일민족문제학회
- 伊藤隆, "『独白録』を徹底研究する", 文藝春秋 (1991)
- 木下道雄, "側近日誌" (1990), 文藝春秋社
- 木戸幸一, "戸幸一日記" (1966), 東京大学出版会
- 寺崎秀成·御用掛日記, "昭和天皇独白録", pp.1991, 寺崎秀成
- 鈴木貫太郎伝記編纂委員会, "鈴木貫太郎伝" (1960), ゆまに書房
- 鶴見俊輔, "天皇百話" (1989), ちくま文庫
- 芦田均, "芦田均日記" (1986), 岩波書店
- 外務省, "終戦史録" (1952), 新聞月鑑社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