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독도 포함 해양 관련 역사분야의 성과와 한계
The Performance and Limitations of Research in Modern Maritime History Including Dokdo
0
조회
0
다운로드
5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일본은 제국주의적 영토침탈의 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던 소위 ‘시마네현 고시제40호’ 등을 통해서 자기소모적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2005년 3월 시마네현의회의 ‘죽도의 날’ 조례 제정으로 표면화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대한민국이 독립을 쟁취했다는 역사적·법률적 사실에 대한 부정이다. 기존의 연구성과에도 불구하고 향후 1905년 전후 일본 주도의 동북아시아질서의 재편이 어떻게 독도를 둘러싼 한반도에 영향을 미쳤는가를 추적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1900년 전후 타타르(Татарский)해협부터 대한해협까지의 일본과 러시아 해양정책과 독도·울릉도에 관한 상호연관성을 구체적으로연구할 필요가 있다. 또한 1900년 전후 러시아의 한반도 해양정책 중 독도·울릉도·동해의 의미를 동시에 분석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1900년 전후 러시아가 울릉도를 조사한 기록을 발굴하고 울릉도와 독도를 둘러싼 근대 한국·일본·러시아의 영토·해양정책을 함께 분석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대략 30년 간격으로 1947년과 1978년 울릉도와 독도의 조사를 진행했다. 그 후 30년 동안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자연과 연구 환경등이 변화하였다. 향후 울릉도와 독도의 변화된 환경을 수용하는 울릉도와독도에 대한 역사, 국제, 지리 등의 종합적인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독도 관련 일본, 미국과 유럽, 러시아, 한문 등의 새로운 사료 발굴과 연구가 필요하다. 이러한 사료 발굴에 기초하여 향후 독도 관련 주요 쟁점에 대한 연구 강화및 국제법과 역사학을 결합시키는 융합연구가 필요하다. 고종과 이규원의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인식과 판단, 러시아의 해양탐사 과정에서 독도와 울릉도의 의미, 일본 외무성의 죽도와 송도 명칭 확인과 변경의 구체적인 이유, 일본의1904년 2월 러일전쟁과 1905년 2월 일본의 독도 불법 편입의 연관성 등이 바로 그것이다.
Abstract
Dokdo had been referred to as Usando and Gajido. But in 1882, when the neighboring island of Ulleungdo was first settled, residents began to call the island Dokseom. Dok means dol , or stone, in the local dialect, and the settlers of Ulleungdo, who saw the island as comprised of stones, referred to it as dokseom , that is, as a stone island. Later, when the Korean word seom , meaning “island,” was converted to a Chinese character, the island received the name Dokdo. The French named the island the Liancourt Rocks after the French whaling ship Liancourt charted the island in 1849; the English referred to the island as the Hornet Rocks. The Russians called the island Menalai and Olivutsa Rocks. Japanese people first referred to Ulleungdo as Takeshima and to Dokdo as Matsushima. But in 1905, when the Japanese government claimed the island as Japanese territory, it began to call Dokdo as Takeshima. On October 27, 1900, Joseon issued Imperial Ordinance No. 41, thereby changing the name of Ulleungdo to Uldo and changing the role of its administrator to that of a county magistrate. As a result, the island became the twenty-seventh county in Gangwon Province. Under the Ordinance, the county office was established in Taehadong and the new county magistrate of Uldo held authority over the entire island as well as over both Jukdo (Daetseom) and Seokdo (Dokdo).
참고문헌 (25)
- 김수희, "근대 일본어민의 한국진출과 어업경영" (2010), 경인문화사
- 김호동, "독도 울릉도의 역사" (2007), 경인문화사
- 박현진, "독도 영토주권 연구: 국제법, 한일관계와 한국의 도전" (2016), 경인문화사
- 송병기, "울릉도와 독도, 그 역사적 검증" (2010), 역사공간
- 신용하, "한국의 독도영유권 연구" (2006), 경인문화사
- 유미림, "우리 사료 속의 독도와 울릉도" (2013), 지식산업사
- 이진명, "독도 지리상의 재발견" (1998), 삼인
- 이혜은, "만은(晩隱) 이규원의 울릉도검찰일기(鬱陵島檢察日記)" (2006), 한국해양수산개발원
- 과거를 현재로 끌어낸 역사자료의 힘 『울릉도와 독도, 그 역사적 검증』(송병기, 역사공간, 2010), "한국근현대사연구", 2010, 238~244, pp.한국근현대사학회
- 박병섭, "일본인의 제3차 울릉도 침입", 한일관계사연구, (35), pp.199~223 (2010), 한일관계사학회
- 박성준, "1880년대 조선의 울릉도 벌목 계약 체결과 벌목권을 둘러싼 각국과의 갈등", 동북아역사논총, (43), pp.117~148 (2014), 동북아역사재단
- 박은숙, "동남제도개척사 김옥균의 활동과 영토·영해 인식 - 울릉도·독도 인식을 중심으로 -", 동북아역사논총, (36), pp.95~137 (2012), 동북아역사재단[DOI]
- 서종학, "‘獨島’ㆍ石島’의 地名 表記에 관한 硏究", 어문연구(語文硏究), 36(3), pp.39~62 (2008), 한국어문교육연구회
- 오상학, "일본측 독도영유권 주장의 비판적 검토", 독도연구, (6) (2009)
- 이규태, "울릉도 삼림채벌권을 둘러싼 러·일의 정책", 史叢(사총), (79), pp.181~211 (2013), 역사연구소
- 이영학, "개항 이후 일제의 어업 침투와 조선 어민의 대응", 역사와 현실, 18 (1995)
- 정영미, "『죽도고증』의 「마쓰시마 개척원」과 아마기함의 울릉도 조사 -메이지 시대 새로운 마쓰시마=독도 창출 일(一)과정-", 한일관계사연구, (43), pp.470~506 (2012), 한일관계사학회
- 정태만, "17세기 이후 독도에 대한 한국 및 주변국의 인식과 그 변화", 박사, 사학과 한국사전공, pp.2014
- 한철호, "메이지 초기 일본외무성 관린 다나베 다이치(田辺太一)의 울릉도ㆍ독도 인식-일본의 ‘공도’정책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동북아역사논총, (19), pp.189~232 (2008), 동북아역사재단
- 허영란, "독도 영유권 문제의 주요 논점과 ‘고유영토론’의 딜레마", 이화사학연구, (36), pp.101~132 (2008), 이화사학연구소
- 田村淸三郞, "島根縣竹島の新硏究" (1965), 報光社
- 池內敏, "竹島問題とは何か" (2012), 名古屋大學出版會
- 川上健三, "竹島の歷史地理學的 硏究" (1966), 古今書院
- 韓國近代史資料硏究協議會, "獨島硏究" (1985), 文光社
- 具良根, "日本外務省 七等出仕 瀨脇壽人과 外國人顧問 金麟昇", 韓日關係史硏究, 7 (19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