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대한제국 강제병합에 관한 청 정부의 인식과 대응
A Study on Q’ing Government’s Perception and Response to the Annexation of Korea Empire in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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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멸망직전의 중국 청정부에게 있어서 1910년 일제의 대한제국강제병합은 매우 충격적인 지정학적 재난이었고 따라서 중국은 일제의 대한제국강제병합으로 말미암아 가장 심각하고 직적인 충격을 받은 나라로 볼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구체적으로 일제의 대한제국 강제병합에 관한 청정부의 인식과 대응에 관련하여 크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 1910년 8월 한국강제병합이 실시될 무렵 청정부는 주일공사관, 서울주재 총영사 및 마침 일본방문 중인 해군고찰대신 載洵 등 세 가지 채널을 통해 한국강제병합에 관한 확정보를 입수하였지만 정보의 부족 및 심각한 통치위기의 형편상 아무런 효과적인 대응조치를 갖추지 못하였으며 일본정부 역시 청정부에 각별히 보안을 유지해왔다. 결과적으로 청정부는 일본의 한국병합에 대하여 매우 소극적인 불간섭 및 수용자세를 보였다. 둘째, 청정부는 일제의 한국강제병합으로 말미암아 한중 두 나라의 국경이 곧바로 중일 두 나라의 국경으로 바뀌어 진 상황을 크게 걱정하였는데 특히 동북지역 지방관인 東三省總督 錫良과 吉林巡撫 陳昭常 등은 국경지역의 안정 및 한국인 단속에 관한 대안을 적극 제시하면서 한국인의 중국국적가입 문제 및 일본의 중국동북지역 침략위협에 대한 대책마련을 적극 주장하였다. 그리로 대한제국의 비극적 종말이 가져단 준 충격은 그 이듬 해에 청정부가 헌법제정 및 국회개원의 요구를 수용한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Abstract
The annexation of Korea by Japan in 1910 was undoubtedly a significant catastrophic geopolitical event for the Qing government. In other words, China as a neighbor, had been impacted directly and profoundly by this event. In that time, the Qing government failed to find out the relevant information on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in advance. And be sides, the Japanese government concealed the information deliberately from the Qing government. As a result, the Qing government had no choice but to recognize the annexation of Korea by Japan and to take noninterference position. In other words, the Qing government was simply concerned with national interests that related to border security problems, but didn’t response the aid request of the politics forces of Korea. On the other hand, the Korea Empire and the Chosǒn dynasty’s subjugation, had a ajor impact on the Qing government. Thereupon, in the following year, Qing government agreed to implement the constitutional and political eas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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