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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代 高句麗 표기 기피현상 - 隋唐 墓誌銘의 國名 표기 분석을 중심으로 -

Avoiding the Name “Koguryo” during the Tang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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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필자는 당대 묘지명의 고구려 관련 기록에서 고구려의 당대 표기인 ‘고려(高麗)’라는 단어가 거의 보이지 않았던 현상에 주목하였다. 본고는 이 기록을 정리하고 통계적으로 분석해볼 필요성을 느끼고 관련 자료를 정리하여 분석하고 정리한 것이다. 당대에 편찬된 『수서』와 당대를 다룬 『구당서』, 『신당서』, 『당회요』의 고구려 표기를 살펴보면, 고구려의 실제 국호를 언급한 사료는 『구당서』와 『신당서』에 각각 36개와 19개였다. 양자를 합하면 55개로 전체의 33.7%이다. 반면 “요(遼)를 정벌한다”는 뜻을 지닌 “伐遼”, “征遼”, “요동을 정벌한다”라는 뜻을 지닌 “伐遼東”, “伐遼左”, “征遼東” 등 고구려를 “요”, “요동” 등 다른 별칭으로 표기한 기록은 모두 107개이며 65.6%이다. 唐代 묘지명에서도 삼한(18회), 九種(9회), 현도(7회), 遼(5회), 동이(4회), 요갈(遼碣)․조선․鳥夷․진한(3회), 白狼․요양․요좌(2회), 계루․九夷․낙랑․島夷․玄夷․마한․小貊․鴨錄․예맥․朱蒙之緖․청구․五部․遼川․遼海(1회) 등 다양한 별칭이 사용되었고 고구려의 唐代 표기인 ‘고려’는 단 세 차례만 사용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이는 돌궐을 흉노․獫狁․葷戎․獯戎․山戎 등으로 표기한 것과 일치한다. 고구려와 돌궐은 망국이었기 때문에 실명보다 별칭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가능성도 있지만, 같은 상황의 고창이 실명으로 표기되었고, 唐에 복속된 거란과 奚도 실명 표기가 보인다는 점에서 망국을 별칭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고구려를 지칭하는 단어가 다른 국가의 별칭에서 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표현이 묘지명에 사용되었음은 주목할 만하다. 유형별로 보면 예맥․소맥․계루․오부처럼 고구려를 연상시키는 단어도 있지만, 동이․도이․조이․현이․구이처럼 동방의 이민족을 지칭하거나 낙랑․현도․백랑․요․요갈․요양․요좌․요천․요해 등 전한 이래의 군현명이나 각종 지명을 사용한 예가 많았다. 전자는 동방 이민족에 대한 蔑稱이고 후자는 고구려의 영토가 중국의 옛 군현이었음을 상기시키는 표현인 것 같다. 반면 고구려를 삼한․마한․진한․조선 등으로 칭한 것은 당대 중국인들이 고구려가 한국고대의 여러 나라와 역사적 친연성 혹은 연속성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은 고구려 유민에 대한 본적 표기 원칙과 일치한다. 즉 당대 조정과 지배층 사회에서 고구려가 고대한국의 여러 나라와 역사적․문화적 친연성 혹은 계승관계에 있음을 인정했던 증거였다.

Abstract

In this paper, I analyzed the memorial inscriptions from the Tang Period and found avoidance of country names such as Koguryo, Turk (突厥),Baekje, and others. The Chinese officials, scholars, and intellectuals wrote the epitaphs of their own, which included the generals and colonels who participated in the invasion of Koguryo, Turk (突厥),Baekje, Kochang, and other areas. I found that there were few examples of designating Koguryo as Koguryo or as Koyo, which was the Koguryo name during the Tang Period. This name appeared in 3.8% of 79 expressions. Instead, Koguryo was expressed as Koguryo, Joseon,Samhan, Buyeo, Jinhan, Dongyi, Hyeondo, Gujong, Doyi, Baekrang,Gyeru, Guyi, Laklang, Hyeoyi, Mahan, Yemaek, Chenggu, Obu,Yocheon, Yohae, and others, or in 96.2% of the 79 examples. This trend of naming the country through other names in the Tang Period also applied to Turk, Baekje, and the Sogdians. For example, in the memorial inscriptions in the Tang Period. Turk was expressed as Hiungno (Xiongnu), Heomyun, Hunyung, and Hunro. Baekje was expressed as Yo, Yoyang, and Samhan. But Tibet (Tobeon), Georan (Qitai), and Hai were called by their own names, and other names and the country name appeared frequently. The trend to latter. Koguryo by other names was due to the Chinese avoidance and hatred of Koguryo, which had defeated Chinese dynasties, such as Sui and T’ang, in the sixth and seventh centuries. And the Chinese acknowledged Koguryo and considered Koguryo,Chosun, Samhan, Buyo, Jinhan as the same country which had the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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