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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陵園制의 정비와 그 배경

The Organization and Background of the Royal Tomb System in Koguryo 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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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고구려가 국내(國內) 지역에 도읍을 둔 시기의 왕릉들의 특징은 분구가 거대할 뿐 아니라, 그 주변에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4세기 이전에는 높고 큰 분구가 조성됨과 아울러 묘역 일부에서 포석이 행해졌고, 배총(陪冢)이나 배대(陪臺) 및 수묘 건축이 나타난다. 그리고 4세기 이후에는 그에 더하여 묘역이 확대되었고 능장(陵墻)과 묘상건축도 등장한다. 능원제가 완비된 것이다. 이처럼 부대시설이 확충되면서 정연한 능원이 갖추어진 원인은 집권력의 강화 때문만이 아니다. 중국 고대 능원제의 영향이 크다. 고구려는 중국과의 교섭을 통해 그들의 능원제를 알게 되었고, 그 결과 자신들의 권세와 위엄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4세기 이후 많은 중국계 인물들이 고구려로 이주하면서 한층 심화된다. 단 이는 중국 문물의 무분별한 도입만은 아니었다. 본래 고구려인들은 무덤을 죽은 이의 거처로 생각하여 무덤을 중시하는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선왕의 무덤을 크게 만들고 능원제를 갖추는 일에 거부감이 없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Abstract

Large mounds and additional facilities characterize the royal tombs built while Koguryo’s capital was at Gungnae (國內). Before the fourth century, large, high mounds were built, and roads were paved with stones in some areas near the boundaries of the tombs. Also, additional tombs (陪塚), additional embankments (陪臺), and guard buildings were constructed. Further, after the fourth century, the boundaries of graves were enlarged while barriers were built around the tombs and buildings were constructed on the tombs. This indicates that the royal tomb system (陵園制) had been fully established. The centralization of political power was not the only cause of the expansion of additional facilities and the organization of royal tombs. Another cause was the influence of the Chinese system of royal tombs. Trade between Koguryo and China caused the people of Koguryo to encounter the Chinese system for royal tombs, and the ruling classes of Koguryo adopted this system in order to represent their power and authority. This tendency intensified when a number of Chinese intellectuals moved to Koguryo after the fourth century. However,Koguryo people did not uncritically accept Chinese culture. They had already attached importance to tombs, viewing them as residential areas for the dead. This prevented them from feeling a sense of difference about the idea of enlarging the tombs of deceased kings and organizing the royal tomb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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