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서학파 심설논쟁의 전개과정과 철학적 문제의식
What does the debate among Hwaseo’s disciples have significance f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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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은 19세기 화서학파 내에서 전개되었던 심설논쟁의 時系列에 따른 전개과정을 밝히고, 그 논쟁에 나타난 철학적 문제의식을 밝히고자 하였다. 화서학파 내의 심설논쟁은 유중교의 ‘調補’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1886년 김평묵과 시작되었다. 이 논쟁은 김평묵이 임종하는 1891년까지 전개되었고, 이후 김평묵 계열의 문인들과 유중교 계열의 문인들간의 논쟁으로 확산되었지만 1893년 유중교의 임종으로 끝을 맺게 되었다. 이후에도 심설 논쟁은 1920년까지 유인석, 신익균 등을 중심으로 간재학파로까지 확대 전개되었다. 사실상 성리학자들 사이에서 근대까지 지속되었던 유학 논쟁의 하나였다. 유학의 주요 논쟁의 하나로 이해될 수 있는 19세기 심설논쟁에 대한 지금까지의 선행 연구에서 논쟁의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구체적 자료들이 제시된 적이 없었다. 이에 화서학파의 심설논쟁에 한하여 논쟁의 전개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왕복서들과 관련 글들을 시계열에 따라 규명하여 정리해 보고자 하였다. 심설논쟁의 흐름에서 어떠한 논제들이 나타나고 있었는지, 그리고 논쟁의 전개에 따라 유중교와 김평묵의 논지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설명함으로써 심설논쟁의 전모를 밝히고자 하였다. 또한 왕복서와 관련 글들의 시계열적 흐름을 밝히는 것이 향후 심설논쟁 연구의 기반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 논쟁 자료의 정리와 함께 논쟁을 통해 드러난 유중교와 김평묵의 심설이 가진 차이와 특징들을 밝히고자 하였다. 그 차이와 특징에서 그들의 철학적 문제의식을 해명해 보고, 그들의 심설논쟁이 가진 의미를 밝히고자 하였다. 19세기 성리학자들의 유학적 문제의식에 대한 규명이 위정척사운동과 의병운동, 독립운동 등 근대 지식인들의 사회실천운동과의 연속성을 해명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 기대한다.
Abstract
This paper discussed what the debate among Hwaseo’s pupils have significance for. This dabte was raised among the disciples of Yi Hang-ro, especially between Kim Pyeong-muk(1819∼1891) and Yu Jung-gyo(1832∼1893). In 1886, Yu Jung-gyo suggested the supplementary explanation about Hwaseo’s theory of Sim[調補華西心說], and his condisciple put forth a logical argument against allowing his suggestion. The central subject of their debate was on the distinction between an ability of mind[神明] and a nature[性]. Basically, the primary cause of their dabate came from Yi Hang-ro's theory on 'unity of mind and principle[心與理一]'. So their debate finished by organizing Yi Hang-ro’s theory of Sim[華西心說]. However It have not established the sauce data on their debate by our research on Chosun's history of ideas. I tried to establish the sauce data with a time series analysis on their debate, and then research a significance for their debate. It was not only Neo-Confucian debate but their awareness of a social problem and political. Their consciousness of Chosun's crisis was converted into their philosophical and critical mind. They had tried a neo-Confucianism reestablishment for practical morality, and made head against Western powers. Their social behaviour of practical morality was the Expulsion Movement of wickedness[斥邪] and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and so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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