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기 일본율령국가의 전환과 백제왕씨의 변용 ―일본율령국가연구를 위한 제언―
The transition into the 9th century and the Transfiguration of Kudaranokokisiuji in Bekje—A proposal for Japanese Ritsuryou State study—
0
조회
0
다운로드
7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7세기말에 성립된 고대일본의 완성된 국가형태로서의 [일본율령국가]에 대한 연구 성과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일본율령국가의 질적 전환에 대해서는 아직 미해결인 채로 많은 논의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과제를 정면으로 언급한다는 것은 무모한 감이 있지만, 선학의 연구를 참고로 하면서 [백제왕씨]의 문제를 중심으로 언급하기로 한다. 우선, 石母田正씨가 ‘고대 전환기로서의 10세기’라는 테제를 언급한 이래, 10세기에 일본고대국가와 사회가 심각한 전환을 이루고 鎌倉막부에 들어 완성하는 중세적 정치형태의 초기적 전제가 만들어진다고 하는 10세기 전환설은 매우 강고한 패러다임으로서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이러한 石母田의 10세기 전환설에 대하여, 村井章介씨는 중세적인 ‘王土王民사상’과 ‘神國사상’의 출발은 9세기의 신라와의 관계를 중시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9세기 전환설을 주장하였다. 村井씨의 9세기 전환설은 백제왕씨의 변용을 생각하는 데 있어 매우 시사적이다. 이와 관련하여 일본율령국가는 국내의 번국으로서의 ‘百濟王氏’를 천황 질서 밑에 두는 것에 의해 ‘소중화사상’을 만족시켜 왔던 것이지만, 일본이 동아시아 질서 속에서 고립의 길을 걷게 되면서 백제왕씨가 갖고 있던 ‘국내의 번국’이라고 하는 독특한 성격도 매력이 적어지게 된 것이다. 그 때문에 백제왕씨의 변용은 9세기 중반을 전후로 한 시점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Abstract
There are a number of studies around the “Ritsuryou State” as a form of a complete nation in ancient Japan that was formed in late 7th century. But it remains uncertain how the Ritsuryou State has gone through its qualitative changes. It appears to be a daring task, but looking at the issues of Kudaranokokisinji along with other previous studies may shed some light on this topic. First of all, Ishimoda Sho’s “10th century transition” theory argues that the Japanese dynasty and societies have gone through a serious transition and the mideval political framework was formed in the 10th century (which later was completed by Kamakura Bakuhu) holds a strong ground today. To this theory, Murai Shosuke counter-argues that the mideval beliefs that “King owns land and people” and that “Nation belongs to God” cannot be understood without considering Japan’s relationship with the Shilla dynasty in the 9th century, thereby putting forth the “9th century transition” theory. Murai’s “9th century transition” theory has significant implications to those who think about the transformation of Kudaranokokisiuji. To this regard, Ritsuryou State conformed to the quasi-Sinocentrism by putting the Kudaranokokisiuji under the Emperor’s reign. However, ‘Kudaranokokisiuji’s attractiveness as the “obeying state” came down as Japan entered into the state of isolation. Therefore, one can naturally conclude that Kudaranokokisiuji’s tranformation took place in mid 9th century.
참고문헌 (40)
- 石母田正, "古代末期の政治過程及び政治形態", ~ (1950)
- 石母田正, "古代末期政治史序説", 未来社, ~ (1964)
- 村井章介, "王土思想と九世紀の転換", 思想, 847 (1995)
- 佐藤信, "前近代の日本列島と朝鮮半島", 山川出版社
- 田中史生, "江南の新羅人交易者と日本", ~
- 榎本渉, "新羅海商と唐海商", ~
- 金谷信之, "百済王系の女性たちについての若干の考察(2)", 関西外国語大学短期大学部研究論集, 62, pp.328~ (1995)
- 北山茂夫, "続万葉の世界", pp.289~338 (1975), 東京大学出版会
- "日本歴史大系原始․古代1", pp.~688 (1984), 山川出版社
- 玉井力, "承和の変について", 歴史学研究, 286 (1964)
- 福井俊彦, "承和の変についての一考察", 日本歴史, 260 (1970)
- ., "枚方市史", 枚方市史, 2 (1972)
- 目崎徳衛, "政治史上の嵯峨天皇", 日本歴史, 248 (1969)
- 渡辺直彦, "日本古代官位制度の基礎的研究" (1978), 吉川弘文館
- 森田梯, "平安時代政治史研究", 平安時代政治史研究, 2(1) (1978), 吉川弘文館
- 森田梯, "王朝国家", 教育社, ~ (1979)
- "類聚三代各", ~
- 弥永貞三, "日本人物史大系1", pp.169~170 (1961), 朝倉書房
- 山崎庸之, "嵯峨源氏の動き", 前掲書, 24~34
- 笹山晴生, "古代を考える平安の都", pp.1~10 (1991), 吉川弘文館
- 三松みよ子, "藤沢一夫先生卒寿記念論文集" (2002), 真陽社
- "令集解", ~
- 福井俊彦, "弘仁各の復元的研究民部下編", pp.240~244 (1991), 吉川弘文館
- 田中史生, "日本古代民族支配と渡来人", pp.98~103 (1997), 校倉書房
- 今井啓一, "百済王敬福", pp.131~ (1965), 綜芸舎
- 早川庄八, "天皇と古代国家" (2000), 講談社
- "日本後紀", ~
- "日本三代実録", ~
- 上野利三, "前近代日本の法と政治—耶馬台国及び律令制の研究—" (2002), 北極出版
- 三松みよ子, "藤沢一夫先生卒寿記念論文集" (2002), 真陽社
- 笹山晴生, "日本通史第5巻古代4", pp.274~289 (1995), 岩波書店
- 木村茂光, "国風文化の時代" (1997), 青木書店
- 石上英一, "講座日本歴史古代第2巻", pp.277~282 (1984), 東京大学出版会
- 河音能平, "中世封建社会の首都と農村", pp.12~22 (1984), 東京大学出版会
- 三上喜孝, "古代の辺要国と四天王寺", 山形大学歴史地理人類学論集, 5, pp.124~
- 佐伯有清, "9世紀の日本と朝鮮—来日新羅人の動向を中心として—", 歴史学研究, 287 (1964)
- 송기호, "한길역사강좌22 한국고대사론" (1988), 한길사
- 石井正敏, "いわゆる遣唐使の停止について", 中央大学文学部紀要 史学科, 35, pp.1~13 (1990)
- 浦生京子, "新羅末期の張保皐の台頭と反乱", 朝鮮史研究会論文集, 16, pp.39~67 (1979)
- 山崎雅稔, "9世紀日本の対外交易", アジア遊学, 26 (2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