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기 광해군의 전주에서의 분조 활동
Gwanghaegun's Bunjo Activities in Jeonju during the Imjin War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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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임진왜란기에 있었던 광해군의 전주에서의 분조활동의 실상과 의미를 밝히기 위한 것이다. 광해군의 전주에서의 분조 활동은 임진왜란의 극심한 위기 상황이 고비를 넘기고, 명과 강화협상이 진행되던 시기에 명에 의해서 강요된 광해군의 2차 분조의 일환이었다. 광해군의 1차분조는 선조의 자발적 의사에 의해서 이루어졌지만, 2차 분조는 명군에 의해서 강요된 것이고, 이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선조와 조선 조정에서 부득이하게 수용한 것이기 때문에 출범 시작부터 많은 제약과 한계를 갖고 있었다. 광해군은 1593년 윤11월 19일 서울을 출발하여 12월 1일 공주에 도착하여 분조기구인 무군사를 구성한 다음, 그해 12월 15일경 전주에 도착하여 약 2개월 동안 분조활동을 전개하였다. 광해군은 전주에서 분조활동을 통해서 민심을 수습하고 군사를 조련하고, 일본군의 재침에 대비하는 주목할 만한 활동을 하였다. 이러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광해군 분조의 한계와 제약, 그리고 무군사를 수행하는 관료들의 작폐와 무능 등으로 당시에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는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광해군은 1594년 2월 11일 무군사를 이끌고 전주를 출발하여 홍주로 이동하여 약 6개월 동안 머물다가 그해 8월 24일 서울로 돌아와 2차 분조를 해체하였다. 그러나 홍주에서 분조활동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광해군의 2차 분조는 전주에서의 활동이 중심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Abstract
This study aims to investigate the reality and meanings of Gwanghaegun's Bunjo activities in Jeonju during the Imjin War period. Gwanghaegun engaged in Bunjo activities in Jeonju as part of his second Bunjo round forced by Ming Dynasty during peace negotiations with Ming following the end of a serious crisis in the war. Gwanghaegun's first Bunjo round happened according to King Seonjo's voluntary will, but his second Bunjo round was forced by the Ming forces. King Seonjo and the royal court of Joseon had a difficult time accepting it, and it was unavoidable. As a result, his second Bunjo round faced lots of restrictions and limitations from its launch. Gwanghaegun departed Seoul on Yun November 19, 1593 and arrived in Gongju on December 1 where he organized Mugunsa, the Bunjo agency. He then arrived in Jeonju on December 15 and developed his Bunjo activities for about two months there. Through his Bunjo activities in Jeonju, he settled the public sentiment, recruitment and training of soldiers, and prepared Japan's reinvasion. However, there were no positive achievements due to the limitations and restrictions of his Bunjo and also the nuisance and incompetence of government officials at Mugunsa. Gwanghaegun departed Jeonju with his Mugunsa on February 11, 1594, moved to Hongju where he stayed for approximately six months, and returned to Seoul on August 24 where he broke the second Bunjo up. It is hard to find his Bunjo activities in Hongju, which indicates that his second Bunjo round centered around his activities in Jeon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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