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율곡의 십만양병설은 임진왜란용이 될 수 없다 -동북방의 여진 정세와 관련하여-
Lee Yul-gok's argument of nurturing 100,000 soldiers cannot be the one for Hideyoshi’s invasion of Korea called 'Imjin Waeran' -On the Status of Yeo-jin in Northeastern Area-
0
조회
0
다운로드
10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외적에 대비하여 10만의 군대를 양성해야 한다는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은 그동안 웬일인지 임진왜란용으로만 치부되어져 왔다. 만약 이이가 실제로 십만양병설을 제기했다면 그것은 남쪽의 왜적이 아니라 북쪽의 여진족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이이가 병조판서로 있던 1583년 당시 일본은 전국 통일을 눈앞에 뒀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사망한 직후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아직 주도권을 장악하지 못한 안개 정국이었던 때였다. 또한 당시 조선이 의식한 일본으로부터의 위협은 을묘왜변 정도의 수준이었지 10만의 군사를 양성해야 할 위기로 인식되지 않았었다. 반면 조선의 동북방 지역에서는 여진족 니탕개(尼湯介)의 난이 일어나 위기가 고조되어 있었다. 당시 조선 조정은 각 도에서 정예 병사를 뽑아 동북방으로 속속 파견해야 했으며, 임금이 사찰의 종까지 거둬들여 무기인 銃筒을 만들라고 지시했을 정도로 니탕개의 난은 조선 조정에 큰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다. 니탕개의 난은 여진족 3만여 騎가 참여하여 六鎭지역을 휩쓸고 다녔을 정도였다. 십만 양병설이 사실이라면 일본용이 아니라 동북방 여진용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임진왜란이라는 거대한 쓰나미가 1580년대의 니탕개의 난으로 촉발된 동북방의 제반문제를 삼켜버렸다고 할 수 있다. 율곡이 그토록 고심하던 동북방 문제는 임진왜란의 발발로 對日用 십만양병설이 되어버린 것이다.
Abstract
Yul-gok's argument of nurturing 100,000 soldiers against possible foreign enemies has been so far regarded as an argument for Imjin Waeran for some reason. If Lee Yi really had suggested such an argument, it would have been a response to Yeojin's intrusion of northern area, not to Japan's. In 1583, when Lee Yi was the Minister of War in Joseon, Japan was in a political crisis since Toyotomi Hideyoshi didn't take over the reins of the government right after the death of Oda Nobunaga who put Japan just around the unification of the whole nation. In addition, the threat that Joseon felt from Japan at that time was at around the Japanese riots of the year Ulmyo and was not recognized as nurturing 100,000 soldiers. Meanwhile, in the northeastern area of Joseon, Nitangeu's rebellion against the government broke out, which made mounting tension. The rebellion brought about huge crisis awareness to the Joseon Royal Court as much as the Court had to pick up elite soldiers at each province, and dispatch them one after another to the northeastern area; the king commanded the recruited servants from Buddhist temples to make weapons. Nitangeu's rebellion was the extent that Yeojin's 30,000-odd soldiers riding on horseback were mobilized to sweep through the Six Garrisons called 'Yukjin', and that is the reason why the argument, if it is true, is not for against Japan, but for against Yeojin in the northeastern area. Thus, it could mean that such giant tsunami as Imjin Waeran engulfed all the issues sparked by the Nitangeu's rebellion in the 1580s. After all, the northeastern issues that Yul-gok took pains to deal with have ended up the argument for against Japan due to the outbreak of Imjin Waeran.
참고문헌 (37)
- "선조실록"
- "선조수정실록"
- 김장생, "栗谷行狀"
- 이정구, "栗谷諡狀"
- 이항복, "栗谷神道碑銘"
- 송시열, "栗谷年譜"
- 우성전, "癸甲日錄"
- 김만중, "서포만필"
- 이익, "성호사설"
- "癸未記事"
- "국역 율곡전서" (1988),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증보문헌비고"
- 고석규, "역사 속의 역사읽기 2 -우리다움의 전통 조선왕조 500년" (1997), 풀빛
- 송복, "위대한 만남" (2007), 지식마당
- 이덕일, "교양 한국사 3 -사림의 등장에서 대한제국의 멸망까지" (2005), 휴머니스트
- 이병도, "한국사 대관, In 왜인의 동태와 임진, 정유의 왜란, 제5권" (1964)
- 이상백, "한국사, In 왜란과 대외관계, 제6장" (1971), 진단학회
- 이재호, "조선사 3대 논쟁" (2008), 역사의 아침
- 김강녕, "율곡의 10만양병론 : 군사적 함의와 교훈", 군사논단, 61 (2010), 한국군사학회
- 김문자, "정보통신과 임진왜란", 한일관계사연구, (22), pp.1~45 (2005), 한일관계사학회
- 김언수, "율곡 10만 양병론의 진실", 인물과사상, 160 (2011)
- 민덕기, "임진왜란기 조선의 북방 여진족에 대한 위기의식과 대응책 - '南倭北虜'란 측면에서 -", 한일관계사연구, (34), pp.179~218 (2009), 한일관계사학회
- 민덕기, "임진왜란 직전 조선의 국방 인식과 대응에 대한 재검토 - 동북방 여진에 대한 대응을 중심으로 -", 역사와 담론, (57), pp.347~382 (2010), 호서사학회
- 민덕기, "임진왜란 초기의 전개상황과 그 배경", 전북사학, (39), pp.111~138 (2011), 전북사학회
- 송우혜, "니탕개란 연구 —선조 시대 여진족의 대반란 사건", 역사비평, (72), pp.298~329 (2005), 역사문제연구소
- 신봉승, "10만 양병론의 허구", 한글한자문화, 137 (2010),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 심승구, "朝鮮 宣祖代 武科及第者의 신분", 역사학보, 144 (1994)
- 윤호량, "선조 16년(1583) '이탕개의 난'과 조선의 군사전략", 석사, 한국사학과, pp.2009
- 이기남, "이이의 십만양병론에 대한 재검토", 율곡사상연구, 5 (2002)
- 이재호, "선조수정실록 기사의 의점에 대한 변석 -특히 이율곡의 ‘십만양병론’과 유서애의‘양병불가론’에 대하여-", 대동문화연구, 19 (1985),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이진표, "율곡의 경세사상", 대불대학교 논문집, 4 (1998)
- 田中敏昭, "豊臣政權의 日本統合과 對馬島主 宗氏의 朝鮮交涉", 동서사학, 5 (1999)
- 장숙필, "율곡의 십만양병설에 대한 소고", 율곡학보, 12 (1999)
- 정문교, "율곡선생 양병 10만론 : 조선왕조실록 게재자료", 율곡학보, (12・13) (1999)
- 최병길, "율곡 국방론의 이론과 실제", 율곡학보, 4 (1997)
- 한문종, "壬辰倭亂 직전의 국내정세와 韓日關係", 인문과학연구, (21), pp.223~243 (2009), 인문과학연구소
- 황준연, "율곡 ‘10만양병설’의 의문점", 한중철학, 5 (19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