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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 이후 ‘회답겸쇄환사’로 본 대일본외교 전략 - 선조대를 중심으로 -

Diplomatic Strategy toward Japan after the Japanese Invasions of Korea: Focusing on the Case of Diplomatic Delegations Commissioned to Repatriate the Prisoners of War during the Reign of King Seon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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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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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임란 이후 일본에 처음으로 파견되는 ‘회답겸쇄환사’에 대해서는 국교회복 교섭의 최종결과물 내지는 통신사의 초기형태 정도로 이해하여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회답겸쇄환사’의 사명에 주목하여 통신사와는 구분해서 보려는 연구라 하더라도 임진왜란 이후 전후처리를 위한 한시적인 성격의 외교사절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선행연구에서는 ‘회답겸쇄환사’라는 사행명칭이 정해지는 경위에 대해서도 간단히 언급하는 정도였으며, ‘회답겸쇄환사’ 파견이라는 외교행위가 임란 이후 260년간 지속된 대일본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크게 주목하지는 않았다고 생각된다. 본 연구는 국왕 선조를 최종결정권자로 하는 조선의 의사결정 구조 안에서 ‘회답겸쇄환사’라는 ‘명칭이 어떻게 정해졌으며, ‘회답겸쇄환사’ 파견의 목적과 그것이 의미하는 대일본전략은 무엇이었는지를 정책사적인 관점에서 검토하려는 것이다. 검토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첫째는, 국왕 선조는 일본관계에 대한 식견과 예측을 바탕으로 ‘비망기’를 적절히 활용하여 사헌부, 사간원 등의 반대의견을 조정하는 한편 비변사를 통해 국교재개 교섭과 같은 현안들을 매듭지어감으로써 임란 직후 대일본전략을 주도해갔다고 말할 수 있다. 둘째는, 그동안 일본과의 교류사는 일본이 문제를 제기하면 조선이 이에 대응하는 수동적인 관점에서의 연구가 많았다. 그러나 1607년의 ‘회답겸쇄환사’라는 명칭에 반영된 전략이란, 피로인 쇄환이라는 전후처리를 달성하면 더 이상 외교사절은 파견하지 않는다는, 한시적인 사절임을 암시함으로써 신뢰에 바탕을 둔 국왕 레벨의 적례외교, 즉 통신사 외교는 되도록 뒤로 미루자는 것이었다. 셋째는, 국교 회복에 따르는 교역 규모를 최소한 한정적인 것으로 축소 재편하는 것이었는데, 단지 수량적인 축소로 그치는 것은 아니었다. 개항장을 부산포 1곳으로 제한하고 왜사의 상경 금지, 개시 허용 등, 외교에서 무역적인 부분을 따로 덜어내는 논의를 병행함으로써 외교절차의 간소화라는 방침이 이때부터 제시되었다고 본다. 임란 이전의 대일본관계가 왜사가 상경하여 물품 거래까지 하는 외교와 무역이 혼재되어 있는 것이었다면, 국교 회복 교섭당시의 논의는 외교에서 무역적인 부분을 분리한 질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넷째는, 선조대의 이러한 논의가 바로 광해군대 1609년의 기유약조, 1617년에서 계속해서 ‘회답겸쇄환사’를 유지한다는 정책으로 현실화되었다는 것이다. 즉 ‘회답겸쇄환사’란 전쟁 이후 ‘기유약조’와 더불어 피폐해진 조선사회와 민심을 수습시켜가면서 일본에 대응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 셋트였다고 볼 수 있다. 또 국내정치사적으로 본다면 국왕 선조가 사헌부 사간원 등, 신료들의 반대 속에서 정국을 주도해감으로써 왕권을 유지할 수 있는 전략적 카드이기도 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회답겸쇄환사’란 임란 이후의 대일본정책이 함축된 대단히 전략적 명칭으로, 조선후기 대마도가 각종 명분으로 ‘차왜’의 파견을 증가시켜 교류횟수를 늘림으로써 교역규모를 임란 이전으로 회복하려고 했던 것이나, 또 대마도의 이러한 교류 증대 요구를 통제하기 위해 조선 주도로 대마도와 맺은 새로운 약조들은 모두 임란 직후 ‘회답겸쇄환사’전략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Abstract

兼刷還使’(1607年)に対しては、朝日両国の国交回復交涉の最終結 果物、あるいは通信使の初期形態として理解する程度であった。‘回 答兼刷還使’の使命に注目して通信使とは異なる性格の外交使節であ ると認識している研究であっても、被擄人の刷還という、戦後処理 をするための一時的な外交使節として位置づける傾向があった。し たがって、先行硏究では、‘回答兼刷還使’という名称にならざるを得 なかった経緯についてもごく簡単に触れてきた。また、‘回答兼刷還 使’派遣という朝鮮政府の外交行爲が、壬辰倭亂以後、260余年間も続 けられた対日本関係にいかなる影響を及ぼしていたのかについて も、それほど注目していなかったといえる。 本硏究は、国王の宣祖を最終決定権者とする朝鮮の意思決 定過程のなかで、‘回答兼刷還使’という名称がどのように決まり、‘回 答兼刷還使’派遣の目的やそれに含まれている対日本戦略とは如何な るものであったのかを、政策史的な観点から検討するものである。 検討の結果を要約すれば、次のようである。 まず、第一に、国王の宣祖は日本関係に対する識見と予測 をもとに、国王の意見書でもある‘備忘記’を適切に活用しながら、司 憲府・司諫院のような言官系統官僚の反対意見を調整し、備邊司という政府機関を通して国交再開という外交懸案を迅速に解決し、また そのことによって壬辰倭亂以後の対日本戦略を主導していったとい える。 第二は、これまで朝日関係に対する先行研究の理解では、 日本側が先に懸案を提起すると、朝鮮側がそれに対応するという、 受動的な観点からの研究が多かった。しかし、1607年の‘回答兼刷還 使’という名称に反映されている朝鮮の戦略とは、被擄人の刷還とい う戦後処理問題が解決すれば、それ以上の外交使節派遣は想定して いないというものであり、あくまでも臨時使節であることを相手国 に想像させることに意図があった。またそのことによって信賴に基 づく国王レベルの嫡礼外交、つまり通信使外交は当分は棚上げにし たいという戦略であった。実際、この戦略は第三回目の‘回答兼刷還 使’(1624年)を派遣する時まで続いたとみられる。 第三は、‘回答兼刷還使’派遣とは、国交回復に伴われる貿易 の規模を縮小する内容を含んでいたが、単なる数量的な縮小に留ま らなかったことである。たとえば、開港場を釜山浦の一カ所に制限 し、倭使の上京を禁止するかわりに開市(市場開放)を許容することな どに対する議論は、まさに外交から貿易的な部分を切り放すための ものであり、早くもこの段階から外交手続きの簡素化という方針が 論じられていたことである。壬辰倭亂以前には、倭使が漢城まで上 京し、使節が船舶に積んでいった品物の取引が終わるまで漢城に長 期滞在し、またそのことによって朝鮮側の接待費用の負担が大き かった。まるで外交と貿易が一つのかたまりをなしている形であっ たが、‘回答兼刷還使’段階の議論とは、外交から貿易的な部分を切り 放す質的な変化を含むものであったといえる。 第四は、宣祖代の議論は、次の国王である光海君代には、 1609年の己酉約条、第二回目の‘回答兼刷還使'(1617年)派遣となり、 政策として継承されたということである。つまり、‘回答兼刷還使’ は、壬辰倭亂以後において、'己酉約条‘とともに疲弊した朝鮮社会 や民心を取りまとめながら日本に対応していくための戦略セットの ようなものであった。そして国内政治においても、国王の宣祖が臣 僚たちの反対のなかで政局の主導権を握って王権を維持することが できた戦略カードでもあったのである。 要するに、‘回答兼刷還使’とは、壬辰倭亂以後の対日本政策 の方針が提示されている戦略的な名称であったわけである。その結 果、朝鮮後期において、対馬藩がいろんな名目の使者('差倭')を増 やすことによって貿易量を壬辰倭亂以前の水準に取り戻そうとした ことや、朝鮮が対馬藩の交流増大の要求を抑えるために対馬藩と結 んだ新しい約条などは、ほとんど壬辰倭亂直後の‘回答兼刷還使’戦略 から始まったといえよ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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