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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藝 관련 왕조실록의 誤記 -국사편찬위원회 교감(校勘)의 우선순위-

Lee Ye Misspelled in the Joseon Dynasty Annals : Checklist proposed for NIKH Rectif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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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본고의 목적은 1396년(태조5) 12월에 발생한 李殷의 대마도 피랍사건과 이에 대한 조정의 대처를 조망하고, 조정의 대처 중 하나인 免役 포상을 기록한 1398년(태조7)의 실록기사에 나타난 李藝 성명 표기의 오류를 바로잡으며, 국사편찬위원회 교감(校勘) 작업의 원활화를 위한 체크리스트를 제안하는 데에 있다. 李藝(1373~1445)는 조선 전기 태종・세종 대에 주로 활동한 대일외교관이며, 외교부에 의해 ‘우리 외교를 빛낸 인물’로 선정되었다. 2005년을 기점으로 그에 대한 학계의 연구가 활발해졌고, 외교부에 의해 서울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으며, 울산광역시의 가장 큰 도로가 그의 이름을 따라 ‘李藝路’로 명명되었다. 李藝는 75개의 실록기사에 등장한다. 특히 李藝의 졸기는 그 삶의 역정과 외교업적을 상세히 기술하며, 피랍사건의 공로에 대한 포상으로 향리의 役을 면제받고 관직을 받았음을 밝히고 있다. 이 포상은 오늘 우리가 아는 외교관 李藝를 만든 출발점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李殷을 따라간 향리의 존재를 언급한 3개의 실록기사 중에서 둘은 그를 李藝로 표기하였으나 1398년(태조7) 기사는 그를 李陶로 표기하였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실록원본의 오류를 교감 원문본에 반영하고 있는 바, 본고는 바람직한 교감작업의 원활화를 위해 교감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체크리스트를 운용할 것을 제안한다. 본고가 제시하는 체크리스트는 ①관련사건의 중요도 및 ②관련인물의 중요도로써 ‘공익성’을 판단하고 ③실록 내 다른 기사들과의 교차검증 및 ④실록 외 사료와의 교차검증을 통해 ‘진실성’을 판단하는 4개 항목으로 구성된다. 이 체크리스트를 1398년(태조7) 기사에 적용하면, 李藝의 경우 ‘공익성’ 및 ‘진실성’이 충분한 것으로 나타난다. 만약 이 체크리스트에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면, 우선적으로 1398년(태조7) 기사의 李陶를 李藝로 교감함이 바람직하겠다.

Abstract

This paper purports, firstly, to overview the 1396(Taejo5) abduction of Lee Eun by Japanese pirates and document the Joseon Court’s handling of this incident; secondly, to have rectified Lee Ye’s name misspelled in the 1398 JDA(Joseon Dynasty Annals) article recording the remuneratory sanction awarded to Lee Ye; and lastly, to propose a checklist for the NIKH(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rectification protocols. Lee Ye(1373~1445) served as a prominent diplomat during Kings Taejong and Sejong in the early Joseon Dynasty. His dedication, during diplomatic missions, as the messenger of cultural exchange between Korea and Japan was officially acknowledged when in 2005 the Ministry of Culture and Tourism designated him as the ‘February Figure of Culture’. The said year witnessed the starting point of series of vigorous academic researches on Lee Ye. The Korea Ministry of Foreign Affairs has also honored him by conferring the title ‘Our Distinguished Diplomat of 2010’, and later set up his statue in Seoul. The Ulsan Metropolitan City has recently named its newly-built freeway as ‘Lee Ye Ro’ to honor one of its most distinguished products. A total of 75 JDA articles refer to Lee Ye. One such article is his Jolgi, or obituary record. Posthumously illuminating the diplomat’s life and accomplishments in detail, this 1445 JDA article shows that the Court conferred him an accolade by releasing him from the caste of petty local officials and offering him a Court-managed public office. This accolade has also been recorded in a 1398 JDA article, but with his name misspelled. As the accolade is indispensable in understanding Lee Ye as the diplomat as we now know, it is recommended for the NIKH to have the misspelling rectified. Responsible is the NIKH to footnote, in the Chinese-letter version JDA, such misspellings found in the original JDA articles. This paper proposes a sample checklist for NIKH rectification. The checklist comprises two conditions: existence of common good and of factual integrity. The former embodies two sub-conditions, significance of the incident and of the person in question. The latter’s dual sub-conditions ask whether the asserted ‘misspelling’ can pass cross-examinations with other JDA articles and with other officially-compiled literature or old books of high esteem. When applied to the present case, this checklist provides enough evidence to call for NIKH rectification of the 1398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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