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선융화구락부」에서 골프구락부로 -식민지기 「고급사교구락부」의 문화접변-
From "Japanese-Korean Reconciliation Club“to Golf Club -The Acculturation of “High Class Social Club" in Colonial Korea under Japanese Imper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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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일본제국주의 지배하 식민지 조선에서 「고급사교구락부」가 정치적인 성격의 「내선융화구락부」에서 스포츠 성격의 골프구락부로 변해가는 과정을 히라노 겐이치로(平野健一郎)가 『국제문화론』에서 제시한 「문화접변 과정」을 채용해서 분석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1910년대에 정착한 구평형인 「내선융화구락부」는 일제의 동화정책을 적극 지지하는 조선인과 재조일본인 등 조선의 상층자본가들이 회원 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총독부 고관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활동한 정치적 성격의 「고급사교구락부」이다. 「내선융화구락부」의 부분적인 해체는 공개적인 내선융화활동에 대한 반감, 총독부의 해외관광객 유치의 필요성 등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를 막기 위해 1921년 효창원골프장 개장을 통해 외래문화요소로서 골프(구락부)가 중국으로부터 전파, 제시되고 1924년 경성골프구락부 창립과 청량리골프장으로 이전으로 수용되었다. 수용된 골프구락부는 업무 소홀에 대한 비난, 땔감을 잃은 주민들의 반발 등의 저항에 직면했다. 이후 골프구락부는 18홀 정규코스 군자리골프장 개장, 다양한 골프대회 개최 등을 통해 재해석・재구성되었다. 그리고 1930년대 중반에 주로 일본인 총독부 고관들과 조선의 상층자본가들로 구성된 스포츠 성격의 「고급사교구락부」로서 신평형을 이루었다.
Abstract
This article analyzes the process by which the high class social club in colonial Korea under Japanese imperialism changed from the political Japanese-Korean reconciliation club to the sports oriented golf club by adopting "the process of acculturation" that Kenichiro Hirano introduced in "International Cultural Relations". The summarized results are as follows. The Japanese-Korean reconciliation club, an old equilibrium established in the 1910s, allowed Korea’s upper class capitalists, including Koreans and Japanese resided in Korea, who actively supported Japan’s assimilation policy, to promote friendship among members and to promote their political and economic influence through exchanges with high ranking officials of the Government-General. The partial decline of the Japanese-Korean reconciliation club began due to antipathy towards public Japanese-Korean reconciliation activities and the need for the Government-General to attract overseas tourists. In order to prevent this, golf(club) was introduced and presented as an element of foreign culture from China through the opening of Hyochangwon Golf Course in 1921, and was accepted with the establishment of Gyeongseong Golf Club and relocation to Cheongnyangni Golf Course in 1924. The accepted golf club faced full-fledged resistance with including criticism for neglect of work and opposition from residents who lost firewood, etc. Afterwards, the golf club was reinterpreted and reorganized through the opening of Gunjari Golf Course, an 18 hole regular course, and the hosting of various golf competitions, etc. And in the mid-1930s, it achieved a new equilibrium as a sports oriented high class social club consisting mainly of Japanese high ranking officials from the Government- General and Korea’s upper class capital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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