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鐺洲 朴琮의 「渼湖遊錄」 연구

Dang Joo Park Jong’s excursion to Miho and its mea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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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초록

咸鏡道 鏡城 출신의 儒學者 鐺洲 朴琮(1735~1793)은 함경도를 벗어나 澹窩 洪啓禧(1703~1771)와 渼湖 金元行(1702~1772)의 문하에 수학하면서, 楊州 洛口의 江泉亭과 미호의 石室書院을 오고가며 여러 문인들과 교유하였다. 「渼湖遊錄」은 경치유람뿐 아니라, 미호 선생을 만나면서 학문의 폭을 넓히는 데 상당한 기여가 있었고, 미호 유람 이후 고향으로 돌아온 박종은 벗들과 함께 隱寂寺와 深源寺 등에서 주자서를 읽고 베꼈다. 당주는 1763․1765․1768년 3차례에 걸친 미호 유람을 통해 『大學』과 『中庸』 문답을 시작으로 『禮記』와 『儀禮』 등 喪․祭禮에 관해 주로 물었으며, 미호 유람에 앞서 1754년엔 「燭龍堂日錄」에서 『중용』 공부를 하였고, 1757년엔 미호 선생을 찾아 수학하였다. 1763년에 첫 번째 미호를 유람하며 아름다운 풍광을 즐겼고, 1765년에 두 번째 미호를 유람하며 학문의 폭을 넓혔다. 이후 1767년 여러 벗과 함경도의 은적사에서 독서하며 주자서를 외웠으며 「隱寂寺讀書錄」, 주자서가 담긴 책상자를 들고 雪峰山[劍峯山] 深源寺에 들어가 이눌과 주자서를 읽고 여러 벗들과 주자서를 베낀 사실 「深源寺讀書錄」 등을 각각 기록으로 남겼다. 특히 세 번째 미호 유람에서는 그동안 경전의 의심나는 부분을 해소하며 학문의 발전을 이뤘으며, 주자서를 보급한 정황 등은 한층 더 미호 유람을 빛냈다. 당주는 수려한 龜溪江亭을 보기위해 미호 유람을 결행하였지만, 정작 미호 선생을 뵙고 학문적 가르침을 받는 從遊가 미호 유람의 주목적이었다. 그는 관북의 벽촌에 살면서 스승 삼기가 어려워 碩學의 학문적 가르침을 받기위해 낙구와 미호를 오갔으며, 유람을 통해 산천의 경치를 즐기면서도, 궁극적으로는 학문의 발전에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6년에 걸친 세 차례의 미호 유람은 주자서 등의 서적보급을 통해 함경도의 낙후된 학문을 일으키는 데에 일조하였다는 의의를 갖는다.

Abstract

Dang Joo Park Jong(1735~1793), a Confucian scholar who was born in Gyungsung, Hamgyung-do, interacted with a variety of scholars studying under Dam Wa Hong Gye Hee(1703~1771) and Mi Ho Kim Won Hang(1702~1772) out of Hamgyung-do and being between Ganchonjung at Nakgu, Yangchon and Sukshil school at Miho. ‘Mihoyoorok’ contributed not only to provide with excursion but also to expand his study scope after meeting with the teacher Miho, and he read and copied the books of Zhuxi with his friends at the places like Eujok temple and Shimwon temple returning home since Miho excursion. Dang Joo asked mainly on funeral rites and ancestral rites such as ‘Book of Rites’ and ‘Yili’ starting from questions and answers of ‘Great Learning’ and ‘Doctrine of the Mean’ by Miho excursion in 1763, 1765, and 1768 for three times. Also, he studied on ‘Doctrine of the Mean’ at Chokryongdangilok in 1754 prior to Miho excursion and sought Miho teacher in 1757 for his study. He enjoyed the beautiful scenery of Miho traveling there at the first time in 1763, and expanded his study scope upon the second traveling Miho. Since then, he read and memorized the books of Zhuxi with his friends at Eujok temple in Hamgyung-do in 1767, came to Shimwon temple at Sulbong mountain (Mt. Gumbong) carrying the book box including the books of Zhuxi to read them together with Lee Nul, and recorded ‘Book review at Shimwon temple’ which copied the books of Zhuxi with his friends. At this time, the experiences and knowledge in Miho were influenced significantly, especially highlighting Miho excursion more with the situation to supply the books of Zhuxi. In addition, he achieved the progress of his study resolving the questions on the scriptures at the third travelling Miho. Dang Joo implemented to travel Miho to see the beautiful scenery of Googyegangjung, however, the main objective of the travel was ‘enjoying together’ to see the teacher Mi Ho and to take the lessons from him. Because he lived in the remote countryside of Gwanbuk which was hard to get lessons from his teacher, he came and went to Nakgoo and Miho to learn the lessons from the master. He enjoyed the scenery of the nature by excursion, and also empathized to progress his study. Therefore, what he tried to achieve from Miho excursions three times for six years were to develop the straggling study in Hamgyung-do and to contribute to supply the studies as well as the books of Zhu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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