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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시기 대동지역의 소석굴군

北魏時期大同地區小石窟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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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미술

초록

북위의 大同지역 녹야원(Lu-ye-yuan), 초산(Jiao-shan), 오관둔(U-guan-tun)석굴에 대해 필자는 우선 석굴 구조, 감 구조, 조각상의 특징을 근거로 하여 편년을 실시하였다. 고고 유형학의 방법을 이용한 후 현존하는 명문 기록을 참고로 하여 위의 세 석굴에 대해 실시한 편년작업의 결과는 크게 두 시기로 나눌수 있었다. 1기는 466∼494년, 2기는 495∼524년으로 1기는 귀납시킬수 있다. 그리고 각 시기별 특징들은 크게 운강석굴의 변화와 그 궤를 같이 하고 있음을 밝혔다. 다시말해 녹야원, 초산, 오관둔석굴은 운강석굴과 가까운 곳에 개착되었을 뿐만 아니라 석굴구조, 불감 구조, 조각양식등 모든 특징에서도 운강석굴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오관둔석굴의 三壁三龕式 석굴구조는 운강 3기의 석굴들에서 아주 유행처럼 조성되고 있었다. 평성지역의 三壁三龕式 석굴구조는 낙양지역보다 시기가 빠르므로 낙양지역 북위 석굴에의 영향관계도 확인할수 있었다. 오관둔석굴의 조각상 소재인 이불병좌상, 교각보살상 역시 운강석굴에서 성행한 것으로 모두《法華經》혹은 禪과의 연관관계를 이해할수 있다. 녹야원석굴과 초산석굴에는 비교적 많은 禪窟이 개착되어 있다. 오관둔석굴에는 禪과 관련된 불상, 보살상이 많이 새겨져 있다. 북위는 436년, 439년 북연과 북량을 멸망시킨 이후 이 두 지역의 선진 문화와 더불어 불교의 영향도 직접적이고 강하게 받았었다. 涼州(Liang-zhou) 출신의 玄高(Xuangao), 師賢(Shixian), 曇曜(Tanyao)등은 모두 대표적인 북위 고승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禪法을 아주 중요시하였다. 북위 평성시기 황제들은 모두 禪師들과 왕래가 빈번했으며 당시 평성에는 많은 승려들이 禪을 열심히 수행하였다. 황제들과 많은 신도들은 선승들에게 수행할 장소의 제공과 공덕을 위해서 석굴을 조영하였다. 그 결과 지금 운강석굴과 더불어 주위의 북위 석굴에는 선굴과 선과 관련된 불교 조각상들이 많이 제작되었음을 이 문장을 통해 다시 한번 더 고증하였다. 녹야원석굴은 헌문제(Xuanwendi)가 건립하고 황제가 직접 참선 한 곳이었기 때문에 대동지역 북위 석굴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아주 중요하다. 필자는 문헌기록을 통해 녹야원석굴은 싯달타태자가 成道한 이후 처음 설법을 행한 인도의 녹야원과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밝혔다. 녹야원석굴은 398년부터 북위왕조의 수도로 지정된 평성의 都城건설과 관련하여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평성(Pingcheng)에는 황제와 대신들이 政務를 집행하는 宮殿 이외에 동, 서, 북쪽에 苑囿이 건립된다. 道武帝(Daowudi)시기인 399년부터 북쪽에 鹿苑이 건립되기 시작하여 이후 鹿苑은 北苑, 西苑, 東苑으로 세분화되고 많은 건물들과 연못들이 건립되었다. 이후 헌문제가 鹿苑, 즉 北苑에 석굴을 개착하고 선승들과 함께 선을 수행하였다. 결국 녹야원석굴은 녹원, 북원의 일부분이며 전체를 점유한 것은 아니었다. 다시말해 녹야원석굴은 개착된 위치가 북위의 도성계획 중의 하나인 北苑 또는 鹿苑 안쪽 이었기 때문에 鹿野佛圖 혹은 鹿野苑石窟로 그 명칭이 연속되었던 것이었다. 지금까지 그 중요성에 비해 학자들이 소홀히 한 북위시기 대동지역 소석굴에 대해 필자는 현장조사를 기초로 하여 여러 가지 사실들을 서술하였다. 그러나 천도이후 대동지역의 북위석굴과 낙양지역의 석굴간의 공통점과 차이점, 새로운 양식의 기원지, 상호 영향의 전파노선관계 등에 대해서는 앞으로의 차후 연구과제로 남겨두고자 한다. 아울러 이 분야의 연구진들 역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계속하기를 기대한다.

Abstract

對北魏時期大同地區鹿野苑、焦山、吳官屯石窟,筆者通過石窟形制、龕形制、造像特點進行了分期。承考古類型學再參考現存題記,我把石窟群分爲二期。第一期爲466-494年,二期496-524年。並且在大體上這些小石窟的各期特點跟雲岡石窟分期特征極爲類似。 鹿野苑、焦山、吳官屯石窟開鑿的距離是雲岡石窟範圍內。而且這些小石窟的窟形、龕形、造像特點和雲岡石窟具有密切關系。尤其是吳官屯石窟的三壁三龕式是雲岡三期極爲流行的龕形之一。平城地區(現大同)三壁三龕式的龕形比洛陽地區還早,可想象平城地區三壁三龕式對洛陽的影響。吳官屯石窟的二佛並坐像、交腳像亦流行於雲岡石窟,這些造像題材跟《法華經》、禪有關聯。 鹿野苑、焦山石窟開鑿於較多的禪窟。吳官屯石窟的造像題材也跟禪多有密切關系。436年、439年北魏各滅北燕、北涼,此後受到兩個地區的影響很深。涼州出身的玄高、師賢、曇曜不但都代表北魏高僧,而且他們很注重禪法。北魏平城時期皇帝跟這些高僧之間有頻繁的交往,且當時許多僧人多修禪。皇帝以及在家信徒爲禪僧提供修禪的場所或爲他們的功德營造石窟。結果雲岡石窟和周圍小石窟多見於禪窟、有關禪的造像題材。 獻文帝修建鹿野苑石窟,並且皇帝本人鑿窟以居禪。因此他站非常重要的位置。通過文獻記載,筆者推測鹿野苑石窟跟釋迦成道後最初講述的鹿野苑無關。反而該石窟和398年北魏平城都城計劃有密切關系。當時在平城除了建立皇宮、政務機構之外,還建立東、西、北苑等皇室苑囿。北魏始築鹿苑在399年。此後平城西面、東面個築皇家宮苑。北方大都市的北面是廣闊的鹿苑。這裏有鴻雁池、魚池、虎圈、永樂遊觀殿。還有寧光宮、鹿野苑石窟供貴族休居。如此,鹿野苑石窟占有北苑即鹿苑的一部分,並非代表北苑。換句話說,鹿野苑石窟之名稱來源於北魏都城計劃之一的鹿苑。該石窟開鑿於鹿苑範圍之內,所以把它稱之爲鹿野佛圖或鹿野苑石窟。 大同周圍小石窟既規模小又缺題記,迄今未引起學術界的重視。筆者在現場調查的基礎上,再注意窟形、造像特點,敘述了以過去不同的意見。但是遷都之後,大同地區石窟與洛陽石窟之間共同點、差異、新因素的來源、樣式的傳播路線等問題,還期待著繼續研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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