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前期 王室 發願 梵鐘과 興天寺鐘의 중요성
The Importance of the early Joseon bell sponsored by royal family and that of Heungcheonsa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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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조선 초기에는 강력한 전제왕권의 확립을 상징하듯 국가의 발원과 재력을 동원한 대형의 범종이많이 제작되었다. 흥천사 종이 그러한 시기적 경향을 잘 보여주는 첫 번째 작품으로서 용뉴는 쌍용이면서 정상부에는 큼직한 여의주를 받치고 있다. 이 형태는 역 U 자형인 중국종의 쌍룡과 달리 다른저자세로 낮게 누운 표현이며 이후 조선 전기종의 두드러진 표현으로 자리잡는다. 연곽은 복엽의 연판문의 견대 아래 있는 1 줄의 융기선에서 약간 떨어져 배치되었으며 연곽과 연곽 사이마다 중국 종에서 볼 수 없는 보살입상을 4 구씩 배치한 것도 통일신라 이래의 한국 전통형 종을 따른 특징적인 요소이다. 종신의 중단에는 3 조의 굵은 융기선이 둘러져 있는데 중앙의 융기선이 유난히 굵고 상하는 그보다 가늘다. 이처럼 종신 중앙에 둘러진 굵은 3 줄의 융기선 횡대와 종구 쪽으로 가면서 점차 두터워지는 안정감 있는 종신의 모습은 조선 전기 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양식적 특징으로 자리 잡는다. 중국 종과 달리 종구는 직선되게 처리하였고 이곳에서 약간 위쪽으로 올라와 하대처럼 둘러진파도문대가 표현되었으나 당좌는 생략되었다. 종신 중앙을 가로지른 횡대와 파도문대 사이에 넓은여백을 활용하여 긴 양각의 명문을 새겼다. 명문에 의하면 이 종은 왕실의 발원에 의해 천순 6 년 임오년인 세조 7 년(1462)에 흥천사용으로 제작된 것으로서 흥천사는 태조 이성계의 후비였던 신덕왕후의 정릉 부근에 세워졌던 원찰이었다. 여기에는 사리 분신의 瑞祥을 통해 세조의 왕위 찬탈의 당위성을 무마시키고자 하였던 당시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종을 감독한 도제조에 효녕대군을 비롯한 왕실과 제조, 부제조의 여러 직분과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이 밖에도 종을 제작할 때 관계된 감역, 주성장, 노야장, 주장, 조각, 목수, 수철장, 각자 등 당시의 수공업 분업 상황 및 직제 등을자세히 기록하고 있어 당시 시회제반 사항을 이해하는 귀중한 금석문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이후 흥천사 종은 조선 11 대 중종 5 년(1510)에 흥천사가 불에 타 폐사됨에 사용되지 않다가 영조 23 년(1747)에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에 걸리게 되었고 다시 일제 강점기 때 광화문이 다른 곳으로 옮겨짐에 따라 지금의 덕수궁으로 거처가 옮겨졌다. 흥천사 종은 3m 에 이르는 대형의 크기에 비해 주조가정교하면서도 세부 장식이 섬세하여 조선시대 종 가운데 가장 뛰어난 종으로 평가된다. 고려 말에 계승된 중국종과 새로운 명나라 종 양식을 수용하면서도 조형과 세부 장식 면에서는 한국 전통형 종의요소가 적절히 가미된 조선 범종으로 새로운 정착화를 이룬 작품으로서 이후 만들어지는 조선 전기왕실 발원 범종의 모본이 되는 기념비적 범종이란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Abstract
In the early Joseon period, as the symbol of the establishment of a strong kingdom of power, a large number of the big Buddhist bell mobilizing the origins and resources of the nation were produced. Heungcheonsa bell is the first work to show the tendency of such period. This bell features double dragon-shaped loop and cintamani at the top. In the middle part of bell the three rows of thick ridges are engraved, the central elevation line is thicker than other. The upper part of the bell is arranged with wave pattern, but there is no the striking point between mouth and the lower part of bell. According to inscriptions, this bell was made at 1462 by the royal family. This bell reflects the atmosphere of the time through the auspicious incarnation of Sarira shout the despicability of the throne of King Sejo through the priest of Sari supremacy. In addition this bell is an important epitaph that understand the early Joseon society because of including the royal family and government artisans as well as the casting techniques used to produce bell. This bell was not used after the burnt down of the temple since 1510. But in 1747 this bell was moved to Gwanghwamun, the main gate of Gyeongbok Palac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s the Gwanghwamun moved to another place, this bell was moved to the present Deoksu Palace. The bell is a monumental artifact in that it became a prototype for temple bells of the early Joseon Dynasty, and thus provides insight into the development of temple bells of the early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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