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지역 소조상의 편년에 대한 고찰
Consideration over the Chronicle of Clay Statues in Ik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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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익산지역에서 발견된 소조상은 부여의 소조상과 다른 양식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백제 사비기인 7 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간주되어왔다. 이는 유물의 양식보다는 사료자료를 바탕으로 연구가진행되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익산은 지리적으로 백제의 영역에 속했지만, 백제멸망이후에도 운영되었다. 즉, 익산지역 소조상은 부여의 것과 스타일이 비슷할 지라도 부여의 것보다 늦게 제작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2 장에서는 익산지역 소조상의 현황에 대해 살펴보았다. 익산 미륵사지와 제석사지 소조상은 다양한 곳에서 출토되나 두 사찰의 출토양상이 다르므로, 두 사찰 소조상의 봉안방식 혹은 봉안처에 차이가 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익산지역 소조상의 제작기법은 부여지역 소조상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제작시기가 달랐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다음장에서는 소조상의 양식과 공반유물을 통해 편년추정을 하였다. 소조상은 재질의 특성상 완형으로 발견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익산 미륵사지와 제석사지 소조상은 그 시기의 양식을 추정할 수있었다. 익산 미륵사지와 제석사지의 <소조머리편>과 제석사지 출토 <소조입상>이 바로 그 예이다. 두 사찰의 <소조머리편>의 발제선과 제석사지에서 출토된 <소조입상>의 의습표현을 통해 익산지역소조상의 제작시기가 기존 7 세기보다는 늦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리고 이 두 사찰에서 출토된 당초무늬가 표현된 암막새와 미륵사지 출토 <녹유연목와>를 통해 소조상의 편년이 기존 7 세기보다는후행하였다는 증거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Abstract
Clay statues, found in Iksan, have been considered to be made in the 7th century although it shows different styles of those found in Buyeo. This might be because many researches were conducted in the basis of historical documentation that does not fully reflect a categorization or grouping of an artifact’s styles or patterns. Although Iksan is geopolitically included in the boundary of Baekje, it is independently managed after the collapse of Baekje. This suggests that even though similar styles of clay statues have been found in Iksan, they are likely to be made relatively later than in Buyeo. In Chapter 2, the present condition of clay statues in Iksan were studied. Clay statues in Iksan Mireuk Temple site and Jesoek Temple site are excavated in various places, but the two Buddhist temples show different aspects of excavation. This implies that these two types of statues have different enshrinement methods and enshrinement places. Additionally, the production methods of clay statues in Iksan are different from those in Buyeo. In the next chapter, chronological estimation is conducted through researching the style of clay statues and associated relics. Due to the material characteristics, clay statues are not found intact. However, some clay statue pieces in the Iksan Mireuk Temple site and Jesoek Temple site provide clues to estimate the production style of that period. Representative examples are the Head Fragment of Clay Statues from the Iksan Mireuk Temple Site and Jesoek Temple Site, and the Standing Statue from the Jesoek Temple Site. The style of Hair line of Statue Fragment in two Buddhist temples and the style of wrinkles in a dress of statue in Jesoek Temple Site provide possibilities that statues in Iksan were made after the 7th century. And Roof-end Tile with Rinceau Design and Green-glazed Rafter-end Tile in these two temples also suggest that statues can be made after the 7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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