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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악3호분의 불교적 이해와 묘주도류의 화풍

The understanding of Anak Tomb No. 3 in the perspective of Buddhism and artistic style of tomb owner's portra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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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미술

초록

이글에서는 불교의 東傳에 따라 관련 미술이 수용되어 안악3호분 내 측실과 회랑의 공간 구획을 비롯해 측실의 벽화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를 중점적으로 검토하였다. 오호십육국시대 華北 지역과 遼寧 지역의 묘에서도 확인되는 측실의 축조는 인도석굴사원의 구조가 불교의 동전에 따라 함께 유입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안악3호분은 훨씬 서역미술의 영향이 강하다. 한편 좌측실을 주거공간으로 하고 우측실을 생활 편의 공간으로 명확하게 용도를 구분한 방식은 고구려의 주거구조를 적용한 것이다. 이는 벽화의 내용을 결정짓는 중요한 조건이었다. 또한 회랑은 인도 석굴사원의 列柱식을 응용한 것이며 이로 인해 형성된 회랑은 키질 석굴의 경우처럼 공양자나 관리자를 위한 보조통로 기능을 띤다. 그러나 고분에서 보조통로의 용도는 追加葬을 위해 인부들이 드나드는 경우 외에는 상정하기 힘들다. 이는 안악3호분에 추가장이 있었다는 판단을 가능케 한다. 불교의 전래로 인한 불교미술의 유입은 벽화의 기법에도 확인할 수 있다. 측실의 묘주도와 주변의 인물들은 화북과 요녕 지역의 벽화와도 관련되지만 요철법같은 서역적인 요소가 보다 강하게 보여서 키질 석굴과 연결된다. 이는 4세기의 화북 지역 국가들이 적극적인 한화 정책을 썼던 반면 정치나 국가 조직 등에서 고구려는 고유색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묘주부인도와 주위의 시종은 풍후한 외모가 특징적이다. 이 역시 기본적으로 키질 등의 서역 미술과 관련되며, 북위와 당으로 계승된다. 그러나 묘주부인도는 濃麗豐美할 정도로 그 정도가 심한데, 서역미술의 강한 영향 때문이다. 또한 도안화된 옷주름은 바로 동진의 벽화와 비교가능한데, 이른바 顧愷之풍이다. 이러한 기법상의 차이는 묘주부인도와 묘주도가 다른 화공에 의해 제작되었다는 점을 알려준다. 제작 시기 역시 차이가 나는데, 이는 회랑이 추가장을 위한 보조통로 역할을 하는 시설이라는 점과 장막위의 연꽃이 형식상 차이가 난다는 점을 통해 보다 확정할 수 있다.

Abstract

Buddhism seemed to influence on arts when it spread to the East. This paper mainly discussed the effects of Buddhism on the space division of the side room and the changes in the corridor of Anak tomb No. 3. The side room, which was also found in tombs in the areas of Hua Bei (Northern China) and Liaoning during Five-tribe and Sixteen-nation era, was built under the influence of Indian cave temple, coming along with Buddhism. However, Anak tomb No. 3 has been strongly influenced by fine arts from countries bordering Western China. The way to divide its space - left-side room as a residential space and right-side room as a place for life convenience - was similar to the residential structure in the Koguryeo era, which played a critical role to decide what to draw on the wall of the tomb. Also, its corridor, a copy of Caitya-style colonnade of Indian cave temple, was a place for added burial. Its function was similar to that of the secondary walkway at Kizil Caves, which was made for its maintenance workers. The influence of Buddhism was also found in the mural. Although the paintings of the tomb owner and other people on the wall of the side room seemed to show similar aspects in other murals in Hua Bei (Northern China) and Liaoning areas, they also had artistic features from countries near Western China such as concavo-convex style, sharing similar factors found in Kizil Caves. On the other hand, the wife of the tomb owner and her servants in the mural looked chubby, which could be seen in the arts of the countries near Western China such as Kizil. However, the wife's figure seemed to be more chubby than others and reminded of paintings of beautiful women in Northern Wei and the Tang age. Thus, it could be said that the mural was produced when the art of countries near Western China was transferred to the East until the Tang age. The complex and designed winkles in the dresses can be also compared with those on murals in Dongjin era, so called Gu Kaizhi style. These differences indicated that the tomb's owner and his wife were drawn by different painters. Their production dates seemed to be different, which were confirmed by two factors: the corridor was an additional pathway for added burial, and the shapes of lotus on the curtains were differ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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