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화집』 서문과 기자 관련 창수에 나타난 조선 문신의 자주적 문명의식
A Brief Analysis of Hwanghwajip
0
조회
0
다운로드
2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명 건국 이후 1641년(인조 19, 崇禎 6)까지 242년 사이에 모두 186회에 걸쳐 조선에 사신을 파견했는데, ‘文學之士’를 파견한 것이 모두 24번 있었고 문관 출신 정사와부사는 모두 39명이었다. 문관 사신의 24차 내방에 대해 조선 조정은 13차례나 현직문형을 접반사로 선임했으며, 사신과 원접사·접반사(관반)·반송사 등의 창수는 대개『皇華集』으로 엮었다. 1773년(영조 49)에는 『경오황화집』부터 『계유황화집』까지 23집을 인서체자목활자 25책 50권으로 간행했다. 명나라 문단은 『황화집』을 중시하지 않았지만, 조선의 조정은 『황화집』의 시문이 조선의 문명을 드러낼 수 있다고 여겨 중시했다. 초기에는 양측의 酬唱이 중국 사신들이 조선에 와서 조선의 문풍을 채집하는방도가 되길 희망했으나, 차츰 조선의 시문이 중국의 그것과 같은 수준에 있음을 인정받고자 했다. 이 변화의 사실은 『황화집』 서문에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또한 『황화집』 서문에서는 명나라 사신에 대해 ‘사신으로서의 역할’을 재확인시키고 명나라 조정에 대해서는 外藩 가운데 각별한 위치에 있는 조선에 대한 외교상의 舊規를 신칙할것을 강조했다. 『황화집』은 조공 체체의 문화적 산물이지만, 조선의 문신들은 명나라사신과의 酬唱에서도 중세의 민족자주성에 바탕하여 고유한 문화적 전통을 확인하고 재생산했다. 箕子 담론을 통해서 조선 문명의 유구성과 독자성을 강조한 것은 그중요한 사례이다. 창수 시문의 제반 양식은 조선 문단의 시문 양식 선택과 계승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사신과의 창화에서 和韻賦가 제작되고 이 때문에 조선의 문인들이 지속적으로 부를 창작한 사례는 가장 두드러진 예이다.
Abstract
For 242 years from its founding to the year 1641, (19th year of Injo, Chongzhen 6th), the Ming dynasty of China ( 1368-1644) sent its envoys to Joseon Korea as many as 186 times in total, with dispatching ‘officials of letters,’ at 24 times and chief and deputy emissaries at 39 times. To receive the ‘official of letter’ on a Chinese mission, the Joseon court appointed an incumbent minister, who was renowned for his literary excellency at 13 times. And library works exchanged between the Ming emissary and Joseon reception envoy, deputy reception envoy, and escort envoy were usually compiled into a book called Hwanghwajip. In 1773 (49th of Yeongjo), a total of 23 editions ranged from Gyeongo Hwanghwajip to Gyeyu Hwanghwajip were compiled in 25 volumes with 50 chapters, and printed in the Inseoche wooden type. While Ming literary circles did not regard Hwanghwajip as an important work, the Joseon court valued it as a means to exhibit its sense of civilization. At first, the Joseon court hoped that the work would provide Chinese envoys with access to the Joseon literary culture but later, it gradually wanted Joseon literature to be recognized as equal to that of the Ming dynasty. The preface of Hwanghwajip clearly shows such changed view. Furthermore, the preface reconfirmed ‘the duty of Chinese envoys,’ and emphasized the Chinese court’s observance of the conventional diplomatic norms in dealing with Joseon, which was in an exceptional position among China’ satellite states. Since Hwanghwajip was a cultural product of the tributary relationship, Joseon officials had to have toadyish attitude, passively praising the Ming entourage in refraining words. However, they also expressed medieval national autonomy, reconfirming and reproducing the dynasty’s unique cultural heritage. The discourse on Jizi (Gija) is one of the important examples that shows the idea of perpetuity and identity in Joseon culture. Various styles found in poems of the two countries’ envoys are believed to have influenced the development in Joseon’s own literary styles. There is a notable example: since rhyme replying rhapsodies ( fu) were composed by the envoys, Joseon writers began to practice rhapsodies.
참고문헌 (65)
- "皇華集" (1978), 珪庭出版社
- 趙季, "足本 皇華集, 上中下" (2013), 鳳凰出版社
- 김한규, "사조선록 역주 1~4" (2012), 소명출판
- 盧思愼, "東文選" (1999), 민족문화추진회
- 李荇, "新增東國輿地勝覽" (1974), 亞細亞文化社
- 李肯翊, "燃藜室記述, 上中下" (1976), 景文社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48책" (1981), 탐구당
- 李調元, "粵東皇華集" (1991), 中華書局
- 一然, "三國遺事: 晩松文庫本 附石南本·鶴山本" (1983), 旿晟社
- 永瑢, "四庫全書總目提要" (2000), 河北人民出版社
- 張廷玉, "明史, 28冊" (1974), 中華書局
- "日本京都大學文學部藏本, 『回文類聚』", ~
- 姜紹書, "韻石齋筆談" (1966), 藝文印書館
- 權近, "陽村集" (1988), 민족문화추진회
- 奇大升, "論思錄" (2012), 한국역대문집DB
- 金宗直, "佔畢齋集" (1988), 민족문화추진회
- 金昌協, "農巖集" (1996), 민족문화추진회
- 盧守愼, "穌齋集" (1988), 민족문화추진회
- 卞季良, "春亭集" (1988), 민족문화추진회
- 徐居正, "四佳集" (1988), 민족문화추진회
- 徐居正, "筆苑雜記" (1991), 국학자료원
- 宋時烈, "宋子大全" (1988), 민족문화추진회
- 申叔舟, "保閑齋集" (1988), 민족문화추진회
- 申欽, "象村稿" (1988), 민족문화추진회
- 吳光運, "(역주)약산시부" (2012), 월인
- 柳夢寅, "於于集" (1988), 민족문화추진회
- 柳希春, "眉巖集" (1988), 민족문화추진회
- 柳希春, "국역 미암일기 1~5집" (1992), 담양향토문화연구회
- 尹鑴, "白湖先生文集" (1994), 민족문화추진회
- 李敏求, "東州集" (1988), 민족문화추진회
- 李承召, "三灘集" (1988), 민족문화추진회
- 李珥, "栗谷全書" (1988), 민족문화추진회
- 李廷龜, "月沙集" (1988), 민족문화추진회
- 李滉, "退溪集" (1988), 민족문화추진회
- 張維, "谿谷集" (1988), 민족문화추진회
- 趙纘韓, "玄洲集" (1988), 민족문화추진회
- 崔鳴吉, "증보역주 지천선생집 1~4" (2008), 도서출판 선비
- 許筠, "惺所覆瓿藁" (1988), 민족문화추진회
- 黃景源, "江漢集" (1999), 민족문화추진회
- 金暻綠, "朝鮮初期 對明外交와 外交節次", 한국사론, 44 (2000)
- 김기화, "『皇華集』 序文과 序文撰述者의 文集에 대한 연구", 서지학연구, (41), pp.227~264 (2008), 한국서지학회[DOI]
- 金恩娗, "庚午本皇華集 編纂經緯와 詩文酬唱의 意味", 한국한시연구, 7 (1999)
- 김은정, "『皇華集』출현 배경으로서의 世宗의 국가경영", 열상고전연구, (56), pp.71~103 (2017), 열상고전연구회[DOI]
- 김한규, "『遼海編』의 史料的價値", 서강인문논총, (28), pp.43~75 (2010), 인문과학연구소
- 김한규, "사조선록(使朝鮮錄) 연구: 송·명·청 시대 조선 사행록의 사료적 가치" (2011), 서강대학교 출판부
- 류기수, "『皇華集』의 刊行과 收錄된 明詞에 관한 考察", 중국학연구, (47), pp.91~125 (2009), 중국학연구회
- 박춘섭, "韓中 文人들의 唱和詩에 나타난 箕子 認識의 展開: 『皇華集』所載 作品을 對象으로", 박사, pp.2015
- 박춘섭, "조선과 명나라 문사들의 기자 담론의 전개: 『황화집』 연구" (2018), 박문사
- 신태영, "명나라 사신은 조선을 어떻게 보았는가" (2005), 다운샘
- 沈慶昊, "韓國傳統文化·文化卷" (2001), 學苑出版社
- 안장리, "『皇華集』 쇠퇴의 이유와 의미", 열상고전연구, 15 (2002)
- 은설정, "龔用卿出使朝鮮考述 ———以龔用卿《使朝鮮錄》與朝鮮《丁酉皇華集》為中心", 중국문학, 59, pp.235~271 (2009), 한국중국어문학회[DOI]
- 은설정, "明景泰年間的中朝詩賦外交 ―以倪謙出使朝鮮為中心的考察", 중국문학, 65, pp.67~87 (2010), 한국중국어문학회[DOI]
- 은설정, "嘉靖年间的中朝诗赋外交 -以龚用卿出使朝鲜与『丁酉皇华集』为中心的考察-", 한중인문학연구, (34), pp.405~425 (2011), 한중인문학회
- 殷雪征, "明末熊化出使朝鲜及其与东国的文化交流 -以『己酉皇华集』为中心-", 한중인문학연구, (47), pp.355~374 (2015), 한중인문학회
- 이현종, "明使接待考", 향토서울, 12 (1976)
- 姜維東, "明末『皇華集』(三種)研究" (2018), 人民出版社
- 關注, "明萬曆三十七年熊化出使朝鮮研究", 當代韓國, (3) (2018)
- 杜慧月, "明代文臣出使朝鮮與『皇華集』" (2010), 人民出版社
- 黄雅詩, "明代中朝關系考察: 以『皇華集』爲中心", 국제한국학저널, 2 (2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