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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후기 섬에 대한 인식 및 정책 변화 양상 -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

Changes in the Government’s View and Policy on Joseon’s Island Territories in the Early and Late Joseon Dynasty - A Case Study of Jeollado Prov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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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을 통치 질서의 근간으로 삼았던 조선왕조는 공간에 대한 인식 및 운영 정책에서도 ‘화이론(華夷論)’을 적용하였다. 즉 통치의 영역이 미치는 공간을 ‘화(華=문명)/이(夷=야만)’로 구분하면서 섬 지역을 임금의 교화(敎化)가 미치지 못하는 ‘이역(夷域)’으로 간주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공도(空島) 정책을 실시하여 육지와 가깝거나, 또는 군현을 설치할 정도로 규모가큰 섬을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의 섬에는 주민을 거주하지 못하게 하였고 그 대신 말을 키우기위한 국영목장(國營牧場)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임진과 병자의 두 차례 병란을 겪고 난 17세기 중반 이후, 섬 지역에 대한 조선 정부의 인식 및 관심, 그리고 운영 정책은 크게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 변화의 골자는 ‘공도(空 島)’에서 ‘입도(入島)’로의 변환이었으며, 결과는 해로 상 요충지에 해당하는 섬 지역에 수군진(水軍鎭)을 설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로소 섬을 유용한 공간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었다. 조선시대 섬 지역에 대한 인식 및 정책의 변화상을 전라도 지역의 사례로 고구해 보았다. 연구 결과 확인되었거나 유추할 수 있었던 양상들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조선 전기(15세기 전반)에는 30여 개 정도만을 파악(인식)할 수 있었던 전라도 지역의섬이 조선 중기(16세기 전반)에는 무려 250여 개로 급증하고 있었으며, 조선 후기(18세기 중엽과 19세기 중엽)에 이르러서는 그 급증의 양상이 더하여 430~460여 개나 되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전라도 지역의 섬에 설치된 국영목장은 조선 전기(15세기)에는 34개였으나, 조선 후기(17세기 후반)에는 그 절반가량인 15개로 급감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 폐장(廢場)된 국영목장도 34개나 확인되었다. 이는 조선 정부가 조선 중기 이후 섬에 대한 파악이 급증한 것과는반비례하는 양상이었다. 셋째, 공도 정책의 폐지 및 국영목장의 폐장 결과, 전라도 지역의 섬에는 입도하는 이주민들이 급증하여 조선 후기 30년 동안(18세기 중엽~말엽) 23%의 인구 증가율을 보인 곳도 나타났다. 그 결과 일부 군현의 경우 전체 인구 중 섬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30%에 달하는 곳도 있었다. 인구의 급증은 섬의 위상을 크게 변화시켰고, 일부 섬 지역은 면리제(面里制)로 편제되어 육지와 대등한 행정단위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넷째, 인구의 급증으로 섬 지역에 수군진을 증설한 양상도 확인되었는데, 조선 중기(15~16 세기)까지 전라도 지역의 수군진이 설치된 섬이 7개였으나, 조선 후기(17~18세기)에는 15개로두 배가량이나 증설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상 요약한 바, 조선 후기에 들어와 전라도 지역의 섬에는 적잖은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변화의 토대는 조선 정부의 섬에 대한 인식과 관심의 확장 및 그에 부합한 정책의 전환이었다. 이제 섬은 더 이상 ‘단절’과 ‘고립’의 공간이 아니라 ‘소통’의 공간이 되었던 것이다.

Abstract

The Joseon Dynasty, having adopted Neo-Confucianism as the basis of its ruling order, applied the principles of Sino-centrism (華夷論) to its spatial awareness and operation. According to this ideology, the dynasty divided its domains into civilized (華) and non-civilized (夷) areas, and considered its islands to belong to the latter group, that is, “barbaric lands” located beyond the reach of the king’s edification. That is how the rulers of the dynasty adopted the “vacant island” (空島) policy, prohibiting its people from inhabiting the islands, except for those close to the mainland or large enough to have a county or prefectural administration. Many of the uninhabited islands were used as state-owned horse farms. It was during the mid-seventeenth century, shortly after Joseon had suffered two devastating invasions, one by the Japanese (Imjin waeran, 1592-98) and the other by the Manchus (Byeongja horan, 1636-37), that significant changes occurred in the Joseon dynasty’s interest in and understanding of the strategic importance of the islands, resulting in the adoption of an entirely new policy. The key to the new policy was the shift from “vacation” to “inhabitation” of the islands and the establishment of naval bases on certain strategic islands. Now the islands began to be perceived as useful parts of the territory. This paper examines changes in the awareness and policies of the Joseon dynasty regarding the importance of its islands through a case study of Jeollado Province. The results are as follows. First, the number of islands identified by the Joseon dynasty increased dramatically, from about 30 in the first half of the fifteenth century to 250 about a century later, and continued to grow to between 430 and 460 by the mid-nineteenth century. Second, there were 34 state-run horse farms on the islands of Jeollado Province in the fifteenth century, but this figure was drastically reduced by more than half, to 15, in the late seventeenth century. Research has also revealed that at least thirtyfour horse farms run by the Joseon dynasty were closed in the mid-Joseon period. This decrease was inversely proportional to the number of islands identified by the government of Joseon after the mid-Joseon period. Third, the abolition of the “island vacation” policy as well as the closure of the state-run horse farms led to a dramatic increase in the number of people inhabiting the islands of Jeollado Province, resulting in the growth of the population by 23% over a thirty-year period in late Joseon. The population of the islands in some counties and prefectures rose by as much as thirty per cent, which contributed to promoting the status of the islands in the administrative units concerned to one equivalent to those of the larger units on the mainland. Fourth, the dramatic increase in the population of the islands of Jeollado Province led to the establishment of new naval bases around the islands. Until the fifteenth or sixteenth century there were only seven naval bases, but the figure doubled to fifteen in the seventeenth and eighteenth centuries. In conclusion, a series of remarkable changes occurred in the islands of Jeollado Province during the late Joseon period. Such changes were largely attributable to the Joseon government’s new understanding of, and increasing interest in, the importance of the islands and to the change of policies occasioned by this new perception of the islands. For the government of the late Joseon period, the islands were no longer a space of separation and isolation but one of commun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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