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계 석탑의 특징과 건립배경
Feature and construction background of the stone pagodas which are influenced from Baekje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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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고려시대, 이르게는 후백제시대에 재현된 것으로 보이는 백제계 석탑은 탑신부에 비해 낮고 좌우로 좁은 기단, 부재의 個別化,기단보다 좌우로 넓은 옥개석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백제의 석탑 2基,彌\勒寺址石塔과 定林寺址五層石塔을 모방·계승한 것이다. 백제계 석탑은 과거 백제의 영토, 자세하게는 후백제의 영토인 車嶺山脈以南부터 蘆嶺山脈以北에 집중되어 있다. 백제석탑과 신라석탑이 절충된 백제-신라절충양식 석탑은 대체로 노령산맥 이남에 먼저 건립되었고 뒤이어 노령산맥 이북에서도 나타나는 모양새를 보인다. 백제계 석탑은 백제가 멸망한 이후 200여 년간 등장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백제가 멸망한 이후 석탑을 건립할만한 주체들이 당에 끌려가거나 일본, 고구려 등지로 이주·망명하였기 때문이다. 후백제의 甄萱이 彌\勒寺開塔과 관련이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할 때 백제계석탑은 그가 자극한 백제의식의 소산물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러한 백제의식은 고려의 후백제 유민에 대한 차별정책으로 인하여 사라지지 않고 남아 고려중기까지 백제계석탑이 나타는 데 역할을 하였다. 일찍이 고려에 협조하여 후백제에 귀속하지 않았던 노령산맥 이남의 전라남도 연안지역은 노령산맥 이북보다 더 많이 중앙의 고위관료를 배출했기 때문에 백제-신라절충양식 석탑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백제계 석탑은 고려가 지방통치조직을 정비하는 시기와 맞물려 그 특징이 쇠퇴하였다. 그리고 무인정권기에 지방통치조직이 더욱 강화되었고 몽골의 침입을 받으면서 동류의식이 싹트는 시기와 맞물려 백제계석탑은 더 이상 건립되지 않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Abstract
Baekje Style pagodas have features called stereobate part that is lower and narrower than main frame part, individualized members, roof part that wider than stereobate part. Most of Baekje style pagodas were built in south of the range of Charyeong, north of the range of Noryeong that were once the Later Baekje territory. Baekje-Silla eclectic pattern pagodas generally were begun to build in south of the range of Noryeong that was under the control of Goryeo. After Baekje was came to the ground by Silla-Tang forces, Baekje pagodas were not constructed for almost two centuries. The main cause is because the ruling class defected to Japan orwas dragged by Tang. Baekje style pagodas could be built because Gyeonhwon, the Lord of the Later Baekje stimulated Baekje-consciousness. And Goryeo dynasty excluded people of the Later Baekje from officialdom of Goryeo. It makes Baekje-consciousness was extant in the Later Baekje territory and caused Baekje style pagod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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