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언론을 통해 본 민족의 금강산 탐승
The Exploration of Geumgang Mountain by the People in Modern Media
1
조회
0
다운로드
2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본 논문은 근대 언론을 통해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금강산 탐승을 알아본다. 금강산은 일제강점기 시기 많은 개발로 그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먼저 교통의 변화부터 시작되었다. 1910년대 이후 경원선으로 시작된 금강산 관광은 시기가 흐를수록 시간대를 늘려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일제는 금강산 관광화를 지속하기 위해 금강산전기철도를 비롯하여 여러 노선을 증설하여 금강산 관광객을 모으고자 했다. 이후 인프라 시설에 많은 투자가 있었다. 일제는 금강산을 근대적 관광지로 변화시키기 위해 근대 호텔과 휴게시설을 만들어 관광객들이 금강산에 머물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금강산과 연계하여 근처의 지역들까지 금강산 관광의 일부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관광객들이 금강산에 더 머물며 소비가 이루어지도록 했고 1930년대에는 그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러한 변화는 일제의 동화정책 중 하나였다. 특히나 신문사를 통해 탐승단을 모집하여 사람들이 금강산에 찾아올 수 있도록 하였다. 일정을 보면 금강산의 명소 뿐만 아니라 일제가 개최한 박람회를 참여하는 등 금강산 탐승단은 일제의 동화정책 그 자체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탐승단 모집이 다 같다고 볼 수는 없다. 우리 민족이 창간한 신문인 『조선일보』, 『동아일보』, 『조선중앙일보』의 금강산 탐승단 모집과 관련된 기사를 보. 면 그 속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은 일제의 신문사들과는 다른 양상이다. 즉, 일제의 금강산 관광화로 인한 금강산의 변화와 탐승단 모집이 단순한 일제의 동화정책과 일제의 문화정복에 이용만 당했다고는 볼 수 없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the Korean people's quest for Mt. Geumgang in Japanese colonial era through modern media. Geumgang Mountain began to change in a different shape than before due to many developments during Japanese colonial era. It started with a change in traffic. Geumgang Mountain tourism, which began as Gyeongwon Line since the 1910s, was so popular that the time zone had to be increased over time. In order to continue the tourism of Geumgang Mountain, the Japanese government wanted to attract tourists to Geumgang Mountain by expanding various routes, including the Geumgang Mountain Electric Railway. Since then, there has been a lot of investment in infrastructure facilities. In order to transform Geumgang Mountain into a modern tourist destination, the Japanese government created modern hotels and rest facilities so that tourists could stay at Geumgang Mountain. And it did not end here, but in connection with Geumgang Mountain, the nearby areas were made part of the tour. This allowed tourists to stay more at Geumgang Mountain and consume more, and in the 1930s, the number exploded. This change was one of the Japanese assimilation policies. In particular, group of sightseers was recruited through a newspaper so that people could visit Geumg Mountain. If you look at the schedule, you can see the Geumgang Mountain group of sightseers as the Japanese assimilation policy itself, such as participating in the fair held by Japan as well as the attractions of Geumgang Mountain. However, not all the recruitment of the expedition team is the same. According to articles related to the recruitment of the Geumgang group of sightseers in the Chosun Ilbo, Dong-A Ilbo, and Chosun JoongAng Ilbo, which are newspapers founded by Korean people, efforts to find the identity of the nation in them are different from those of Japanese newspapers. In other words, it cannot be said that the change of Geumgang Mountain and the recruitment of the tour group due to the Japanese colonial rule of Geumgang Mountain tourism were simply used for the Japanese assimilation policy and the Japanese colonial rule to conquer culture.
참고문헌 (41)
- "京城日報", ~
- "東亞日報", ~
- "每日新報", ~
- "釜山日報", ~
- "朝鮮新聞", ~
- "朝鮮時報", ~
- "朝鮮日報", ~
- "朝鮮中央日報", ~
- "中外日報", ~
- 이광수, "금강산 유기" (2011), 기파랑
- 구자황, "근대 교과서와 기행문 성립에 관한 연구 - 일제 강점기 조선어 교과서에 나타난 명승고적을 중심으로 -", 한민족어문학(구 영남어문학), (69), pp.83~113 (2015), 한민족어문학회
- 권보드래, "근대 초기 '민족' 개념의 변화-1905~1910년 대한매일신보를 중심으로", 민족문학사연구, (33), pp.189~213 (2007), 민족문학사연구소
- 김백영, "금강산의 식민지 근대―1930년대 금강산 탐승 경로와 장소성 변화", 역사비평, (131), pp.382~414 (2020), 역사문제연구소
- 김정은, "일제강점기 창경원의 이미지와 유원지 문화", 한국조경학회지, 43(6), pp.1~15 (2015), 한국조경학회
- 김현주, "근대 초기 기행문의 전개 양상과 문학적 기행문의 “기원”- 국토기행을 중심으로-", 현대문학의 연구, 16 (2001), 한국문학연구학회
- 박환, "일제강점기 한글신문의 변모양상-‘친일’과 ‘민족’-", 한국민족운동사연구, (58), pp.5~22 (2009), 한국민족운동사학회
- 우연주, "근대적 도시 공원으로서 창경원", 한국조경학회지, 44(4), pp.14~21 (2016), 한국조경학회
- 서태정, "대한제국기 일제의 동물원 설립과 그 성격", 한국근현대사연구, (68), pp.7~42 (2014), 한국근현대사학회
- 성주현, "1930년대 이후 한글신문의 구조적 변화와 기자들의 동향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한국민족운동사연구, (58), pp.153~204 (2009), 한국민족운동사학회
- 서태정, "1910년대 ‘창경원’의 운영과 그 성격", 한국민족운동사연구, (89), pp.91~134 (2016), 한국민족운동사학회[DOI]
- 양세화, "일제강점기 가정박람회에 나타난 이상주거", Human Ecology Research, 47(1), pp.45~54 (2009), 대한가정학회
- 원두희, "일제강점기 근대 관광지로서의 금강산", 기전문화연구, 38(2), pp.121~142 (2017), 기전문화연구소[DOI]
- 이기훈, "발명왕 이순신과 잠수함이 된 거북선 ―민족주의 신화의 형성과 확산", 역사비평, (121), pp.222~250 (2017), 역사문제연구소[DOI]
- 이경훈, "트랜스내셔널리티; 식민지와 관광지-만주라는 근대 극장-", 사이間SAI, 6 (2009),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
- 이동훈,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와 1910년대 식민지 조선-공진회 개최 과정과 일본인사회의 협찬활동-", 韓日民族問題硏究, (40), pp.55~86 (2021), 한일민족문제학회[DOI]
- 이숙화, "근대 단군민족주의의 계승과 단군운동-한말에서 임시정부 수립까지-", 고조선단군학, 39(39), pp.125~162 (2018), 고조선단군학회[DOI]
- 이영수, "20세기 초 金圭鎭(1868~1933)의 금강산 유람과 예술 활동", 한국고지도연구, 10(1), pp.23~49 (2018), 한국고지도연구학회[DOI]
- 이유빈, "근대성과 금강산의 장소적 의미 변화 : 1920년부터 1979년까지 금강산 관련 언론보도분석", 석사, pp.2021
- 이민주, "검열의 ‘흔적지우기’를 통해 살펴본 1930년대 식민지 신문검열의 작동양상", 한국언론학보, 61(2), pp.37~63 (2017), 한국언론학회[DOI]
- 이부용, "『아사히신문』 외지판에 나타난 금강산 인식 – 「조선잡관」과 《대금강산보》를 중심으로 –", 어문논집, (89), pp.129~164 (2020), 민족어문학회[DOI]
- 이혜진, "근대계몽기 ‘민족’의 탄생과 ‘국민’의 거처", 인문연구, (50), pp.51~80 (2006), 인문과학연구소
- 유승훈, "근대 자료를 통해본 금강산 관광과 이미지", 실천민속학 연구, 14, pp.339~368 (2009), 실천민속학회
- 유정선, "1930년대 금강산 기행가사에 투영된 여행체험의 의미", 이화어문논집, (44), pp.213~242 (2018), 이화어문학회[DOI]
- 장혜진, "일제강점기 금강산전기철도주식회사 설립과 금강산개발 실태- 금강산전기철도주식회사20년사를 중으로-", 강원문화연구, 44 (2021), 강원대학교 강원문화연구소
- 정치영, "여행안내서 『旅程と費用槪算』으로 본 식민지조선의 관광공간", 대한지리학회지, 53(5), pp.731~744 (2018), 대한지리학회
- 조성운, "1910년대 조선총독부의 금강산 관광개발", 韓日民族問題硏究, (30), pp.5~58 (2016), 한일민족문제학회
- 한종민, "『조선중앙일보』의 식민지 현실인식과 세계정세인식", 지역과 역사, (41), pp.265~318 (2017), 부경역사연구소[DOI]
- 허동현, "한국 근대에서 단일민족 신화의 역사적 형성 과정", 동북아역사논총, (23), pp.5~35 (2009), 동북아역사재단
-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URL]
-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