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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동학농민군과 기독교 선교사의 접촉과 소통 -매켄지(William J. McKenzie) 선교사를 중심으로-

The Encounter and Communication between the Tonghak Peasant Army and William J. McKenzie in Hwanghae Provi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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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동학은 서학(가톨릭)을 반대하여 창립되었고 기독교(프로테스탄트)에 대해서도 반대하였다. 동학교도들은 교조신원운동을 진행하면서 척왜양(斥倭洋)의 기치를 들어 서양종교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나 양자는 직접적인 충돌을 일으킨 적은 거의 없다. 동학군이 외세를 배격했기 때문에 서양인은 봉기의 현장을 회피하였다. 그런데 황해도 동학농민군 속에서 7개월을 머물며 견뎌낸 기독교 선교사가 있었다. 캐나다 출신의 매켄지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동학농민군과 소통하면서 기독교와 동학이 하나님의 개념이나 교리의 측면에서 유사한 점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동학농민군 중에도 신약성경을 가지고 다니며 깊은 이해에 도달한 자가 없지 않았다. 매켄지도 동학경전을 구하여 동학의 교리를 탐구하였다. 양자의 유사성은 개종의 유리한 조건이 되었다. 황해도 동학농민군은 외세의 축출, 체제의 개혁을 위해 봉기하였고, 매켄지는 조선선교의 사명을 지고 입국하였다. 두 주체는 상이한 목표와 방향성을 지닌 콘텍스트 속에 놓여 있다가 1894년 가을 황해도 장연지방이라는 시공간에서 조우하였다. 양자는 타자를 자기의 콘텍스트로 편입시켜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였지만, 이때의 접촉과 소통은 이후 민족적 위기 속에서 두 종교간 연대의 가능성을 내재하였다.

Abstract

The Tonghak [Eastern Learning] was founded opposing the western learning, especially the Catholic belief, and it also criticized Christianity, protestant churches. While Tonghak followers requested the rehabilitation of their founder and sought the expulsion of foreigners, they made clear the anti-western stance. However, there was no direct confrontation between those two forces because westerners, fear of anti-western movements, avoided the confrontational spots. Interestingly, there was a Christian missionary who spent seven months among the Tonghak peasant army. The missionary was William J. McKenzie who came from Canada. He found that Christianity and the Tonghak have some common grounds in terms of the concept of God and religious doctrines. Even he noticed that some persons among the Tonghak peasant army arrived at the deep understanding of Christian doctrines while carrying the New Testament Bible. McKenzie also sought and studied the Tonghak canons. The similarity between two belief systems provided the favorable conditions for religious conversion. The Tonghak peasant army arose for the eviction of foreign forces and for the regime reform while Christian missionaries like McKenzie came to Korea for Christian mission. Two forces had very different aims and purposes and met each other in Changyŏn Country, Hwanghae province in fall 1894. Two parties considered each other to be absorbed into each circle. However, their encounter and communication implied the possible communality between two religions in the context of Korean national cr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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