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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북경지역의 흥사단원과 민족운동

Heungsadan Members and National Movement in Beijing in the 192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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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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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20년대 북경지역에서 활동한 안창호 등 흥사단원의 민족운동에 대하여 살펴본 글이다. 북경지역에서 활동한 흥사단원과 그 조직인 천진지부와 북경단소, 그리고 흥사단원이 전개한 실력양성운동과 대독립당 조직 활동에 대하여 검토하였다. 안창호가 국민대표회의를 개최하기 위하여 1922년 중반 천진지역에 와서 유세를 벌이자 천진에서 교민단체를 이끌던 평안도 인물 김위택, 주현칙, 박일경 등 평안도계 인물들이 흥사단에 입교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흥사단 천진지부를 조직하였다. 천진지부의 지부장은 김위택, 총무 겸 재무는 주현칙, 간사는 박일경이었다. 그리고 국민대표회의 후 좌절 후 안창호, 안정근, 김승만 등은 1924년 초 북경 서구 海甸에 해전농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장소를 배경으로 흥사단소를 마련하고 흥사단의 북경지역의 班을 편성하였다. 북경지역에서 활동하던 흥사단원들은 서북 출신의 기독교인과 유학생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북경지역의 흥사단원들은 1924년부터 1926년 중반까지 임시정부, 의열단, 기타 독립운동단체와 직접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대신에 실력양성운동에 매진하였다. 이들은 인격의 양성과 물력의 양성을 통해 독립운동을 준비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운동, 지식의 배양, 도덕의 수양, 분투적 수련 등을 통해 인격을 양성하고자 하였고, 해전농원의 운영을 통해 경제적 실력을 쌓고자 하였다. 한편 이들은 독립의식을 고취하고, 아나키즘을 수용하여 겸애적 공동체를 구현하고자 하였다. 한편 이들은 반공주의와 반소주의의 사상을 드러내었다. 이러한 북경지역 흥사단원의 노선은 북경의 창조파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계가 중심을 이룬 혁명사로부터 우경적 기회주의자로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1926년 9월 경에는 한국재생동맹회로부터 참정권운동파와 자치운동파라는 비판을 받고, 독립운동계로부터 오해를 받기에 이르렀다. 북경지역의 흥사단의 대표인 안창호는 1926년 9, 10월 경부터 창조파의 대표적 인물인 원세훈과 협의하여 대독립당조직북경촉성회를 조직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리고 북경지역의 흥사단원인 안창호, 이탁, 김광천, 박관해, 배인수, 등은 1926년 10월 10일부터 28일까지 북경 지역의 대표들과 여러 차례 회의를 갖고 대독립당조직북경촉성회를 조직하였다. 이후 안창호는 1927년 1월 만주의 길림에 가서 강연회를 통해 참정권운동과 자치운동을 비판하고, 당시로서는 독립운동노선만이 조선 민중의 하나밖에 없는 독립운동노선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독립운동세력의 대통합을 이루려고 하였다. 그리고 사회주의세력의 이탈로 대독립당의 결성이 어려워지자 1930년 1월 상해에서 임시정부의 요인들과 한국독립당을 결성하였다. 이 글은 1920년대 중반 안창호를 중심으로 한 북경지역 흥사단원의 독립운동노선과 이에 대한 반대세력의 동향을 규명해내었다. 그리고 1926년 북경지역의 흥사단원이 대독립조직북경촉성회의 결성에 참여한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the national movements of Heungsadan members, including An Chang-ho, who was active in Beijing in the 1920s. I reviewed the activities of the Heungsadan, the Tianjin Branch, the Beijing Danso, and the Heungsadan, which were active in the Beijing area, and the activities of the Grand Independence Party. When Ahn Chang-ho came to Tianjin in mid-1922 to hold a national representative meeting, Pyeongan-do figures Kim Wi-taek, Joo Hyun-chik, and Park Il-kyung, who led the Korean residents' group in Tianjin, joined the Heungsadan. They organized the Tianjin Branch of Heungsadan. The branch manager of the Tianjin branch was Kim Wi-taek, the general affairs and finance department was Joo Hyun-chik, and the executive secretary was Park Il-kyung. After the National Assembly meeting, Ahn Chang-ho, Ahn Jung-geun, and Kim Seung-man established the Haejun farm in the western city of Beijing in early 1924. In addition, Heungsadan Beijing Division area was organized. The Heungsadan members in Beijing were mostly Christians and international students from the northwest of Korea. From 1924 to mid-1926, Heungsadan members in Beijing engaged in the development of national ability, instead of carrying out a direct independence movement with the Provisional Government, the Uiyeoldan, and other independence movement organizations. They wanted to prepare for the independence movement by fostering character and physical strength. They wanted to cultivate character through exercise, cultivation of knowledge, moral discipline, and strenuous training, and to build economic ability through the operation of the Haejun farm. On the other hand, they promoted the spirit of independence, accepted anarchism to create a benevolent community. They have expressed anti-communism and anti-Soviet Russia ideas. This politalcal doctrine of Heungsadan members in Beijing was attacked by the Beijing Creative People. They were criticized as a right-wing opportunist by the revolutionary group centered on the Irkutsk faction of the Communist Party of Korea. By September 1926, They were criticized by the Korea Regeneration Alliance as a suffrage activist and a self-governing activist, and was misunderstood by the independence movement community. As a way out of this criticism, An Chang-ho, the representative of the Heungsadan Beijing Division, agreed to organize the Great Independence Party Organization Beijing Chromatic Society in September and October 1926, in consultation with Won Se-hoon, a representative of the creative faction. An Chang-ho, Lee-Tak, Kim Gwang-cheon, Park Kwan-hae, Bae In-su, and others, who were members of the Heungsadan in Beijing, held several meetings with representatives of Beijing from October 10 to 28, 1926. Afterwards, Ahn Chang-ho went to Gilim, Manchuria, in January 1927 and criticized the suffrage activist and the self-governing activist through a lecture, stressing that the independence movement was the only way for independence among the Joseon people. After this, he attempted to achieve a grand unity of independence movement forces. Though the formation of the Grand Independence Party became difficult due to the departure of socialist forces, Ahn Chang-ho and Heungsadan members formed the Korean Independence Party in Shanghai in January 1930. This article identified the independence movement of Heungsadan members in Beijing, centered on An Chang-ho, in the mid-1920s, and the trend of opposition forces against it. This will also help us understand the background of the participation in the formation of the Great Independence Party Organization Beijing Chokseonghoe(the Beijing Promotion Association of the Great Independence Organization) of Heungsadan Group in Beijing in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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