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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晉南北朝時期 中華意識의 변용과 동아시아 국제질서

The Transformation of Sinocentrism in the Wei, Jin, Nan, and Bei (魏晉南北朝) Period and the Regional Dynamics of East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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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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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첫째, 魏晉南北朝時期 華夷思想이 胡族 및 그 국가에 의해 변용된 모습을 복원하고, 둘째, 그를 근간으로 수립된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특징을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본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고찰되었다. 우선 五胡 안에서 확인되는 中華意識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를 살펴, 그 의식의 실체를 파악해 보고자 하였다. 그 결과 胡族君主에게서 보이는 중화의식은 夷狄 스스로의 변화의 결과만은 아니고, 오랜 기간 동안 진행된 華夷 雜居의 결과이며 이적에 대한 漢族의 의식 변화가 불러온 결과임을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이러한 중화의식이 胡族王朝들에게서 어떠한 구체적인 조처로 표현되었는가를 확인하였다. 호족왕조들은 자신들이 受命王朝임을 드러내기 위해 五德說에 대응한 王朝交替說을 확립하였고, 皇帝號와 天王號를 채용하여 군주의 권위를 높였다. 또한 스스로를 중화로 규정하여 복속한 타종족을 夷狄視하며, 그들을 관할하는 軍官職을 설치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조처들에 의해 명실상부한 중국적 황제국가로 변화한 호족왕조들은 너나할 것 없이,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冊封朝貢秩序를 수립하여 다원적이며 중층적 국제질서를 수립하였다. 중국 내 호족왕조들의 중화의식의 변용과 그에 따른 독자적인 국제질서의 수립은 또 다른 중심과 변방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중화의식의 전파라는 현상을 만들어 냈다. 高句麗와 倭에서 보이는 독자적인 君主號와 天下觀이 그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독자적 천하관을 수립하고, 그것에 근거한 독자적인 세력권을 형성하여 중층적 국제질서를 만들어 내는 한편 여전히 중국의 책봉조공질서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은 중국식 칭호나 제도의 사용이 당시 동아시아세계에서 국제적 지위를 표현했기 때문이며, 자국 안에서의 권력 유지의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책봉조공질서가 실질적인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설명하지는 못했다 해도, 국제관계 안에서 일종의 질서 유지 장치이자 儀禮的 서열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작동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Abstract

This study aims at recovering how Sinocentrism was influenced and changed by neighbor tribes and countries during the Wei, Jin, Nan, and Bei period, and examining the regional dynamics of East Asia that were newly established by the transformed Sinocentrism. To this end, the following was discussed. First, how Sinocentrism was established among the Wu Hu (五胡),or the “Five Barbaric Tribes,” was examined in order to understand the underlying spirit. This examination found that the Sinocentrism expressed by rulers of the barbarians was not only transformed by themselves, but was also influenced by Han people who had long lived and mixed together with neighboring tribes and had changed their view of the tribes. Second, how Sinocentrism evolved into specific policies or measures by the tribal rulers was examined. The monarchs established a “Principle of Kingdom Alternation,” in opposition to the “Five Virtue Principle,” so that they became legitimate kingdoms, and adopted the titles of “Emperor” and “King” to strengthen their authority. In addition,they called themselves “Center” (中華) while looking down upon other tribes, and established military offices to oversee other tribes. Building upon such a series of policies and measures, all the monarchs believed that they had established the central, legitimate kingdom and the tribute and investiture system centering on themselves, resulting in multi-centered and multi-layered regional dynamics. The transformation of Sinocentrism by the rulers and the accompanying change in regional dynamics created new centers and peripheries, which helped spread Sinocentrism. This is demonstrated by Koguryo’s and Japan’s independent titles for the monarch and their unique views of the world. The two countries separately and independently created their own systems regarding the regional dynamics, but were still included in the tribute and investiture system of China. This was because adopting Chinese titles and systems represented their international standing within East Asia and helped domestically reinforce the respective ruler’s power. Accordingly,although the Sinocentric tribute and investiture system cannot explain the actual ruling-ruled relations, it is clear that the system served as a mechanism to maintain the order within the regional dynamics and to express the ritual ranks of each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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