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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 김성일과 일본 유학 - 학봉의 군자유(君子儒) 풍모가 후지와라 세이카에게 끼쳤을 영향에 대하여 -

Hakbong Kim Seongil and Japanese Confucianism - focused on his influence on Fujiwara Seika with his air of magnanimity as a Confucian scho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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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은 1590년 통신부사(通信副使)로 일본에 갔다가 이듬 해 돌아와 일본의 국정을 보고하였다. 그 해 7월, 조선 통신사 일행이 일본 교토(京都) 대덕사(大德寺) 소겐인(総見院)에 묵을 때 쇼코쿠지(相國寺) 승려였던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 1561-1619)가 찾아가 정사 황윤길(黄允吉), 부사 학봉(김성일), 서장관 허성(許筬) 등에게 부채와 자작 한시를 증정하였다. 당시까지 일본 유학은 오산(五山, 고잔)이라는 폐쇄된 세계에서 내전(內典, 불전)과의 겸수(兼修)를 통해 연구되거나 조정에서 공인하는 공가(公家, 구게)가 가학으로서 세습하여 왔다. 행장과 문집을 통해 볼 때 후지와라 세이카는 1590년 대덕사에서 조선 통신사 일행과 시를 주고받은 이듬해인 1591년(일본 天正 9년), 도요토미 히데쓰구(豊臣秀次)가 상국사에서 오산 승려를 모아 제시연구(題詩聯句)를 행하는 모임에 단 한 번 출석하고는 이후 출석하지 않았다. 후지와라 세이카의 사상적 전회는 일본지성사에서 매우 특기할 만한 사건이며, 그 전회는 바로 대덕사의 만남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다. 당시 상호간에 지은 시가 현재 21수나 확인되는 것을 보면 이때의 만남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상당히 의미가 있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후지와라 세이카의 문집은 두 종류이다. 그런데 초기 목판본에는 조선 통신사 일행의 시만 수록하였고, 후기 필사본 문집에는 세이카의 시들만 실었다. 이 가운데 학봉이 세이카에게 준 시는 2수가 확인된다. 필사본 『성와문집』의 권4에 수록된 「상인 종순이란 사람이 상국사에서부터 시를 소매에 넣고 내방하였기에 그 시에 차운하여 감사드린다[有上人宗蕣自相國寺袖詩來訪次其韻謝之]」는 황윤길(黃允吉)의 시이다. 일본 학자 아베 요시오(阿部吉雄)가 이 시를 학봉의 시로 본 것은 잘못이다. 그것은 필사본 『성와선생문집』 권6 수록의 칠언율시 「송당에 올리다[贈松堂]」와 운자가 같은 점에서 알 수가 있다. 세이카는 시를 통해 학봉 등 1590년의 통신사 일행과 교유하려고 하였다. 학봉은 자신을 낮추면서까지 성심으로 차운을 하였고, 세이카를 같은 인간 본성을 지니고 같은 지향을 지닌 한 인간으로서 대해 주었다. 『학봉집』에 「뜰의 소나무를 읊어서 종순에게 주다[詠庭松贈宗蕣]」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한 수의 창화시에서 학봉은, 낯선 나라의 것이라도 소나무로서의 물성은 같으며, 송뢰(松籟)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자연의 무현금(無絃琴) 소리를 공감할 수 있다고 하였다. 한 인물의 풍모는 이념의 직접적 전수보다도 훨씬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늘 생각해야 할 것이다. 조선에서 유학은 이념을 확인하는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서만 유지된 것이 아니다. 현실정치나 지역공동체 삶에서 예치(禮治) 이념을 실현하고 재도문장(載道文章)․경국문장(經國文章)․화국문장(華國文章)을 통해 문치를 구현하는 유학자에 의해 지탱되었다. 학봉과 그 일행이 교토 대덕사에서 젊은 일본의 지식인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었던 것은 그 유학자적 인격이었을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Abstract

Hakbong Kim Seongil(金誠一, 1538-1593) went to Japan as a vice-envoy[通信副使] in 1590, reported back on Japanese administration in the following year. In July 1590, a monk of Kyoto[京都] Shokokuji[相國寺] Fujiwara Seika(藤原惺窩, 1561-1619) came to Taitokuji[大德寺] Sogenin[総見院] in order to present fans and his own poems to Joseon ambassadorial party - a chief-envoy Hwang Yungil[黄允吉], a vice-envoy Kim Seongil, a secretary Heo Seong[許筬], who were staying in that temple. Until then, Japanese Confucianism had been researched in an exclusive group of Gozan[五山], combined with research on Buddhist scriptures[內典], or passed down in officially approved Kuge[公家]s as a hereditary learning. According to Fujiwara Seika’s memoir and a collection of his works, in 1591, which is right after Fujiwara Seika exchanged poems with Joseon ambassadorial party, he attended a poetry gathering of Gozan monks in Shokokuji hosted by Toyotomi Hidetsugu[豊臣秀次] only once, and stopped participating soon afterwards. Fujiwara Seika’s change of thought is a noteworthy event in the Japanese intellectual history, and its momentum was triggered by the meeting in Taitokuji. Regarding the fact that mutually composed poems are run into 21 pieces, the meeting was quite significant rather than accidental. The collection of Fujiwara Seika’s works came out in two versions. The early woodblock-printed version only contains poems of Joseon party, while later hand-written manuscript only contains poems of Fujiwara Seika. Among those works, two pieces of poem from Kim Seongil can be found. A poem titled ‘A monk named Jongsun from Sangguksa(Shokokuji) came with poems in his sleeve, so I reply to it in the same rhyme as a token of gratitude.[有上人宗蕣自相國寺袖詩來訪次其韻謝之]’ in the manuscript <The Collection of Seika[惺窩文集]> is written by Hwang Yungil, not Kim Seongil. A Japanese scholar Abe Yoshio[阿部吉雄] misidentified it as a poem of Kim Seongil. It is evident that the poem has same rhyme with ‘Dedicate to Sondang[贈松堂]’ in <The Collection of Seika> sixth volume. Fujiwara Seika wanted to interact with Joseon ambassadorial party of year 1590 through poetry. Kim Seongil humbly acceded to him, treating him as a person with the same human nature and the same orientation. In a replying poem ‘Recite a pine tree in a garden, to present to Jongsun[詠庭松贈宗蕣]’ in <The Collection of Hakbong[鶴峯集]>, Kim Seongil expressed that even a foreign pine tree has a same natere as a pine tree, and every person who loves the sound of wind in a pinewood treetop[松籟] can sympathize the sound of nature played by a lyra with no string. It is necessary to keep in mind that a person’s presence can be much more influential than a direct passing on of ideology. In Joseon, Confucianism was not solely maintained by individuals and groups who confirmed ideology. It was sustained by Confucianists who ruled by rites in the politics and community, realizing civil administration with administrative literature. The reason that Kim Seongil and his companions could influence a young Japanese intellect in Kyoto Taitokuji would be his Confucian virt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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