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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천사의 역사와 사상

History and Thoughts of Heungcheo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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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미술

초록

흥천사는 조계종의 본사라는 위상에 걸맞게 흥천사에는 太祖의 아버지인 桓祖 의 초상을 모신 啓聖殿이 설치되었으며, 부처의 頭骨舍利와 대장경, 보물, 태조의 유물을 안치한 사리전이 건립되었다. 흥천사와 사리전은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듯 장안의 명소가 된 흥천사는 조선의 대표성을 갖는 공식사찰로서 사신들의 宿所, 慰冥, 禮佛 등의 접대기능을 가진 外交的 무대로서의 役割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또한, 태조의 死後, 정릉이 도성 밖 沙乙閑으로 천장 된 뒤에도 흥천사는 도성 내에 남아 핵심 사찰로서의 위상을 지켜나갔다. 강력한 억불책을 시행하였던 태종·세종대에 사찰과 불교종파를 축소·통합 하는 과정에서도 흥천사는 제외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례적으로 선종도회소로 지정되어 모든 宗務를 집행하는 기관으로 자리하게 된다. 도회소의 운영과정에서도 僧科試驗의 주관, 住持推鷹, 末寺管理 등의 역할을 담당하며 교종보다 우위를 점하는 가운데 국가의 통제와 보호 아래 교단관리체제를 구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국가 제도권 내에서 불교의 위상을 보존하고 승려의 권익을 옹호하여 불교교단에 활력을 불어넣는 한편, 불교계의 견해를 정책에 반영함으로써 불교의 명맥을 회복·유지시키는 데 막중한 역할을 하였다. 지리적으로 도성 내 왕궁 옆에 자리한 흥천사에서는 국왕과 왕실의 안녕과 國利民福을 기원하는 왕실 불사나 자연재난을 예방하기 위한 소재도량(消災道場)의 성격을 띄는 불교의례가 빈번하게 실행되었다. 당초 흥천사 조성의 명분이 신덕왕후의 능침사찰이었던 만큼 왕실의 死後 儀禮와 관련한 喪·祭禮가 거행되었다. 흥천사는 조계종의 수사찰로서 조계선풍을 계승했으며, 상총, 신미 등의 승려를 통하여 조계선풍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상적 역할은 조계종 수사찰로서의 행정적 기능적 부분을 넘어 조선불교에서 선종유지 및 발전에 이바지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행호와 같은 천태종계를 아우르면서 사격을 높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흥천사는 조선전기 왕실과 불교와의 관련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Abstract

In Heungcheonsa, corresponding to the status of the main temple of the Jogye Order, there were Gyeseongjeon in which a portrait of Hwanjo, the father of Taejo was enshrined, and the sarira edifice that enshrined the head skull sarira of Buddha, the Tripitaka, treasures, and the remains of Taejo. Heungcheonsa and the sarira edifice are believed to have been splendid and magnificent buildings with an enormous scale. As such, Heungcheonsa became the official temple of Joseon and served as a diplomatic stage with hospitality functions such as envoys’ quarters, Wimyeong, and worshiping ceremony, etc. Also, after Taejo's death, after Jeongreung was moved out of the city to Saeulhan, Heungcheonsa remained in the city to maintain its status as a key temple. Heungcheonsa was not only excluded from the process of reducing/integrating Buddhist temples and Buddhist sects at Taejong and Sejong era, which had a strong anti‐Buddhism policy but also it was exceptionally designated as a Zen Do-Hyoe place(都會所), and served as an agency for all order official duties. During the operation of Do-Hyoe place(都會所), it was responsible for the management of monk examinations, acknowledgment of Juji and management of subordinate temples. It can be seen that it established a denomination management system under the control and protection of the state, with an edge over the Gyojong order. In addition, while preserving the status of Buddhism in the national institutional sphere and advocating the interests of monks, and incorporating Buddhist views into policy, it played an important role in restoring and maintaining Buddhism. In Heungcheonsa, located geographically next to the royal palace in the city, the royal temple services wishing the well‐being of the king and the royal family, the national interests and the happiness of the people, or the Sojaedoryang (Buddhist ritual to pray for blessings and prevent diseases and Buddhist rituals that characterize natural disasters) were frequently practic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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