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祖代 凱旋 儀禮의 整備와 그 意義
The Organization of the Ritual for Triumphant troops and its meanings during the Reign of King Yeongjo
0
조회
0
다운로드
7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이 글에서 정리한 선노포 의례는 전쟁의 승리를 만방에 알리기 위해 비단 깃발(露布)에 승리를 고하는 글을 써서 알리는 것으로, 개선(凱旋)을 의미하는 의례이다. 그리고 선노포 의례와 함께 행해지는 헌괵 의례는 전투 과정에서 죽인 적의 수급이나 왼쪽 귀를 왕에게 바치는 의례이다. 선노포․헌괵 의례는 오례[吉․凶․賓․軍․嘉] 가운데 군례에 속해 있으며, 영조 연간에 『국조속오례의』가 편찬될 때 정식으로 국가 의례에 포함되었다. 이 글에서는 조선의 선노포․헌괵 의례가 어떤 과정을 거쳐 정립되었으며, 어떤 형식을 갖추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조선 초기에 『세종실록』 「오례」와 『국조오례의』가 정비될 당시 군례는 사례(射禮)를 중심으로 정비되었고, 출전과 개선에 관련된 의례는 정비되지 않았다. 기존 연구에서는 이러한 조선 군례의 특징에 대해 밖으로는 명을 의식하고, 안으로는 장기에 걸친 평화로운 시대를 맞이했던 당대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 파악하였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외적으로는 임진 전쟁(1592)과 정묘․병자호란(1627․1636)을 거쳤고, 내적으로는 이괄의 난(1624)과 무신란(1728)이라는 대규모의 반란을 경험하였다. 뿐만 아니라 명이 멸망하고 청이 건국되면서 국제적 정세도 변화하였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전쟁․반란의 진압과 승리를 기념하는 선노포 의례가 정비되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당대의 분위기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조선의 선노포․헌괵 의례의 성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외부의 침입이 아닌 내부의 반란이었다. 조선에서 형식을 갖춘 선노포 의례와 헌괵 의례가 처음 행해진 것은 인조 2년(1624)에 발생했던 이괄의 난이 진압되었던 때였다. 하지만 인조 연간에 행해졌던 선노포 의례와 헌괵 의례는 당대에 국가 의례로 정식 편입되지는 않았다. 선노포․헌괵 의례는 다른 의례처럼 길일을 정하고 준비과정을 거쳐 행하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행해졌기에 정밀한 절차의 논의 과정 없이 급하게 시행되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국조속오례의』에 수록되어 있는 선노포․헌괵 의례의 의주 또한 영조 연간에 무신란 진압 직후 실제 사용했던 것이 아니라 『국조속오례의』 정비 단계에서 『대당개원례』와 『대명집례』를 바탕으로 개수하여 수록한 것이다. 영조 연간에 선노포․헌괵 의례가 정식 의주로 정비되어 국가 의례서에 수록되었다는 사실은 단순한 조선 군례 증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큰 반란을 두 번이나 경험하면서 임시방편적 차원에서 급하게 시행되었던 의례가 정식으로 수록되었다는 것은 사회적인 분위기의 변화가 국가 의례의 증설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반란을 진압하고 ‘의례’라는 형식을 통해 괴수의 말로를 만방에 보임으로서 왕의 위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 했던 면모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출정과 개선 의례는 천자국의 의례임을 인식하여 의례서에 수록하지 않았던 조선 초기와는 달리 과감하게 승전과 개선 의례를 수록했다는 사실은 조선이 국제적인 천자․제후국 차원의 관계를 더 이상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Abstract
The Seonropo(宣露布) ritual was performed when the king’s army won and returned from the battle field to notify the people of their victory. To perform this ritual, they spread a wide silk flag, which looked like a scroll, and wrote down how they defeated the enemy. Additionally, the Hunkwek(獻馘) ritual, which was to offer an enemy’s cut head or ear to the king, was also performed. The Seonropo and Hunkwek rituals were included in the military ritual(軍禮). This ritual was included in 『Gukjo-Sokoryeŭi(國朝續五禮儀)』 when it was published during the king Yeongjo period. This research identifies how the Seonropo and Hunkwek rituals were established in the Chosŏn period. In the early Chosŏn period, when the 『Gukjo-oryeŭi(國朝五禮儀)』 was organized, military ritual was focused on an archery ceremony(大射禮) and did not involve an organized ritual for war or triumphant troops. In existing related research, this character of Chosŏn’s military ritual was the cause of conscious of Ming and the long duration of peace. However, in the later Chosŏn period, the era experienced not only the Imjin japanese War and Jungmyo·Byungja Invasion, but also suffered Lee Gwal(李适)’s Revolt and the Musin Revolt(戊申亂). Additionally, the Ming dynasty fell and the Ching dynasty was founded. This atmosphere influenced organized military rituals in the later Chosŏn period.
참고문헌 (47)
- "二十五史通鑑" (1997), 團結出版社
- "漢文大系 12" (1972), 富山房
- "高麗史", ~
- "世宗實錄", ~
- "宣祖實錄", ~
- "仁祖實錄", ~
- "英祖實錄", ~
- "備邊司謄錄", ~
- "承政院日記", ~
- "大唐開元禮" (2000), 民族出版社
- "明集禮" (1977), 商務印書館
- "國朝五禮儀", ~
- "國朝續五禮儀", ~
- "春官通考", ~
- "國朝五禮通編", ~
- "儀註謄錄", ~
- 李廷龜, "月沙集"
- 강신엽, "조선시대 대사례의 시행과 그 운영: 大射禮義軌를 중심으로", 朝鮮時代史學報, 16 (2001)
- 고수연, "英祖代 戊申亂 硏究의 現況과 課題", 역사와 담론, (39), pp.177~212 (2004), 호서사학회
- 고수연, "淸州地域 英祖 戊申亂의 動向", 조선시대사학보, (42), pp.159~189 (2007), 조선시대사학회
- 김경태, "임진왜란 직후,대일강화정책의 성격연구", 한국사연구, (138), pp.39~74 (2007), 한국사연구회
- 김문식, "『국조오례통편(國朝五禮通編)』의 자료적 특징", 한국문화연구, 12, pp.65~106 (2007), 한국문화연구원
- 김문식, "조선시대 國家典禮書의 편찬 양상", 藏書閣, (21), pp.79~104 (2009), 한국학중앙연구원
- 김백철, "조선후기 영조대 탕평 정치의 이념과 周禮", 韓國史論, 51 (2005)
- 김지영, "18세기 후반 國家典禮의 정비와 春官通考", 韓國學報, 30 (2004)
- 노영구, "조선후기 漢城에서의 閱武 시행과 그 의미 -大閱 사례를 중심으로-", 서울학연구, (32), pp.1~34 (2008), 서울학연구소
- 박가영, "국조오례의에 나타난 군례 복식", 아시아민족조형학보, 12 (2013)
- 박종배, "조선시대 成均館 大射禮의 시행과 그 의의", 교육사학연구, 13 (2003)
- 백기인, "조선조 국왕의 열병 형태와 그 성격", 한국정치외교사논총, 27(2), pp.33~62 (2006), 한국정치외교사학회
- 변주승, "18세기 전라도 지역 무신란(戊申亂)의 전개과정 -「무신역옥추안(戊申逆獄推案)」을 중심으로-", 인문과학연구, (39), pp.359~393 (2013), 인문과학연구소
- 소순규, "조선초 大閱儀의 의례 구조와 정치적 의미", 史叢(사총), (75), pp.43~81 (2012), 역사연구소
- 송지원, "영조대 儀禮 정비와 『國朝續五禮儀』 편찬", 한국문화, (50), pp.201~223 (2010),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송지원, "정조대 의례 정비와 ..春官通考.. 편찬", 규장각, (38), pp.97~152 (2011),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신병주, "英祖代 大射禮의 실시와 大射禮儀軌", 韓國學報, 28 (2002)
- 오갑균, "분무공신에 대한 분석적 연구", 청주교육대학 논문집, 21 (1984)
- 이범직, "한국중세 예사상 연구" (1991), 일조각
- 이숙희, "조선조 군례에 사용한 음악의 종류와 성격", 한국음악연구, 32, pp.171~198 (2002), 한국국악학회
- 이영춘, "조선후기 왕위계승 연구" (1998), 집문당
- 이왕무, "조선전기 軍禮의 정비와 射禮의 의례화", 동양고전연구, (54), pp.319~348 (2014), 동양고전학회
- 정다함, "征伐이라는 戰爭", 征伐이라는 祭祀 - 世宗代 己亥年 “東征”과 婆猪江 “野人征伐”을 중심으로 -, 2013, pp.(52), 271~306[DOI]
- 정만조, "조선시대 정치사의 재조명" (2003), 태학사
- 정석종, "조선후기 정치와 사상" (1995), 한길사
- 정재훈, "조선시대 국왕의례에 대한 연구 – 강무(講武)를 중심으로 –", 한국사상과 문화, (50), pp.225~248 (2009), 한국사상문화학회
- 조윤선, "英祖 6년(庚戌年) 謀叛 사건의 내용과 그 성격", 조선시대사학보, (42), pp.191~236 (2007), 조선시대사학회
- 지두환, "國朝五禮儀 編纂過程(Ⅰ)-吉禮 宗廟․社稷祭儀를 中心으로-", 역사와 경계, 9 (1985)
- 탁신희, "『국조속오례의』의 편찬과 왕권의 위상", 석사, 국사학, pp.2009
- 허태용, "1728년 戊申亂의 진압과 『戡亂錄』의 편찬", 한국사연구, (166), pp.107~141 (2014), 한국사연구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