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修信使·朝士視察團 기록을 통해 본高宗의 東道西器 정책과 그 한계

Progress of the policy based on Gojong's DongDo-SeoGi(東道西器) and Its limitations as seen through the records of Susinsa,Official Observation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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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세기 후반 일본에 파견된 修信使․朝士視察團의 기록을 통해 고종이 추진한 대내외 정책의 추진 과정을 살피고 그 역사적 위상을 고찰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수신사․조사시찰단은 고종이 친정을 단행하고 강화도조약을 통해 일본과 새로운 외교관계를 수립한 뒤, 모두 6차례에 걸쳐 파견한 공식 비공식 대일사절이다. 고종은 이 사절을 통해 당면한 대내외 정세에 대응하는 정책을 새롭게 추진하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는 일본은 물론 서양 각국과 수교를 통한 대외통상과 서양 문물 도입정책이다. 고종은 재위 초 강학기부터 東道西器論을 받아들이는데, 燕行을 통해 들어온 서적과 정보가 기본 자료의 역할을 했으나, 무엇보다 강학관 朴珪壽의 영향이 컸다. 10여 년의 강학기를 거쳐 친정을 단행한 후 고종은 내외정세를 안정시키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방도로 동도서기론에 바탕을 둔 정책을 추진한다. 이를 추진하기 위한 사전 견문과 탐색의 임무를 띤 것이 바로 수신사․조사시찰단이다. 그런데 이들의 기록에는 고종의 정책이 온전하게 추진되기에는 여러 난관이 많았음을 보여주는 여러 정황이 산재해 있다. 국왕이 부여한 명을 충실히 받들고 일본을 다녀온 이들도 있지만, 대개 왕이 추진하는 정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에서 벗어난 생각을 품은 인사들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수신사․조사시찰단의 기록을 통해 드러난 고종이 추진한 정책의 문제와 한계는 다음과 같다. 우선 추진세력이 상대적으로 약했으며, 치밀한 추진계획과 대응 논리를 마련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실정에서 청과 일본, 서양 각국의 거센 침략이 전개되는 정세에서 그 실효성에 의문이 컸다. 무엇보다 동도와 서기가 병립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한 동도서기의 논리적 결함은 고종의 정책이 성공할 가능성을 현저히 감소케 했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article was to examine the process of promoting internal and external policies promoted by Gojong through the records of the Susinsa, Official Observation Group dispatched to Japan during the reign, and to examine its historical status based on this. Susinsa, Official Observation Group were envoys sent to Japan after King Gojong directly exercised his political power and established new diplomatic relations with Japan through Korea–Japan Treaty of 1876. This contains the direction of the policy to be promoted by Gojong, which is a policy based on DongDo-SeoGi(東道西器, the theory of Eastern moral and western material). From the early learning period of his reign, King Gojong accepted the story of the book. Books and information through diplomatic envoys to Beijing served as basic data, and Park Gyu-su(朴珪壽) had a great influence. After 10 years of learning, he began to exercise his political power directly, and then Gojong pursued a policy based on DongDo-SeoGi(東道西器) as a way to stabilize the internal and external situation and strengthen the kingship. Susinsa, Official Observation Group carried out the task of preliminary investigation to promote this. However, there are scattered circumstances in their records showing that it was difficult to fully realize King Gojong's intentions. There are some who have been to Japan faithfully following the order given by the king, but it is mostly because people who do not understand the king's policies properly or who have thoughts outside of it are dominated. The problems and limitations of the policy based on DongDo-SeoGi(東道西器) revealed through the records of Susinsa, Official Observation Group are as follows. First of all, the driving force was relatively weak, and a detailed plan and response logic could not be prepared. In this situation, the effectiveness of the foreign invasion was unfolding. Above all, the logical flaws of the DongDo-SeoGi(東道西器) on the premise that Eastern moral and western material could coexist significantly reduced the chances of the success of Gojong's poli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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