佔畢齋 金宗直의 內面世界와 初期 士林派
Kim Jong-Jik's Mental Conflicts and the Early-Sarim(士林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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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5세기 후반은 국가적 법제와 문물이 완비되면서도 세조의 즉위와 이에 편승한 훈구공신의 권력독점과 전횡으로 조선왕조의 이상이 심각하게 훼손된 시기였다. 이때 「弔義帝文」은 세조의 즉위에 따른 역사의 상흔을 치유하고자 한 정치세력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의리명분론을 대변하는 의미를 지녔다. 그러나 정작 「조의제문」을 지은 金宗直의 사환은 평탄하고 일상은 안온하였다. 당대 일급 문사로서 세조와 그의 공신을 적극 찬양하기도 하였으며 지방관으로서 庶政을 쇄신하고 많은 제자를 양성하는 등의 치적을 올렸다. 그러나 내면의 심리적 울분과 정체성 갈등은 심각하였다. 김종직이 적극적 현실참여의 길로 선회한 것은 모친상을 지낸 다음이었다. 이 과정에서 金宏弼 등의 일부 제자와 出處論 문제로 갈등이 있었고, 정치쇄신과는 거리를 두었던 때문에 후진의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김종직은 국가 학술 및 편찬사업을 통하여 훈구파 일색의 學文權力을 해체하는 역할을 자임하였다. 사림파의 정치적, 학술적 위상의 강화에 기여한 것이다. 金馹孫 등이 세조의 치세를 재평가하는 역사운동에 적극 나설 수 있었던 것도 사림파의 위상 제고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는데, 이때 「조의제문」을 한 시대의 역사적 상흔을 웅변한 불멸의 서사로 재평가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김종직은 세조의 즉위와 그에 따른 공신의 체제에 머물렀음에도 그들의 두터운 장벽을 허물기 위한 도전의 단초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시대의 변화와 사림의 의식전환을 이끌었던 경계인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In the late 15th century, legal and institutional systems were completely organized, but the ideals of Joseon dynasty were seriously damaged because of King Sejo(世祖)'s enthronement and political monopoly of Hungu meritorious retainers. At this time, new political forces suggested the damage caused by king's enthronement to be managed and the 「Joeuijemun(弔義帝文)」 was a model of such change in consciousness. However, Kim, Jong-Jik who wrote the 「Joeuijemun」 could not but take a job in the royal court and admire the regime by King Sejo. Internal conflicts were serious. Poetry in its early period such as 「Kaheungcham(可興站)」 and 「Sabangji(舍方知)」 was representation of such conflicts. And though he attempted to reform officialdom as a local officer while teaching a number of students, his psychological conflicts and resentment were not resolved. Kim, Jong-Jik turned his attention to practical things after he lost his mother in spite of Kim, Gweng-Pil's appeasement. However, though some of his students criticized him, he stayed away from a political reform. Instead, he participated in national academic projects to permeate into academic power of Hungu-group(勳舊派) and greatly contributed to reinforcement of political and academic positions of Sarim-group(士林派). Based on reinforced academic capability, Sarim fiercely confronted against Hungu and led a campaign of history to reevaluate the regime of King Sejo. At this time, the 「Joeuijemun」 was reevaluated as an everlasting narrative that speaks for historical damage of one period. In this aspect, this study suggests that Kim, Jong-Jik's life was a challenge to break a thick barrier of Hungu meritorious retainers though he belonged to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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