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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지방 3~5세기 목곽 구조 복원안들의 종합토론

A virtual comprehensive discussion of recent reconstructions for the structure of wooden chamber tomb in Yeongnam region of the 3-5 centuries AD based on iron cramps’ distributional patter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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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지방의 3~5세기 목곽묘 및 석곽묘의 목곽 구조에 대해 지난 10년간 꺾쇠들의 분포를 근거로 한 세 가지 복원안이 제시되었다. 첫 번째 복원안은 꺾쇠들이 외곽이 아닌 내곽의 결구에 쓰였음을 나타낸다는 설(내곽용설)이다. 두 번째 복원안은 꺾쇠들이 내곽이 아니라 목관의 존재를 나타낸다는 설(목관용설)이다. 세 번째 복원안은 꺾쇠들이 목곽의 蓋板들을 서로 연결하고 또 그 벽에 결구했음을 나타낸다는 설(개판연결용설)이다. 세 가지 복원안은 이런 결론만을 보면 서로 완전히 배치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통합의 여지가 없지 않다. 그런 통합을 위해 마치 학술회의의 종합토론처럼 상호간의 쟁점을 부각시켜 보면 다음과 같다. 내곽용설은 기왕에 외곽 벽의 결구용으로 오해한 견해를 바로잡음으로써 새로운 논의의 토대를 마련했지만 특히 凹狀의 礫石床에 목관이 놓였을 가능성을 배제한 점이 약점이다. 목관용설은 그간 간과된 목곽 내 목관의 존재를 부각시켰지만 그것이 반드시 꺾쇠를 사용한 구조임을 논증하지 못한 약점이 있다. 개판연결용설은 장변 출토 꺾쇠들은 외곽의 개판들을 연결한 역할을, 단변 출토 꺾쇠들은 그 개판을 목곽 벽에 고정한 역할을 했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였다. 또 역석상 위 점토 도포를 지적함으로써 목관용설이 내곽용설에 대해 제기한 내곽 설치의 역석상 불안정성 문제를 해소해주었다. 세 설은 모두 복천동고분군 목곽 자료를 토대로 하였는데 특히 개판연결용설이 든 구체적 사례들을 재검토해보면 무엇보다 꺾쇠의 출토 정형성이 크게 떨어지는 문제점이 있다. 특히 그런 해석의 출발점이 된 11호분 석곽묘 내 목곽의 꺾쇠들은 그 벽 위에 위치했던 것인데 이를 외곽 벽보다 훨씬 안쪽에서 출토되는 목곽묘의 꺾쇠들에 그대로 대입하면 개판의 가운데에 가까운 위치에서 그것들을 상호 연결한 셈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이는 오히려 그런 지점에 목곽 벽을 둔 내곽이 있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암시한다. 이런 재검토를 토대로 세 설을 통합하면 역석 위에 점토를 도포한 凹床 또는 平床에 안치된, 꺾쇠를 사용하지 않는 구조의 목관을 보호하기 위해 개판들을 꺾쇠로써 서로 연결하고 벽에 고정한 내곽이 사용되었으며 이를 둘러싼 외곽의 개판은 꺾쇠 없이 덮은 구조였다는 복원안이 도출된다. 이 새로운 내곽용설을 고령 지산동 73호분 주곽 목곽과 경주 구어리 1, 2호 목곽에 적용해 검정해보았다. 전자에 대해서는 보고서의 내용을 재검토해 목관용설의 後稿가 상정한 바와 달리 외곽 안에 240여개의 꺾쇠와 관정을 사용한 목관 하나가 아니라 내곽과 목관 그리고 부장용 상자 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후자에서는 외곽 안에 1호묘는 凹床에, 2호묘는 平床에 놓인 목관을 덮은 내곽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와 더불어 외곽 벽을 따라 확인되는 네 개의 기둥 구멍은 외곽 보강용, 와곽 설치용, 하관용 풍비 기둥용이라는 의견들이 있으나 한 가지로 단정하기 어려우며 그 내부 토층을 조사한 복천동 38호분의 경우에는 외곽 보강용이 분명하다.

Abstract

For the inner structure of wooden chamber tomb in Yeongnam region of the 3-5 centuries AD, three hypothetical reconstructions based on the iron cramps' distributional patterns on the chamber floor have been proposed during the last ten years. According to the earliest reconstruction, there was an another inner wooden chamber without a coffin within it. The second one points to the existence of a coffin hooked up with iron cramps, but denies an inner wooden chamber around it. The last and third reconstruction agrees on the existence of a coffin, but denies the possibility of existence of any inner structure using iron cramps. Instead, it proposes to allocate to those iron cramps the function of connecting and fixing the covering boards of the outer chamber. After the strong and weak points of reasoning of apparently contradicting three reconstructions having been analysed, an integrated new hypothesis is proposed, which presumes that an inner chamber covered with boards connected and fixed with iron cramps had a coffin in it and they were surrounded with an outer chamber without those cramps. This new integrated reconstruction together with other three competing ones, especially the third reconstruction were tested against the original data of Bokcheon-dong Tombs site on which these had been based. As a result, while the third reconstruction revealed an inconsistent methodology and contradictions among data applications, the new reconstruction fitted well into the data. Furthermore, this reconstruction was also tested against two other data from Jisan-dong Tumulus no.73 at Goryeong and Gueo-ri wooden chamber tombs at Gyeongju respectively. These tests proved to be successful, thereby strengthening the persuasive power of the new reconstr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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