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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봉암사와 희양산파의 추이

The Transition of Bongam Temple and Heuiyangsan Sect in Kor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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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불교학

초록

봉암사의 창건과 주석 고승의 활동을 통해 고려시기 희양산파의 추이를 정리하고 구산선문 존재 양태를 조명하고자 한다. 지역 세력인 심충과 희필 등이 단월이 되어, 도헌을 초청하고 봉암사를 열었다. 신라 말 그들은 이 지역의 혼돈과 치안 부재 상황을 해결하고 북종선풍을 정착시켰다. 고려 초에는 태조의 지원을 받아 긍양이 면모를 일신하고 대장경연구를 진행하였다. 태조진전이 설치된 중요 사원으로서, 광종은 선교일치적인 긍양의 종풍이 여기에서 계속되도록 배려하고 황제 칙명으로 부동사원을 삼았다. 고려 중기에는 봉암사에서 출가한 승형이 원진국사로 추봉되고, 희양산파의 선풍을 알렸다. 비문 첫머리와 비명에도 언급되었듯이, 승형은 선교를 쌍홍한 유일한 고승으로, 능엄선을 깊이 이해하고 홍통하려고 하였다. 그의 선풍은 긍양의 선교일치적 선풍과도 상통한다. 따라서 봉암사를 통해서 긍양의 선풍과 희양산파가 존속하였다고 할 수 있다. 고려 말기에는 선종계의 영수로서 승정을 장악한 보우가 세 차례나 주석하였다. 그의 사리탑이 봉암사에 석종으로 남아 있다. 구산선파의 통합을 추진한 보우가 희양산파의 중심 사원인 봉암사를 장악하고 가지산파에 흡수시킨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Abstract

Through the establishment of Bongam Temple and the workings of its head monks, I study the transition of Heui yangsan Sect(曦陽山派) and the figures of nine Mountain- Zen Sects(九山禪派). As civil supporters(檀越) and local power elites, Sim choong(心忠) and Heuipl(熙弼) invited Dohun(道憲) and opened Bongam Temple. They resolved the provincial unsafety and chaos in late Shila. By the Founder`s patronage in early Koryo, Geungyang(兢讓) rebuilt the temple and explored Buddhist Sutras in it. As the core monastery which had the Dynasty Founder`s portrait, Kwangjong made Bongam Temple the unchanged-position-temple(不動寺院) and kept Geungyang`s Zen-Kyo-fusion in it by the Royal edict. In the middle of Koryo, Seunghyung(承逈) which left home into Bongamsa propagated Heuiyangsan Sect and was honored of Wonjinkooksa(圓眞國師) posthumously. In the view of the epitaph, he was the only priest who developed both Zen and Kyo. He understood Neungeum-Zen(楞嚴禪) deeply and tried to spread. His Zen color was corresponded to Geungyang`s idea. So it can be said that the Geungyang`s thinking and Heuiyangsan Sect were maintained in Bongam Temple. In the end of the Dynasty, Bowoo(普愚) who was the leader of Zen denomination and held the monk-administration had Bongam Temple`s captain monk three times. As the stone bell his sarira stupa remains here. He tried to unify 9 Mountain-Zen Sects. He dominated the temple which was the key seminary of Heuiyangsan Sect and absorbed it into Kajisan Sect(迦智山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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