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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말청초 ‘전례논쟁'의 선교사적 이해

明末清初“礼仪之争”宣教史之理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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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하게 변방문화로 시작된 중국의 기독교는 애초에 입고 들어온 문화를 주장할 수 없었고 주저 없이 중국문화의 옷으로 갈아입고 등장하였다. 唐代와 元代의 기독교는 도불(道佛)의 용어를 대폭 수용하여 중국화를 꾀하였다. 반면에 명말청초 시기의 천주교는 이전 시기와 달리 나름대로 자기전통을 의식하면서 중국문화를 도입한 것이 특징이었다. 그리하여 예수신앙과 유학간의 의식적인 접촉 곧 ‘대화’(耶儒對話)가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복음과 유교사상과의 접촉면 즉 유사성이 추구되었고, 나아가서 ‘보유’(補儒), ‘초유’(超儒) 등의 개념에서 보이듯 ‘남경교안' 시기 강남지역의 사회개혁사상으로 발전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조선에 처음 천주교 서적이 소개된 당시의 정황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리치가 속했던 예수회 내부의 보수 인사, 또는 도미니칸, 파리외방전도회 등 후발주자들의 ‘배타적인 문화관’이 초기 예수회 선교사들의 선교정책에 도전하면서 ‘전례논쟁’이 발생하였다. 그와 같은 배경은, 유럽에서 예수회가 시작될 때 이미 배태된 것이었다. 스페인 살라만카대학의 제2토미즘은 남미에서의 선교경험을 바탕으로 선교지 현지의 토착문화와 사상을 중시한 것인데, 바네즈 등 도미니칸의 소위 칼빈주의에 의해 크게 도전을 받았던 것이다. ‘전례논쟁’은 그러한 논쟁의 연속선상에 있었다. 그밖에 유럽 열강 간에 그리고 선교회 간의 경쟁, 중서간의 갈등이 그러한 갈등을 가속화시켰다. 문화적응 선교와 문화비판적 선교 사이의 논쟁은 선교적 시야를 풍성하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공격적 분위기는 ‘전례논쟁’을 거치면서 청조의 관용적 종교정책을 중단시키고 말았다. 기독교 선교역사에서 복음이 문화와 만나는 관계는 크게 적응과 변형의 두 형태로 제시된다. 이것은 문화에 대해 복음이 갖는 이중적 과제를 의미한다. 복음은 한 문화권에서 문화순응적인 문화화의 과정을 거치지만 동시에 그 문화로부터 거리를 보유하여야만 문화 변혁적 과제를 수행할 수 있다. 오늘날의 선교해석학은 서구문명화를 기독교 선교의 목표로 오해하여 나타난 서구문화 우월주의, 또 반서구화 토착화 과정에서 복음을 상대화시키고 만 급진적 토착화론을 모두 문화적 낙관주의로 비판하고 있다. 그 모두는 문화의 역기능을 간과한 것들이다. 그러나 또 한편 문화를 떠나서 복음을 경험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문화로부터의 거리(Distanz)를 존중해야 하지만, 복음의 편향적 이해를 극복하고 풍성한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복음과 문화와의 상호해석을 도모하게 된다. 명말청초 ‘전례논쟁'의 전개과정은 기독교의 복음과 문화 이해가 본격적으로 개입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당대나 원대, 그리고 19세기 제국주의 시기와는 달리 명말청초의 예수회에 의한 선교는 의식적인 대화가 진행되었고, 상당한 진전을 이룬 것도 사실이다. 이 시기의 천주교는 그 정체성을 드러냄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와 중국문화 사이에 일정 정도의 장력(張力)이 조성되었고, 그 기초 위에서 조화와 대립의 다양한 국면을 보여주었다. 명말청초의 ‘전례논쟁’은 복음과 문화의 유사성, 그리고 토착화의 내용을 명료하게 할 복음의 초월적 성격을 한꺼번에 보여준다. 오늘날 본토화에 주력하고 있는 중국 종교학자들에게, 상호해석학적 가능성을 열어주는 역사적 사례인 것이다.

Abstract

作为彻底属于的边缘文化而开创的中国基督宗教,由于无法主张自己从西方带来的文化,就不得不披上了中国文化的行装上阵。起先,唐朝和元朝的基督宗教试图使自己中国化而大幅度地使用道教和佛教的用语,明末清初时期的天主教却与从前的时代有所不同,在认识自己所独具的传统的同时,吸取了一些中国文化。因此,耶稣基督信仰和儒家思想之间的有意地接触,即‘耶儒对话’,就在那时得以进展。明末清初的天主教在追求福音与儒家思想有所‘类似’的同时,进一步出现了“补儒”,“超儒"等概念,这种概念在江南地区阳明学左派的社会改革思想当中体现出了福音与儒家思想有所‘差别’的观点。后来,在朝鲜时期,天主教书籍最早被介绍给朝鲜知识分子的时候,也有类似的情形。 利玛窦所属的耶稣会保守人士和多明我会,巴黎外邦传道会等后进入中国的差会,用‘排他性的文化观’对早期耶稣会宣教士的宣教策略进行挑战,从而导致了明末清初的“礼仪之争”事件。其实,如此矛盾的起因,早在耶稣会在欧洲初创的时候就孕育了。西班牙萨拉曼卡大学的第二托马斯主义原本以南美宣教经验为基础,重视宣教当地的本土文化和思想,却受到了巴乃兹等多明我会士所谓天主教加尔文主义者的挑战。“礼仪之争”事件就是这种论证过程的延续战线。除此以外,欧洲列强之间和宣教会之间的竞争,以及中西之间的矛盾加速了这种矛盾的深化。文化适应宣教和文化批判宣教之间的论争,就能成为拓展宣教视域的契机。但是当时攻击的气氛最终借着“礼仪之争”事件,结束了清朝宽松的宗教政策。 在基督教宣教史上,福音和文化的相遇大致以适应与改革的这两种形态显现,这意味着福音对文化具有双重性课题。福音在一个文化圈中经历文化适应的过程同时,也应当与其文化抱有一定的距离。今天的宣教解释学对误解西方文明化就是基督教宣教目标的西方文化优越主义进行批判,同时, 对反西方化的本土化过程中将福音相对化的激进本土化论点都进行批判。二者都被批评为文化的乐观主义。这一切都太轻视文化的反面作用。但是,另外一方面,脱离了文化,就不能经历福音。因此,虽然应当尊重从文化的距离, 但为了克服对福音的偏向理解,显露福音的丰富涵义,应当试图寻求福音和文化的相互解释。 明末清初“礼仪之争”的展开过程,显示了基督教福音和文化理解的正式介入。与唐朝,元朝和19世纪帝国主义时期不同,明末清初由耶稣会所进行的宣教进行了有意的对话,并有了相当的进展。这一时期的天主教,因在中国显现了其正體性,从而构成了基督教和中国文化之间一定程度的张力,并在这基础上显现了调和与对立的多样局面。明末清初的“礼仪之争”事件,将福音与文化的类似性,和对本土化内容进行简明规范的福音之超越性,一次全显明了。对于今天致力于本土化的中国宗教学者来说,“礼仪之争”事件是打开相互解释学可能性的历史事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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