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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차구 유적에서 나타나는 중원 습속과 내세관의 의미 - 금속제 형벌 도구를 중심으로

The Significance of Ancient Chinese Customs and Views of the Afterlife as Revealed in the Xichagou Ruins: With a Focus on Metal Too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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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서차구 유적은 1955년의 도굴 사건으로 인해 알려진 후 1956년에 조사가 진행되었지만, 오랫동안 정식 발굴조사 보고서가 출간되지 않다가 2022년이 되어서야 발굴조사 보고서가 출간된다. 보고 내용상에서는 다종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고, 그중에는 외래계 금속기와 용도가 잘못 알려진 금속기가 다수 포함되었으며, 이 금속기들에서는 중원의 영향이 확인되었다. 분석 결과, 외래계 금속기 중에는 중원의 왕급 제후만 사용하였던 마차 장식품을 다수 확인할 수 있었고, 용도가 잘못 알려진 금속기는 죄수에게 사용된 쇠칼이었음을 확인하였다. 중원계 고위급 금속기와 문헌 자료를 고려할 때 중원과의 잦은 교류를 상정할 수 있고, 쇠칼을 통해 중원의 죄수와 같은 맥락으로 서차구 유적에도 쇠칼을 찬 죄수가 존재하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중원에서는 쇠칼을 찬 죄수가 죄수전용의 공동묘지에 안치되거나, 제후의 무덤과 거리를 두고무덤이 조성된다. 반면, 서차구 유적에서는 수장층의 무덤 사이에 죄수가 존재하는 양상을 파악하였고, 이를 고려할 때 순장의 가능성을 상정할 수 있다. 문헌자료를 참고할 때, 인근에서 죄수와 순장이 존재한 집단은 부여가 있다.서차구 유적은 부여인지 혹은 오환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어왔지만, 기록과 일치하는 순장의 존재를 바탕으로 부여로 추정할 수 있다.

Abstract

The Xichagou ruins were brought to light as a result of a looting incident in 1955, which led to an investigation in 1956. However, an official excavation report was not issued until 2022. The report reveals that a diverse range of artifacts were found, including many foreign metal tools and metal tools whose purposes were unclear. These metal tools displayed signs of influence from Ancient China. Among the foreign metal tools were several chariot ornaments used exclusively by royal feudal lords from Ancient China, and the metal tools misidentified earlier were actually iron pillories used on prisoners. The evidence of prestigious metal tools of Ancient China and relevant historical accounts support the notion of frequent exchanges between the Xichagou site and Ancient China, while the finding of iron pillories implies the presence of prisoners with iron pillories akin to those used in Ancient China at the site. In Ancient China, prisoners wearing iron pillories were either buried in communal graves reserved for prisoners or in tombs distanced from those of feudal lords. Conversely, at the Xichagou ruins, prisoners were discovered to be buried among the tombs of political bodies, suggesting a potential practice of human sacrifice. According to literary sources, Puyeo was the only group in the vicinity that was recognized as both having prisoners and practicing human sacrifices. Although there has been controversy on whether the Xichagou site belonged to Puyeo or Ohwan, the evidence of human sacrifice, which aligns with historical records, indicates that the Xichagou site was likely associated with Puy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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