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路夫人의 신분
The identity of Mrs. Su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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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김순정은 성덕왕이 즉위한 702년에서 그가 사망한 725년까지 23년 사이에 太守에서 上宰까지 진급했다. 고위직이라 할 수 없는 강릉태수 자리는 그의 초기직임을 암시한다. 김순정은 성덕왕이 즉위한 702년 직후 어느 봄날강릉태수로 발령을 받았을 것이며, 705년 성덕왕이 溟州 오대산에 백관을거느리고 와서 眞如院을 중수하고 가까운 주현인 ‘강릉’에서 해마다 봄과 가을에 창조(倉租) 1백석과 정유(淨油) 한 섬을 공급하게 했을 때 그 업무를담당했을 수도 있다. 성덕왕의 강릉 행차와 왕을 맞이한 수로부인과 순정공의 모습이 그려진다. 여러 기록을 분석해 볼 때 태수는 자신의 영지에 부임해 가는 것을 알수 있다. 강릉은 무열왕계의 영지였다. 『삼국유사』 권3, 탑상4 조신전에 강릉지역을 영지로 소유한 金周元의 증손인 金昕이 낙산사 인근지역의 태수로등장한다. 「聖住寺朗慧和尙碑文」을 보면 김흔은 臨海公 金仁問의 자손이었다고 하고 있다. 김인문은 신라가 통일을 이룩한 후 전국에 걸쳐 막대한 영지를 사여 받았던 것으로 보이며, 강릉지방도 그의 영지 가운데 하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김순정은 김인문의 후손으로 자신의 영지를 관리하기 위해강릉지역 태수로 부임해 갔을 가능성이 있다. 삼국 통일 후 문무왕대와 신문왕대를 거치면서 왕권이 안정되자 그 직계비속에 권력이 집중되는 양상이 두드러져 갔다. 중대 신라는 태종무열왕의아들 法敏, 仁文, 文王, 老且, 仁泰, 智鏡, 愷元 등 7명과 그 자손들이 중심이되어 나라들 지배했다. 그들이 제1골이었고, 무열왕의 후손 외에 다른 진골귀족들은 2골이었다. 진골귀족 내부에서도 태종무열왕의 자손들을 중심으로 새로이 특권화된계층이 형성되었다. 이들은 특권의 확산을 막고 이를 영속화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그들만의 한정된 통혼권을 설정하여 뚜렷한 하나의 계층을 이루었다. 1골인 무열계 남자들은 1골 무열계 여자와 혼인했다. 그래야 그 사이에 태어난 자녀는 1골이 되었다. 진골이지만 근친왕족이 아니라면 국왕과 정식으로 혼인할 대상이 되지 못했다. 진골출신의 딸은 후궁이 되었다. 경덕왕은 태자 시절에 삼모부인과 혼인을 했다. 수로부인과 순정공 사이에서 태어난 삼모부인은 당대 왕위계승 1후보자와 결혼할 정도 높은 신분이었다. 순정공과 수로부인은 경덕왕과 가까운 친척으로 무열왕의 직계 후손, 제1골 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Abstract
Kim-sunjeong(金純貞) was a direct descendant of the Silla King Muyeol(太宗武烈王). He was appointed as the viceroy in Gangneung, this is also not irrelevant. King is a close relative of the royal estates left to management. After unification, power is concentrated in Silla King Muyeol`s offspring. They were the first Bone(第1骨), other than the descendants of the king were Second Bone(第2骨). Grandchildren of the King prevented the spread of the privilege. They had intermarriage In order to perpetuate the privilege. They finished in one layer. The Silla king Gyeongdeok had the marriage with Sammo. Hers parants is Kim-sunjeong(金純貞) and Suro(水 路夫人). They are the first Bone(第1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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