平康 蔡氏의 臨陂 入居와 入居 이후의 거주지 이동 – 혼인 관계 분석을 중심으로 –
An Analysis on the Marital Relationship of Pyung-gang Chae Clan(平康 蔡氏) in Im-pi Area and Its Entering and Changing Residence
0
조회
0
다운로드
7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臨陂에 세거한 平康 蔡氏는 조선시대 임피의 大姓 중 가장 먼저 임피에 入居한 성씨였고, 가장 많은 문과 급제자와 두 번째로 많은 사마시 합격자를 배출하였으며, 입거 이후 중앙 및 지역의 유명 성씨들과 혼인 관계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평강 채씨는 조선시대 임피의 대표적인 성씨였다. 평강 채씨가 임피를 선택하여 고려 말 조선 초에 落南한 이유는 당시 옥구에 거주한 제주 고씨와 폭넓게 형성된 인척관계 때문이었다. 전통기 한국 사회에서 어느 한 인간의 인간관계 형성과 사회 활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혈연관계였고, 그 다음이 인척관계였는데, 그 인척관계의 범위는 예상외로 폭이 넓었다. 조선 왕조 개창을 부정한 평강 채씨 후손들은이후 조선 정부로부터 어떠한 탄압도 받지 않았다. 그 이유는 충효 등 성리학의 도덕규범이 그 어떤 권위보다 심지어 국왕의 권위보다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은 이념의 나라였다. 조선 전기에 원거리 지역 거주자와 혼인하거나 관직에 진출한 평강 채씨 중에는 장자와 차자를 가리지 않고 타관으로 거주지를 이동한 자들이많았다. 이는 당시에 자녀 균분 상속과 윤회봉사가 보편적으로 행하여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과거 합격자나 관직 진출자가 대폭 줄어들고 장자 위주의 재산분배와 제사 관행이 굳어진 조선후기에는 타관으로 거주지를 이동한 자들이 거의 없었다. 조선 후기가 되면 중앙 사족과 지방 사족의 양극화가 심화되었는데, 임피에 세거한 평강 채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참고문헌 (37)
- "高氏族譜, 4권 4책", 서울대학교규장각도서관 소장, ~
- "國朝文科榜目" (1984), 태학사
- "南原梁氏吏曹判書公派世譜, 全卷", 개인 소장, ~ (1995)
- "礪山宋氏譜, 20권 8책",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
- "礪山宋氏世譜, 2권 6책",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
- "礪山宋氏族譜, 권 책",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 (1905)
- "三校淸州韓氏正郞公派譜, 3권 3책", 개인 소장, ~ (1980)
- "氏族原流, 1책" (1991), 보경문화사
- "紆州黃氏族譜, 1권 1책", 개인 소장, ~ (1990)
- "全州李氏侍中公派文正公世譜, 3권 3책", 개인 소장, ~ (1995)
- "全州李氏讓寧大君派世譜, 全卷",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 (1998)
- "全州李氏益安大君派大同譜, 4권 4책", 개인 소장, ~
- "濟州高氏 文忠公派 司直公系 沿革誌, 1책, 高氏臨陂宗門會", 개인 소장, ~ (2007)
- "濟州高氏參議公派族譜, 3권 3책", 개인 소장, ~ (1947)
- "朝鮮王朝璿源錄, 10책" (1994), 민창문화사
- "靑松沈氏陽智公派世譜, 全卷", 개인소장, ~ (1987)
- "平康蔡氏族譜, 4권 4책",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
- "平康蔡氏大同譜, 6권 6책", 개인 소장, ~ (1991)
- "平山趙氏忠貞公派譜, 전권", 개인 소장, ~ (1955)
- "湖南誌, 6권 7책", 개인 소장, ~ (1935)
- "CD~ROM 司馬榜目",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서울시스템, ~ (1997)
- 김경수, "결성 장씨 종족마을의 형성과 문중운영 - 충남 연기군 동면을 중심으로 -", 古文書硏究, 28, pp.331~368 (2006), 한국고문서학회
- 김경옥, "조선후기 동성마을의 형성배경과 사족들의 향촌활동 - 전라도 영암 영보리 사례를 중심으로-", 지방사와 지방문화, 6(2) (2003), 역사문화학회
- 김경옥, "조선후기 영암 사족과 서원", 호남문화연구, 20 (1991)
- 김두헌, "19세기 중인의 초혼 연령 및 배우자의 신분-현탁 가문과 김상순 가문의 사례-", 鄕土서울, 73(73), pp.145~183 (2009),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 김두헌, "제주 고씨의 옥구 입거와 이후의 거주지 이동", 전북사학, (36), pp.33~61 (2010), 전북사학회
- 김두헌, "金範禹와 그의 가계", 교회사연구, (34), pp.5~61 (2010), (재)한국교회사연구소
- 김미영, "동성마을 정착과정에 나타난 친족이념의 변천양상-안동지역 사례를 중심으로-", 실천민속학 연구, 11, pp.165~195 (2008), 실천민속학회
- 金義煥, "慕溪 趙綱의 鄕村社會 活動과 淸州士族의 動向", 조선시대사학보, 32(32), pp.53~93 (2005), 조선시대사학회
- 김현영, "조선시대의 남원과 향촌사회" (1999), 집문당
- 남연숙, "조선후기 향반의 거주지 이동과 사회 지위의 지속성 Ⅰ", 한국사연구, 83 (1993), 한국사연구회
- 남연숙, "조선후기 향반의 거주지 이동과 사회 지위의 지속성 Ⅱ", 한국사연구, 84 (1994), 한국사연구회
- 송준호, "남원지방을 예로 하여 본 조선시대 향촌사회의 구조와 성격, In 조선사회사연구" (1987), 일조각
- 이은정, "18세기 후반 무안 병산사의 건립과 무안박씨", 지방사와 지방문화, 11(1), pp.149~182 (2008), 역사문화학회
- 이해준, "조선시기 촌락 사회사" (1996), 민족문화사
- 전종한, "종족 집단의 거주지 이동과 종족 촌락의 기원에 관한 연구 - 14~19세기 보성 오씨 사례 분석을 중심으로", 사회와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61(61), pp.3~124 (2002), 한국사회사학회
- 지두환, "조선전기 경기북부지역의 집성촌과 사족의 동향", 북악사론, 8 (2001), 북악사학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