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儒教の異質性の再検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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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津田左右吉(1873年~1961年)は、日本における儒教は観念的なもので、知識としては受け入れられたが、実際の日本人の精神生活とは無縁であったとした。しかし日本の江戸時代には多数の儒者が存在し、大量の儒書も刊行された。また日本でも儒者は「漢文(文言、古代漢語)」で表現行為を行うのが普通であったが、津田は、漢文の言語的特質から、厳密な論理性が保証されづらいとした。確かに漢文には複数の解釈を許容するところがあり、南宋の朱熹は、口語の語録が漢文に書き変えられたために複数の解釈ができるようになってしまったことを批判している。漢文は表現の簡潔、対偶性、韻律の諧調を尊ぶために、極めて洗練された様式美を持つが、ともすれば作者の言おうとする内容を正確かつ詳細に表しきれない。ただこのような性格は漢文の言語としての時空を超えた普遍性と表裏のものであって、儒教の文献が日常言語と離れた漢文で書かれていたからこそ、中国で生まれた儒教が、言葉も精神的風土も異なる日本に流入できたのである。また儒教と仏教とでは、教団結合の方式が異なる。それが仏教と儒教の日本流入の様態の差になっている。日本では僧侶が多数中国に留学し、中国から法灯を伝えたが、儒教を学ぶために中国に留学した者はほとんどいない。それは、儒教は仏教のように非日常的な場で教団を形成しないし、師からの伝授も必ずしも要求しないからである。道学者(宋学の思想家)にとって、道はむしろ万人に公開されているものであった。それゆえ書院で道学を学んだ者は、当人の境地が高くなくても、地方官として赴任した場所で門弟を集め道学を講ずる。そして個々の学統は絶えても、全体としては方々で講学が行われるという状態は持続したのであって、道学という学派とはそのような講学の束なのである。しかし日本で儒教の学派ができると、今度はそれが「家元」化し、日本的伝達様式を見せ始める。そもそも江戸時代初期の儒者の中では、仏教の僧侶から転身した者が目立つ。そしてその仏教や儒教が日本流であっても、日本思想の文脈の中で仏教対儒教という構図になることが重要である。つまり日本儒教を考える一つの視点は、日本思想内部で儒教という枠組がいかに働いたかを見ることである。日本儒教の異質性を問題にする時に必ず出てくるのが礼である。たとえば、時空を超えて変更してはならない「三年の喪」も、日本では一年でよいとされた。それでも日本では礼として意識されたのであって、問題は、礼という意識を成立させている儒教ならではの「類型」である。この礼の問題とともに重要なのは、日本における忠孝観念の特殊性であって、特に忠孝の相互関係と、忠孝の方向性にそれが現れている。津田は、日本では孝よりも忠が重い傾向があるとした。それは、日本における公の観念や、家族のあり方の特殊性も関わっている。日本の家族は、家業の継承を尊び、そのためには養子をとることを容認する。このような家職という観念は、社会全体の中にそれぞれの家を位置づけることになった。そこで登場してくるのが忠孝一致論である。忠孝一致論は、中国にも無いわけではないが、日本で特に目立つようになり、近代では忠孝一致こそが、日本儒教の精華であるという議論もなされた。なお江戸時代は幕府と藩と皇室という複数の権力や権威が存在してそれらのバランスが取れていたが、忠誠の対象を一元化する儒教の正統論の影響で、忠誠の対象の一元化が求められようになり、その結果、皇室を正統としそれに忠誠を尽くす考えが広まっていった。そこにまた道統論が加わって、皇室こそが正統であり道統であるという皇統論が広がり、それが幕末の尊王攘夷論になっていった。これは儒教の理論が思想状況を推進した重要な一例である。次の忠孝の方向性の問題であるが、これは日本儒教において、子が親に孝を尽くすとともに親の方も子を慈しむことが要求されるという双方向性を持つ傾向のことである。また日本における忠については、その情緒性が言われることがあり、「君臣関係」というよりも「主従関係」と言った方がよいとする論もある。また君臣関係については臣の一方的忠誠を主張する一方向的傾向も一部では目立った。儒教という枠組で思想表現がなされることは、日本でも効果を持った。孝にしろ忠にしろ儒教以前の日本にも類似の価値観が存在した。しかしそれが儒教によって思想的表現を得た時に、それまで慣習的に行われていたものが明確な表現と理論を獲得し、それが土台になって次の思想表現が生み出されていった。その表現は、儒教を超えて国学をはじめ他の学派にも影響していった。儒教は、日本をはじめ各地の精神状況に明確な思想表現をあたえ、また時にはその精神状況に含まれた要素を拡張したのであって、その内容に地域的特色があろうとも、儒教ならではの効果をもたらしたと言えるのである。敢えて逆説的に言えば、儒教の存在によって、各地域が本来所有していた生活感情や価値観は、それぞれの特色を維持しながら展開し成熟しえたのである。
Abstract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 1873년∼1961년)는, 일본에서 유교는 관념적인 것으로, 지식으로는 받아들여졌지만 실제로 일본인의 정신생활과는 관련이 없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일본 에도(江戶) 시대에는 다수의 유학자가 존재하였으며, 대량의 유학 서적도 간행되었다. 또 일본에서도 유학자들은 ‘한문(文言, 고대 한어)’으로 표현 행위를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쓰다(津田)는 한문의 언어적 특질 때문에 엄밀한 논리성은 보증되기 어렵다고 했다. 확실히 한문에는 여러 가지 해석을 허용하는 곳이 있어서, 남송의 朱熹는 구어의 어록이 한문으로 바꿔 써졌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되어버린 점을 비판하기도 하였다. 한문은 표현의 간결성, 對偶性, 운률의 조화를 중시하기 때문에, 지극히 세련된 양식미를 가지기는 하지만, 글쓴이가 말하려고 하는 내용을 정확히 그리고 상세히 모두 표현할 수는 없다. 단지 이러한 성격은 한문이 언어로서 시공을 넘어선 보편성과 표리를 이루는 것으로, 유교의 문헌이 일상 언어와 동떨어진 한문으로 씌어져 있었기 때문에 중국에서 태어난 유교가 언어도 정신적 풍토도 다른 일본에 유입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유교와 불교는 교단 결합의 방식이 다르다. 그것이 불교와 유교의 일본유입 상황에 차이를 낳았다. 일본에서는 승려가 다수 중국에 유학하여, 중국으로부터 법통을 전해 받았지만, 유교를 배우기 위해서 중국에 유학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유교는 불교와 같이 비일상적인 장소에서 교단을 형성하지 않으며, 스승으로부터의 전수도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도학자(宋學의 사상가)에게 도는 만인에게 공개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書院에서 도학을 배운 사람은, 본인의 경지가 높지 않아도 지방관으로서 부임한 장소에서 문하생을 모아 도학을 강의하였다. 그리고 각각의 학통은 끊어져도 전체적으로는 여기저기에서 강학이 행해지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도학이라고 하는 학파는 그러한 강학의 집단인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유교 학파가 생기자, 그것이 ‘종가’로 변해 일본적인 전달 양식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원래, 에도 시대 초기의 유학자들 중에는 불교의 승려에서 변신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 불교나 유교가 일본식라고 하더라도, 일본 사상의 문맥 안에서 불교 대 유교라고 하는 구도가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즉 일본 유교를 관찰하는 하나의 시점은, 일본 사상내부에서 유교라고 하는 틀이 어떻게 작동하였는가를 보는 것이다. 일본 유교의 이질성을 문제 삼을 때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禮이다. 예를 들면 시공을 넘어서 변경해서는 안 되는 ‘3년상’도 일본에서는 1년이면 된다고 하였다. 그래도 일본에서는 그것을 예로서 자각하였는데, 문제는 그것이 예라고 하는 의식을 성립시킨 유교 나름의 ‘유형’이라는 것이다. 이 예의 문제와 함께 중요한 것은 일본에 있어서의 충효관념의 특수성이다. 특히 충효의 상호 관계와 충효의 방향성에 그것이 나타나 있다. 쓰다는, 일본에서는 孝보다도 忠이 중시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일본에서 公의 관념이나, 가족의 존재방식의 특수성과도 관련되어 있다. 일본의 가족은 가업의 계승을 중시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양자를 들이는 것을 용인한다. 이러한 가업의 관념은 사회전체에서 각각의 가문이 차지하는 위치를 부여하게 되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충효 일치론이다. 충효 일치론은 중국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되었다. 근대에는 충효 일치야말로 일본 유교의 정화라고 하는 논의도 행해졌다. 또 에도 시대는 막부와 번과 황실이라고 하는 복수의 권력이나 권위가 존재해서 그것들 사이에 균형이 이루어져 있었지만, 충성의 대상을 일원화하는 유교 정통론의 영향으로, 충성의 대상을 일원화하도록 요구되었다. 그 결과 황실을 정통으로 삼아 그것에 충성을 다한다고 하는 생각이 널리 퍼졌다. 거기에 또 도통론이 더해져 황실이야말로 정통이며 도통이라는 황통론이 널리 퍼져 그것이 막말의 존황양이론이 되었다. 이것은 유교의 이론이 사상적인 상황을 추진한 중요한 사례이다. 다음에는 충효의 방향성 문제인데, 이것은 일본 유교에서, 아이가 부모에게 효를 다하는 동시에 부모 쪽도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요구된다고 하는 쌍방향성을 가지는 경향이다. 또 일본에서의 충에 대해서는 그 정서적 경향이 언급되는 경우가 있다. ‘군신관계’라고 하는 것 보다는 ‘주종관계’라고 말하는 편이 낫다고 하는 논의도 있다. 또 군신관계에 대해서는 신하의 일방적 충성을 주장하는 일방적인 경향도 일부에서는 눈에 띈다. 유교라고 하는 틀에서 사상표현이 행해지는 것은 일본에서도 효과를 가져왔다. 효든지 충이든지 유교 이전의 일본에도 유사한 가치관이 존재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유교에 의해 사상적인 표현을 얻었을 때에는, 그때까지 관습적으로 행해지고 있었던 것이 명확한 표현과 이론을 획득하여, 그것이 토대가 되어 다음의 사상적 표현이 생겨났다. 그 표현은 유교를 넘어서 국학을 비롯해 다른 학파에도 영향을 주었다. 유교는 일본을 비롯해 각지의 정신상황에 명확한 사상표현을 부여해주었다. 또 때에 따라서는 그러한 정신적 상황에 포함된 요소를 확장한 것으로, 그 내용에 지역적 특색이 있다고 하더라도, 유교 나름의 효과를 초래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감히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유교의 존재에 의해 각 지역이 원래 소유하고 있었던 생활 감정이나 가치관은 각각의 특색을 유지하면서 전개되고, 성숙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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