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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순문詢問과 위민정치爲民政治 ― ‘애민愛民’에서 ‘군민상의君民相依’로

King Yeongjo’s Inquiry to His Subjects(Sunmun) and Politics for People ― Changes in Public perceptions from the notion of one-way loving people to its formation of reliance between king and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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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백성에 대한 순문은 영조 연간에 새롭게 대두한 여론청취 방식이다. 국왕이 민정民情을 살피기 위해서 궐문 앞으로 백성을 불러 모아 의견을 직접 청취하는 행위는 매우 파격적인 행보였다. 이는 영조의 통치방식이 다른 왕들과 명백히 구별되는 점이다. 순문은 본래 대신들에게 국정을 질의하는 의미에 불과했으나, 영조는 지방의 관리는 물론이거니와 하급관리에서부터 시골의 농민이나 서울의 공인貢人‧시인市人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분층을 대상으로 순문을 열었다. 상품화폐경제의 진전에 따른 사회적 변화를 국왕이 몸소 국정에 반영하였다. 또한 그 주제도 농형農形이나 민막民瘼뿐 아니라, 균역均役이나 준천濬川 등 국가의 주요정책에 대해서 직접 의견을 밝힐 수 있도록 하였다. 더욱이 영조는 순문을 통하여 구휼救恤과 양로연養老宴을 베풀어 백성을 어루만지는데 앞장섰다. 국왕의 순문에서 제기된 문제점들은 즉시 해결되었으며, 순문을 기다리는 백성들도 점차 늘어만 갔다. 마침내 수천에 달하는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었고 임금에게 천세千歲를 연호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영조는 어느새 조선의 요순堯舜이 되었다. 결국 영조의 백성관百姓觀은 ‘애민愛民’에서 점차 ‘군민상의君民相依’의 단계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18세기 ‘민국民國’개념도 널리 쓰일 수 있었다.

Abstract

The monarch’s inquiry to the people is a way of probing public opinion that newly emerged during the reign of King Yeongjo. It was very rare for the ruler to gather the people before the palace gates to listen to their voices so as to pay heed to them. This clearly separates King Yeongjo’s governance from that of other monarchs. Previously, the ruler’s inquiry to his subjects had stopped at being directed at court officials. However, King Yeongjo opened up the system to diverse participants ranging from not only provincial officials but also minor clerks and peasants in rural communities. Furthermore, he inquired members of tribute agencies (gong’in) and city merchants (siin) as well as peasants. This means that the monarch personally incorporated into state administration changes in the commodity-currency economy. In addition, not only did the topics cover agriculture and the people’s grievances but also allowed the people directly to express their views on the nation’s major policies. King Yeongjo took the lead in comforting the people through measures ranging from relief to banquets for the elderly. The problems raised during the ruler’s inquiry were resolved immediately, which led to an increase in the number of people awaiting the procedure. In the end, thousands voluntarily gathered and did not hesitate to cry out his longevity one after another. In no time, King Yeongjo became a sage king of the Joseon Dynasty. Against this backdrop, the Min-guk concept in the 18th centuries was beginning to make its appea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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