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五臺山史庫의 立地와 四溟堂

Locational of Odaesan Sago(五臺山史庫) and Samyeongdang (四溟堂)

0

조회

0

다운로드

6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역사학

초록

倭亂은 城內에 보관하는 史庫가 외부적인 재앙에 의해서 의외로 쉽게 파괴될 수 있다는 문제를 노출했다. 이렇게 해서 대두되는 것이 바로 ‘名山의 보관’과 ‘사찰의 수호’라는 이중구조이다. 본고는 오대산사고와 관련해서 이 부분을 주목해서 다룬 것이다. 물론 오대산에 사고가 설치되는 과정에는 오대산과 깊은 인연이 있고, 왜란의 극복과정에서 공로가 큰 사명당의 영향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양자에 대한 합리적인 정립은 오대산사고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관점이라고 하겠다. 이를 위해서 먼저 제Ⅱ장에서는 오대산의 ‘터와 관련된 吉地’와 ‘불교성지로서의 聖山’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정리한다. 이는 사고설치와 관련해 조정에서 허용하는 전제조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오대산사고가 왜 靈鑑蘭若에 들어서게 되는지에 대한 배경이해를 위하여, 오대산사고가 들어서게 되는 영감난야에 대한 특징과 변천에 관해서도 정리하였다. 다음으로 제Ⅲ장에서는, 오대산사고가 설치되는데 있어서 사명당 역할의 개연성에 대해서 정리해 보았다. 그리고 이와 함께, 왜 하필 영감난야에 오대산사고가 들어서야 하는지에 관해서 明堂論과 당시의 상황이라는 관점에서 정리하였다. 이러한 연구접근은, 사고가 왜 오대산에 들어서게 되는지에 대한 보다 분명한 인식을 확보하게 한다.

Abstract

The Japanese invasion raised in the 17th century the problem that the Sago(史庫, historical archive) in the city might be easily destroyed. Because of this, the double structure of ‘the storage in a famous mountain’ and ‘the protection of temple’ became an issue. In relation with the problem, this paper deals with the process of seleting locations of Odaesan Sago in the past. Of course, in the process that the sago was installed in Odaesan, there is a significant role of this process Samyeongdang who had been deeply related with Odaesan and greatly contributed to overcoming the Japanese invasion. Therefore, the reasonable juxtaposition of the two can be a most important viewpoint in understanding the Odaesan Sago. For this, Chapter II deals with the concepts of Odaesan as ‘the propitious site in relation with its location’ and ‘the holy mountain as the Buddhist sacred place.’ It is because they worked as the presupposition that the royal court asked in relation with the installation of sago. In addition to them, the article explains the background of why the Odaesan Sago was placed in Yeonggam Nanyak(靈鑑蘭若), and then it reviews the features and changes of Yeonggam Nanyak. Finally, Chapter III deals with the possibility of Samyeongdang’s role in installing the Odaesan Sago. Furthermore, it reviews why the Odaesan Sago was decided to locate on no other site than Yeonggam Nanyak in the respect of Myeongdang (propitious site) theory and contemporary situations. This kind of approach demonstrates a clearer recognition about why the sago was placed in Odaesan.

참고문헌 (80)

  1. "長阿含經", ~
  2. "大樓炭經", ~
  3. "阿毘達磨俱舍論", ~
  4. "大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鈔", ~
  5. "真心直說", ~
  6. "三國遺事", ~
  7. "南宗頓教最上大乘摩訶般若波羅蜜經六祖惠能大師於韶州大梵寺施法壇經", ~
  8. "三國遺事", ~
  9. "懶翁和尙語錄", ~
  10. "太古和尙語錄", ~
  11. "四溟堂大師集", ~
  12. "忠州靑龍寺普覺國師幻庵定慧圓融塔碑", ~
  13. "太古寺圓證國師塔銘", ~
  14. "高宗實錄", ~
  15. "明宗實錄", ~
  16. "宣祖實錄", ~
  17. "成宗實錄", ~
  18. "世宗實錄", ~
  19. "肅宗實錄", ~
  20. "仁祖實錄", ~
  21. "顯宗實錄", ~
  22. "孟子", ~
  23. "承政院日記", ~
  24. "五臺山事跡記", ~
  25. 班固, "漢書", ~
  26. 成海應, "硏經齋全集", ~
  27. 宋光淵, "泛虛亭集", ~
  28. 尹宣擧, "魯西遺稿(續)", ~
  29. 李德馨, "漢陰先生文稿", ~
  30. 李睟光, "芝峯類說", ~
  31. 李重煥, "擇里志", ~
  32. 李荇, "容齋集", ~
  33. 張彦遠, "歷代名畵記", ~
  34. 丁時翰, "愚潭集", ~
  35. 朱熹, "大學章句", ~
  36. 許穆, "眉叟記言", ~
  37. 張彦遠, "歷代名畵記 上" (2008), 時空社
  38. 고병철, "韓國의 佛敎聖地" (2013), 韓國學中央硏究院
  39. 文化財廳, "다시 찾은 朝鮮王朝實錄 五臺山史庫本" (2006), 國立古宮博物館
  40. 박용수, "五臺山" (2002), 대원사
  41. 裵賢淑, "朝鮮實錄 硏究序說" (2002), 태일사
  42. 月精寺, "五臺山-月精寺·上院寺, 月精寺, 未詳", ~
  43. 玆玄, "寺刹의 象徵世界 上" (2012), 佛光出版社
  44. 조영록, "四溟堂評傳" (2009), 한길사
  45. 韓國佛敎硏究院, "月精寺(附)上院寺" (1995), 一志社
  46. 韓國佛敎硏究院, "通度寺" (1999), 一志社
  47. 한상길, "月精寺" (2009), 大韓佛敎振興院
  48. 리쩌허우, "中國古代思想史論" (2005), 한길사
  49. Alexander Soper, "The Art and Architecture of China" (1956), Penguin
  50. 五臺山史庫의 沿革과 史庫址現況, "金鎔坤", 國史編纂委員會, ~ (1986)
  51. 오준호, "사명유정 연구", 박사, 불교학, pp.2001
  52. 이경순, "17-18세기 士族의 유람과 山水空間 인식", 박사, 사학과 한국사전공, pp.2014
  53. 金一權, "中國 古代 明堂儀禮의 성립과정과 天文宇宙論的 의미 고찰", 延世大 國學硏究院 304회 발표회문 (2000)
  54. 玆玄, "月精寺의 漢巖과 呑虛" (2013), 國立中央博物館
  55. 金榮作, "四溟堂惟政-그 人間과 思想과 活動" (2000), 知識産業社
  56. 강문식, "조선후기 五臺山史庫의 운영", 藏書閣, (27), pp.204~233 (2012), 한국학중앙연구원[DOI]
  57. 김영수, "三山·五嶽과 名山大川 崇拜의 淵源 硏究", 人文科學, 31 (2001)
  58. 金一權, "唐宋代의 明堂儀禮 變遷과 그 天文宇宙論的 運用", 宗敎와 文化, 6 (2000)
  59. 金鐸, "金剛山의 유래와 그 종교적 의미", 東洋古典硏究, 1 (1993)
  60. 김혜정, "鄭鑑錄 十勝地의 연원", 人文科學論文集, 48 (2011)
  61. 裵賢淑, "五臺山史庫와 收藏書籍에 대하여", 書誌學硏究, (創刊) (1986)
  62. 손성필, "17세기 전반 高僧碑 건립과 조선 불교계", 한국사연구, (156), pp.145~190 (2012), 한국사연구회
  63. 손성필, "『眞心直說』의 판본 계통과 普照知訥 찬술설의 출현 배경", 한국사상사학, (38), pp.1~55 (2011), 한국사상사학회
  64. 신병주, "‘오대산본’ ??조선왕조실록??의 간행과 보관", 역사와 현실, (61), pp.175~211 (2006), 한국역사연구회
  65. 신병주, "≪朝鮮王朝實錄≫의 奉安儀式과 관리", 韓國史硏究, 115 (2001)
  66. 염중섭, "懶翁에게서 살펴지는 ‘五臺山佛敎’의 영향 — 나옹의 五臺山行과 文殊華嚴을 중심으로", 온지논총, (39), pp.175~210 (2014), 온지학회
  67. 염중섭, "나옹懶翁의 부침浮沈과 관련된 지공指空의 영향― 지공指空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중심으로", 국학연구, (24), pp.93~127 (2014), 한국국학진흥원
  68. 염중섭, "五臺山 文殊華嚴 신앙의 특수성 고찰", 한국불교학, (63), pp.7~40 (2012), 한국불교학회
  69. 염중섭, "月精寺의 寺名에 관한 동양학적인 검토", 신라문화, (36), pp.203~226 (2010), 신라문화연구소
  70. 염중섭, "慈藏의 五臺山 開創과 中臺 寂滅寶宮", 한국불교학, 67, pp.7~48 (2013), 한국불교학회
  71. 이상찬, "오대산 사고본 실록의 자료적 가치", 한국학연구, (31), pp.497~539 (2013), 한국학연구소
  72. 장성재, "寂滅寶宮의 변천과 사상-一然을 통해 본 5대보궁에 대한 정합적 이해-", 한국불교학, 67, pp.125~159 (2013), 한국불교학회
  73. 조영록, "五臺山史庫의 設置와 四溟大師", 東國史學, 42 (2006)
  74. 차장섭, "≪五臺山史庫謄錄≫과 五臺山 史庫의 운영실태", 朝鮮史硏究, 12 (2003)
  75. 최광식, "新羅 國家祭祀의 체계와 성격", 한국사연구, (118), pp.4~134 (2002), 한국사연구회
  76. 최연식, "『眞心直說』의 著者에 대한 새로운 이해", 진단학보, (94), pp.77~102 (2002), 진단학회
  77. 許興植, "指空의 遊歷과 定着", 伽山學報, 1 (1991)
  78. 洪淳昶, "新羅 三山·五岳에 대하여", 新羅文化, 4 (1983)
  79. 황선명, "十勝地 考", 宗敎와 文化, 5 (1999)
  80. 황인규, "여말선초 나옹문도의 오대산 중흥불사", 불교연구, (36), pp.255~286 (2012), 한국불교연구원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9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