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중반~19세기 전반 성호가문의 서학관 고찰 - 『闢異淵源錄』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 -
A Study on Seongho Family’s Perception of Western Learning Between the Mid 18th and the Early 19th Centu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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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이연원록』은 성호가문의 척사론 저술들을 모아놓은 서적이다. 『벽이연원록』은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전반 두 차례 편찬되었다. 『벽이연원록』 상편에 해당하는 일차 편찬은 목재 이삼환이 주도하였는데 진산사건에서 성호가문의 무고를 변호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었다. 즉 한국천주교회 성립과 일련의 천주교 관련 사건들에 성호학파의 인원들이 다수 연관되어 있었고, 이삼환이 거주하던 덕산 지역은 천주교인들이 꾸준하게 배출되고 있었다. 또한 충청도관찰사였던 박종악은 이삼환에게 적극적인 척사활동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삼환은 『벽이연원록』의 편찬을 통하여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하편에 해당하는 2차 편찬은 육회당 이시홍이 주도하였는데, 성호학파에 대한 비판을 변호하고 성호가문의 지적 전통을 세우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였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노론 벽파가 주도하는 신유박해가 진행되었고, 또한 성호학파의 학문적 순결성에 대한 비판이 남인 내부와 노론 측에 의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이에 『벽이연원록』에서는 홍교만에 대한 절교 서한을 통해 신유박해에 대한 성호가문의 무고를 주장하고, 이시홍의 闢邪文을 통해 보유론적 상제관과 일별하였다. 또한 ‘벽이’를 가학으로 내세움으로써 성호가문의 지적 전통을 새롭게 확립하였다.
Abstract
Byeokiyeonwonrok is a collection of books by Seongho family. Byeokiyeonwonrok was published twice in the late 18th and early 19th centuries. The first compilation was led by Mokjae Lee Samhwan, whose purpose was to defend the innocence of the Seongho family in the Jinsan affair. A large number of Seongho school were involved in the establishment of the Korean Catholic Church and other Catholic related affair. The Deoksan area, where Lee Sam-hwan lived, was also constantly being released by Catholics. Park Jong-ak, a former Chungcheong Provincial Governor, was demanding Lee Sam-hwan to conduct an active perverse religion. Byeokiyeonwonrok was created by these times’ needsThe second compilation was led by Yookhoidang Lee Sihong, whose purpose was to defend criticism of the Seongho school and establish the intellectual tradition of the Seongho family. Entering the 19th century, religious persecution led by the Noron Byeokpa was under way. Criticism of the academic purity of the Seongho school was continuously raised by Namin and Noron group. In the sequel to the Byeokiyeonwonrok, he claimed the innocent of the Seongho family for the Shin-yu persecution in a letter of farewell to Honggyoman., and denied Jesuit Accomodation. He also established the intellectual tradition of the Seong-ho family by using “Byeoki” as his family mot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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