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공간 불교계의 과제와 만암 송종헌의 ‘불교계 정화인식’
The Task of the Buddhist Circle in Liberation Space and its Purification Recognition by Manam Jong-hyeon Song
0
조회
0
다운로드
10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만암 송종헌은 한말에 태어나서 해방 이후까지 격동의 세월을 살다간 고승이었다. 그는 1910년 국권을 상실한 이후 원종의 종정이던 이회광이 일본 조동종과 매종책동을 벌이자 한국 불교계의 정통성을 수호하고자 전개된 임제종 설립운동에 참가하였다. 그는 일찍부터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교육사업에 헌신하였다. 1910년에는 백양사 말사인 청류암에 불교 교리인 내전과 불교 교리 외에 일반 학문인 외전을 함께 가르치는 광성의숙을 설립하여 인재들을 양성하였다. 그는 1929년 중앙불교전문학교 교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해방 이후 1948년 그는 조선불교 제3대 교정으로 추대되어 불교계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기도 하였다. 1954년 조계종 종정으로 취임하였으나 때마침 이승만의 정화담화가 발표되어 불교계가 독신 비구승과 처자식을 둔 대처승으로 양분되어 큰 혼란으로 휩싸이게 되자 그는 현실을 인정하고,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정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송종헌이 제시한 대안은 당시로서는 무리가 없는 최선의 대안이었다. 당시 불교계 흐름을 주도하고 있던 대처승들은 비구승들에게 수행할 수 있는 몇 개의 사찰도 할애하지 않았다. 비구승들은 이에 불만을 표출하였고, 이 불만은 때마침 발표된 이승만 대통령의 담화문으로 인해 불교계 정화운동으로 나타났다. 비구승과 대처승이 사찰 점유를 둘러싸고 물리적인 충돌 양상이 벌어지자 불교계는 혼란에 휩싸였다. 이러한 혼란은 법정 소송으로 비화되었고 불교계는 공권력의 조정과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현재까지 완전히 치유되지 못하고 있다. 송종헌은 자신의 주장이 비구승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지지 않자 정화의 원칙에는 찬성하지만 환부역조하는 무리들과는 함께 할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백양사로 돌아간다. 백양사에서 그는 고불총림을 결성하고 백양총림 청규를 제정하고 선농일치를 실천하였다.
Abstract
Manam Jong-hyeon Song was a high priest who led his turbulent life after 1945 since he had been born in the latter era of the Jocheon Dynasty. When Hwae-gwang Lee who was the head of Wonjong after losing the sovereignty of the nation in 1910 started Soto Sect in Japan and Mejong move, he participated in the campaign to found Linjitsung which was developed to protect tradition of the Korean Buddhist circle. He made a commitment to educational work after realizing its importance early. He fostered talented persons by founding Gwangseongeuisuk which teaches Naejeon which is Buddhist doctrines and Woiheon which is the general study together in Cheongryuam, the branch temple of Baegyangsa(Temple) in 1910. He assumed the principal of the School to Teach Buddhism in 1929. In 1948 after liberation, he became the symbolic existence of the Buddhist circle as he was inducted into the third Gyojeong of Joseon Buddhism. He assumed the head of the Jogye Order in 1954. But as the Buddhist circle was divided into bigusung(single Buddhist monks) and married Buddhist priests with their wives and children and was in absolute chaos because purification talk of president Syngman Rhee was announced, he accepted reality and argued that purification should be done in the gradual and peaceful ways. The alternative that Jong-hyeon Song was the best one was reasonable at that time. The married Buddhist priests who led the flow of the Buddhist circle at that time did not spare any several temples that Bigusung could carry out. Bigusung expressed their dissatisfaction and it appeared by the purification campaign of the Buddhist circle due to the statement of the president Rhee which was announced just in time. As there were physical confrontations between Bigus and married Buddhist priests over occupation of Buddhist temples, the Buddhist circle was in absolute chaos. This chaos was creating court cases and the Buddhist circle could not help the adjustment and decision of governmental authority. And the aftereffect has not been completely cured until now. As Jong-hyeon Song's arguments were not been accepted by Bigusung, he returned to Baegyangsa saying that he agreed with the principle of purification but he cannot be with the group who changed its low position to high one by dishonest means. He organized Gobulchongrim, enacted Cheonggyu of Baegyangchongrim, and practiced Seon-Nong IlChi in it.
참고문헌 (36)
- "曼庵文集" (1997), 曼庵大宗師文集刊行會
- "朝鮮總督府 官報", ~
- "新生", ~
- "佛敎", ~
- "東亞日報", ~
- "佛敎新報", ~
- "한성일보", ~
- "평화신문", ~
- 공보실, "대통령이승만박사담화집 2집" (1956)
- 민도광, "한국불교승단정화사" (1995), 한국불교승단정화사편찬위원회
- "한국근현대불교자료전집 전68책" (1996), 민족사
- 강석주, "불교근세백년" (2002), 민족사
- 강인철, "해방후 불교와 국가 : 1945~1960", 사회와 역사, 57 (2000)
- 고불총림 백양사, "고불총림 백양사" (1996)
- 김광식, "조선불교청년회의 史的 고찰, In 한국근대불교사연구" (1996), 민족사
- 김광식, "1910년대 불교계의 조동종 맹약과 임제종 운동, In 한국근대불교사연구" (1996), 민족사
- 김광식, "조선불교선교양종 승려대회의 개최와 성격, In 한국근대불교사연구" (1996), 민족사
- 김광식, "8·15解放과 불교계의 동향, In 한국근대불교의 현실인식" (1998), 민족사
- 김광식, "불교 ‘정화’의 성찰과 재인식, In 근현대불교사의 재조명" (2000), 민족사
- 김광식, "전국비구승대표자대회의 시말, In 근현대불교사의 재조명" (2000), 민족사
- 김광식, "정화운동의 전개와 성격, In 새불교운동의 전개" (2002), 도피안사
- 김광식, "고불총림과 불교정화, In 한귝 현대불교사 연구" (2006), 불교시대사
- 김상영, "일제강점기 불교계의 종명 변화와 종조·법통의식, In 불교근대화의 전개와 성격" (2006),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
- 김상영, "정화운동시대의 종조 갈등 문제와 그 역사적 의의, In 불교정화운동의 재조명" (2008),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
- 김상일, "송만암 대종사, In 曼庵文集" (1997), 曼庵大宗師文集刊行會
- 김순미, "농지개혁과 사찰농지 변동, In 불교정화운동의 재조명" (2007),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불학연구소
- 김순석,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의 불교정책과 불교계의 대응" (2003), 경인문화사
- 김순석, "대한불교 조계종과 한국불교 태고종의 성립과정", 순천향인문과학논총, 22 (2008)
-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조계종사" (2001), 조계종출판사
- "만암 대종사의 생애와 사상 발표집" (2011)
- 박애숙, "曼庵 宗憲 硏究", 석사, pp.2009
- 이능화, "조선불교통사 하" (1982), 보련각
- 이재헌, "미군정의 종교정책과 불교계의 분열, In 불교정화운동의 재조명" (2008), 대한불교 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
- 정광호, "일제의 종교정책과 식민지불교, In 근대한국불교사론" (1988), 민족사
-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지개혁관계자료집 제1편" (1984)
- 한국법제연구회, "미군정법령총람" (1971)
